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방배동에서 살다가 2010년 수도권 신도시로 이사한 김문섭씨(60)는 집 얘기만 나오면 표정이 어두워진다. 김씨는 2008년 신도시에 중대형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은퇴 후 여유 있게 살고 싶어 새 보금자리를 장만한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집값은 뚝 떨어졌고, 팔려고 했던 기존 집은 내놔도 살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세법상 일시적인 1가구 2주택자는 1주택자처럼 양도세 감면 혜택을 받지만, 워낙 시장이 안 좋아 시기를 놓친 김씨는 최고 38% 양도세를 고스란히 물어야 할 처지다. 이 세율도 정부가 한시적으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유예해주고 있어 원래 중과세율인 50%보다 낮은 것이다. 만약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법안이 통과되지 않고, 김씨가 내년 이후에 집을 팔 경우, 양도세율은 50%로 높아진다. 김씨는 "대출금에다 세금까지 내면 손에 쥐는 돈이 얼마 안 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나라에서 집으로 돈을 번 사람이라면 고액의 세금고지서를 각오해야 한다. 개발 연대의 투기 억제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세제 탓이다. 투자를 해서 이득을 봐도 양도세를 아예 물지 않는 주식·채권과 달리, 부동산은 수익을 낼 가능성도 불투명한데 일단 수익이 나면 무거운 세부담을 각오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 다주택자, 구입 후 1~2년 내 주택 처분자에게 중과세를 물리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네덜란드, 독일, 싱가포르 등은 아예 부동산에 양도소득세를 물리지 않는다. 조만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부동산 세제가 투기를 막는다며 거래까지 막는 '개도국형'에서 낮은 세율로 부동산 거래 부담을 줄여 세수를 늘리는 선진국형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주택 거래·소유를 죄악시
우리나라에선 일단 구입한 집을 1~2년 안에 되팔면 차익의 40~5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일단 집을 샀으면 가급적 오래 가지고 있으라는 취지이다. 이런 세법하에서 빈번하게 주택을 거래했다간 잠재적인 투기꾼으로 몰린다. 2011년 양도소득세가 징수된 9억원 이하 일반 주택 거래는 총 5만7691건이었는데, 이 중 1만3393건이 소유자가 취득한 지 2년이 안 된 주택을 판 경우이다. 양도세가 부과되는 전체 거래 중에 23%, 다섯 건 중 한 건은 원칙적으로 양도세 중과 대상이라는 얘기다.
주택을 두 채 이상 소유한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차별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국회에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폐지하는 법안을 내놓았지만,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경우에는 양도세 외에도 따라붙는 세부담이 많다. 다주택자는 집을 오래 가지고 있어도 양도세 공제 혜택이 세액의 30%로 제한된다. 1주택자는 고가 주택을 가지고 있어도 이 비율이 80%가 적용된다. 또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할 때도 다주택자는 우선 검토 대상이다. 근무하는 부처가 세종시로 이사한 공무원 김선영씨(40ㆍ가명)는 "아이들 교육 탓에 서울에 있는 집은 놔두고 세종시에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2년 안에 집을 못 팔면 꼼짝없이 다주택자가 될 판"이라고 말했다.
세금 제도가 이렇게 거래와 소유 자체를 죄악시하다 보니, 일단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으면 무거운 세금 부담에 따른 높은 거래 비용이 거래를 더 위축시켜 침체를 가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부동산 세금인 양도소득세 징수 규모가 2006년보다 2011년 5000억원이나 줄어든 것은 이 같은 악순환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주택 거래 이득에 대한 이런 중과세 덕에 우리나라의 조세수입 중 부동산 세금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넷째로 높다. 우리보다 비중이 높은 미국이나 뉴질랜드는 땅덩어리가 넓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실제 부동산 세부담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봐야 한다.
◇"세금 부담 줄여야 거래 회복"
전문가들은 세제가 잦은 거래나 많은 주택 소유를 죄악시하지 않아야 성장 속도가 느려져 가격 상승 기대가 꺾인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이 정상적인 거래 수준을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충고한다. 임달호 현도컨설팅 대표는 "강남 등 주거 선호 지역은 다주택자나 단기 양도자들이 세금 부담 탓에 주택 처분을 미뤄 거래가 막힌 경우가 많다"며 "퇴로를 열어줘야 거래가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건영 기획재정부 부동산팀장은 "1주택자에게만 세혜택을 주다 보니, 여력이 있어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친척 이름을 빌리는 등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며 "중장기적으로 1주택자와 2주택 이상자들의 차별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