[르포] 22층 건물이 땅속으로…전선 지중화 "비용 천문학적"

조선비즈
  • 안지영 기자
    입력 2013.09.29 11:32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전력 당국과 대립을 빚고 있는 밀양 주민들이 대안으로 제시한 송전 선로 지중화(地中化). 전선 지중화는 말 그대로 지상에 송전탑을 세우는 대신 송전선을 땅속에 묻는 작업을 말한다. 지상에 세우는 송전탑보다 전자계(송전선로나 가전제품에서 발생하는 전자파) 노출 위험이 적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최근 선로 지중화가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한국전력은 전선 지중화 작업에 따른 천문학적 비용과 기술적 한계를 이유로 요구안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금 여러분 발밑으로 지하 76m 지점에서 전력이 수송되고 있습니다. 건물로 따지면 22층 높이에 해당하는 깊이입니다.”

    24일 오후 6시 전국에서 가장 깊은 곳에서 전력을 수송하고 있는 신성남전력구를 찾았다.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에 자리 잡은 신성남전력구는 올해 6월 지상에 세워진 철제 송전탑을 철거하고 송전선을 땅속에 묻는 전선 지중화 작업을 마친 곳이다. 인근 신안성변전소에서 공급받은 전력을 2.5km 길이의 지하 선로를 통해 성남 지역으로 전달한다. 지하 76m까지 깊게 파고 들어간 이유는 지하 상수관 공사와 정자-광교 부근을 잇는 신분당선 확장 공사와 겹치지 않기 위해서다.

    신성남전력구 내에 지하 76m 깊이로 수직으로 뻗은 지중케이블(왼)과 2.5km 수평으로 연결된 지중케이블(오) 모습./안지영 기자

    이 전력구를 관리하고 있는 한전 경기전력본부의 현장 직원들과 시설 내부로 들어갔다. 안전모와 장갑 등 안전장치를 갖추고 전력구의 시작점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지하 22층까지 수직으로 76m가량 뻗은 지중전선이 보였다. 수직으로 뻗은 전선이 바닥에 다다르면 다시 2.5km가량 불곡산 방향으로 수평으로 이어진다. 이곳 직원들은 매일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뤄 설비의 이상 유무를 살핀다. 한 층씩 내려가며 전선 이음새 등을 육안으로 일일이 살피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시설은 없다.

    지하 1층부터 마지막 층까지 총 374개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지하에 가까워질수록 현장 직원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가스측정기를 꺼내 실내 가스 수치를 연신 확인했다. “현재 대기 중 산소량 21%. 이상 무.” 땅을 깊이 파 만든 지하매설물이기 때문에 시설 내에 적절한 산소량이 확보되고 있는지, 일산화탄소 등의 유해가스가 기준치를 넘고 있진 않은지 상시 점검해야 한다. 마지막 층에 다다르자 실내 온도가 20도 밑으로 뚝 떨어졌다. 주머니 속 휴대전화는 서비스 지역에서 이탈했음을 나타내는 경고 신호음을 보냈다.

    지름이 20cm에 달하는 두꺼운 송전선이 6개씩 좌우로 뻗어있는 모습이 보였다. 선로에 흐르는 전력량이 많아지거나 줄어듦에 따라 전선이 구불거리며 움직이는데, 이 모습이 꼭 뱀 같다 하여 ‘스네이크’라고 부른다.

    신성남 전력구 내부 전경 모습./한국전력공사 제공

    신분당 전력구 내에 이 같은 지중 선로를 설치하는 드는 비용은 1km당 약 201억. 지하 토목건축물 등 제반 시설을 짓는 비용까지 합하면 총 1139억에 달했다. 지상 송전탑을 세우는 것보다 7~10배 높은 비용이다.

    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지중화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높은 건축물이 빼곡히 들어선 도심에는 철탑 형식의 송전탑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전력 측은 국제 행사가 많아 미관이 중요한 지역이나 도심 지역을 중심으로 지중화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천문학적 비용과 긴 공사 기간 때문에 전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지중화 건설 민원을 수용하기에는 제약이 따른다고 덧붙였다.

    고층 건물이 많은 이곳 분당 지역에 지중화 건설이 가능했던 또 다른 이유는 이곳이 345kV(키로 볼트) 전력 계통이기 때문이다.

    밀양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765kV의 전력 시설보다 한 단계 낮다. 765kV 전선은 ‘8차선 고속도로’에 비유할 만큼 전력 수송 효율이 뛰어나지만 현재 기술로는 765kV 지중화 작업이 불가능한 상태다. 한전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기술로는 550kV 전선 지중화의 기술개발까지 완료된 상태며 해외에서도 765kV 전선을 지중화한 사례가 없다.

    오장만 성남전력처 송전팀장은 “전선 지중화가 불가피한 지역 외에서 무분별하게 지중화 건설을 벌이는 것은 국가적 낭비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밀양과 같은 산지 지형은 땅 밑에 토목 구조물을 짓는 것이 어렵고 도로 시설도 열악해 1m당 40kg의 무게가 나가는 전선을 실어 나르기가 여의치 않다”고 설명했다. 밀양에 전선 지중화 공사를 하게 될 경우 예상 공사 비용은 2조7000억원이다. 공사 기간도 12년 이상이 걸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밀양 송전탑 건설은 지난 2007년 11월 정부가 765kV 송전선로 건설 사업의 승인을 내렸지만 밀양 주민들과 전력 당국의 첨예한 대립으로 공사 재개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주민들은 765kV 초고압 전력시설에서 나오는 전자계가 인체에 해를 끼친다며 송전로 지중화 건설 등으로 위험성을 줄일 것을 전력 당국에 요구한 바 있다.

    한전은 지난달 밀양송전탑반대 대책위 사무국장을 비롯한 위원 26명에 대해 창원지법 밀양지원에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렸고 현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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