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정(中庭)의 미학', 김준성의 주요 작품

조선비즈
  • 허성준 기자
    입력 2013.09.28 09:00

    경기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의 ‘헤이리 마을’은 서울 근교에서 주말 나들이하기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

    갤러리·박물관·공연장·공방·레스토랑·카페·게스트하우스 등이 약 49만5868㎡(약 15만평)의 대지에 마을로 조성돼 천천히 걸어 다니며 다양한 문화활동을 즐길 수 있다. 또 이곳은 60여명이 넘는 국내외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 몰려 있어 ‘건축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국내 유명 건축상을 받은 건물이 13곳에 이른다.
    헤이리 커뮤니티센터 전경./이재성 사진작가
    헤이리 마을을 걸어서 돌아보면 각 건물이 저마다 강한 개성을 드러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안온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높이의 동산, 갈대 늪지·천(川)을 배경으로 자연과 잘 어울릴 수 있는 건축 지침을 통해 마을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헤이리가 ‘마을’로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건축 지침은 건축가 김준성과 김종규가 맡았다.

    김준성은 “다양한 규모와 형태를 가진 380여 필지가 문화예술마을로서의 여러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조성되는 동시에, 단지가 전체적인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하는 건축에 대한 논의를 중시했다”며 “단순히 내부공간을 갖는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내·외부와의 관계를 고려하고, 주어진 자연환경을 유지하는데 목표를 뒀다”고 밝혔다.

    1956년 서울 출생인 김준성은 1976년 스무살이 되던 해 가족과 함께 브라질에 이민을 떠나 상파울루 마켄지대학교에서 도시·건축 대학을 다녔다. 1982년 졸업 후 김준성은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건축 대학에 입학했고, 미국 뉴욕의 ‘Mayers & Schiff’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1988년에는 포르투갈로 건너가 프리츠커상 수상자이자 모더니즘의 마지막 거장으로 불리는 알바로 시자(Alvaro Siza)에게 사사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해외 유학 및 해외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한 건축가는 극히 소수여서, 귀국 당시 건축계에 큰 관심을 받았다.
    헤이리 프로젝트/핸드건축 제공
    1991년 귀국 후 다양한 건축작업을 이어온 그는 특히 출판업계와의 인연으로 출판사 사옥이나 갤러리·박물관 작업을 다수 진행했다. 파주출판단지와 연계된 헤이리 프로젝트 덕분이었다. 파주 한길사 사옥, 갤러리 한길, 열린책들 사옥 등을 다른 건축가와 협업해 설계해 준공시켰다. 최근작으론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의 건물인 미메시스 아트 하우스(2009), 김학원 대표의 휴머니스트 사옥(2012) 등이 있다.

    ◆ 공간 체험의 즐거움, ‘미메시스 아트 하우스’

    북쪽으로 북한산, 남쪽으로 북악산 사이에 자리한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미메시스 아트 하우스(2009년)’는 서울예술고등학교 앞에서 길을 건너 평창11길로 걸어서 3분이면 만날 수 있다.
    미메시스 아트 하우스./김용관 사진작가
    회색빛의 이 건물은 지하 2층~지상 3층으로 약 1098㎡의 대지에 숲이 우거진 가파른 언덕을 등에 지고 세워졌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송판 거푸집으로 거친 나뭇결을 살린 노출 콘크리트 담장과 매끈하게 뽑힌 노출콘크리트 건물 몸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단층의 고급주택이 많은 평창동이란 것을 감안하면 다소 육중해 보이는 이 건물은 폭이 좁은 계단 옆 주차장 쪽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평면적인 느낌의 전면과 달리 건물 후면은 ‘U’자형으로 매끄러운 곡선미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 또 건물 뒤편이 가파르고 숲이 우거져 있는 언덕이어서 마치 순식간에 전혀 다른 공간에 온 느낌이 든다.
    미메시스 아트 하우스 후면./김용관 사진작가
    김준성은 “건물 뒤편의 바위 언덕을 그대로 살리기 위한 디자인”이라며 “건물에 들어가기 전, 중정으로 들어온 후, 계단을 통해 건물을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다양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차장을 통해 중정을 지나 건물 상부까지 이르는 계단과 복도를 걸으면 부드럽게 휘어드는 곡선미를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중간 중간 뚫린 사각 구멍으론 마당과 건물 뒤편의 전경이 시시각각 달라진다.

    저층부는 사무실, 상층부는 주거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8세대인 주거공간은 원룸부터 대형 평형까지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창을 통해 보이는 조망과 건물을 지지하는 뒤편 언덕과의 관계를 고려해 짜임새 있게 결합했다는 평가다.
    미메시스 아트 하우스의 선./허성준 기자
    미메시스 아트 하우스에 입주해 있는 ‘hANd’ 관계자는 “외부 협력업체와 전화·회의를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큰 창을 통해 돌과 나무, 열매 등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며 “건물 선이 날이 서 있기 보다 매끄러운 곡선이 많은 것도 시선을 편안하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주변을 끌어안는 건축, ‘휴머니스트 사옥’

    열린책들, 한길사 등 출판계와 유독 인연이 깊은 김준성은 지난해 말 준공한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사옥도 설계했다.
    휴머니스트 사옥./남궁선 사진작가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들어선 이 건물은 약 325㎡의 대지에 지하 2층~지상 4층 규모로 지어졌다. 짙은 회색에 거칠게 드러난 노출 콘크리트와 촘촘한 간격으로 결을 이룬 목재 그릴이 건물 외관을 이룬다. 옥상에는 빛이 은은하게 퍼져나오는 폴리카보네이트로 둘러싸인 박스 건물이 얹혀져 있다.

    홍대 중심 상권에서 조금 빗겨나 있는 연남동의 휴머니스트 사옥은 전체적으론 한적한 거리에 어울리듯 자신을 숨기는 듯한 인상이다. 밖에서 내부가 잘 보이지 않고 도로를 접한 면의 창에는 목재 그릴이 덧대져 있다.

    외관만 보면 개방적이기보단 폐쇄적인 느낌이지만, 당장 내부로 걸음을 옮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체 대지면적이 약 325㎡ 정도이지만, 지하까지 파고드는 깊은 중정이 건물을 한층 다층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중정의 면적은 작은 편이지만, 중정을 향한 건물 입면에 반사유리를 붙이고 각도 차를 다르게 해 한층 풍성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휴머니스트 사옥 내부./남궁선 사진작가
    김준성은 “사옥인 만큼 업무시설이 주 용도가 되겠지만, 중소 출판사가 주변에 다수 있는 점, 홍대 중심 상권에서 밀려난 카페나 레스토랑, 예술가들이 많이 있다는 점에서 1층과 지하층을 오픈 스페이스, 열린 공간으로 구성하고자 했다”며 “외부와의 소통 장소로 이용될 교육원을 지하에 배치하고, 중정을 통해 다양한 행위가 일어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휴머니스트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은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출판업의 특성에 맞춰 2층 이상으로 모두 올렸다. 다만 층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각 층의 바닥은 ‘스킵 플로어(skip floor)’ 방식을 적용했다. 이는 각 층의 바닥 높이를 1층분의 높이가 아니라 계단을 이용해 반 층 높이로 함으로써 이동을 원활하게 하고 복도가 길게 조성되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휴머니스트 사옥 중정 전경./남궁선 사진작가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는 “홍대 성산마을 공동체의 거점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출판사이자 지역 문화공간이 됐으면 했다”며 “건물이 준공된 뒤 저자나 지역 주민이 건물 내 공간을 신기해하고 잘 이용하고 있어 만족감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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