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본사가 있는 대형 로펌 A사는 최근 세종시에 오피스텔을 마련했다. 로펌 변호사들은 기업이 과징금을 물게 된 사건을 맡아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공정거래위원회를 찾아가야 할 일이 많은 편이다. A사 소속의 한 변호사는 "세종청사를 오가면서 업무도 보고 휴식도 취하고 회의도 할 '아지트'가 하나 필요해서 마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수협중앙회도 올해 세종시에 전세 아파트를 얻었고, 해양환경관리공단은 월세를 내는 원룸을 마련했다. 이 외에 여러 대기업이 세종시에 아파트·오피스텔이나 사무실을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에서 공무원을 상대하는 대관(對官) 업무를 맡고 있는 한 간부는 "일찌감치 목 좋은 곳에 숙소를 마련해야 할 것 같아서 올해 안으로 아파트 하나 마련하려고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세종시에 근거지를 마련하려는 이유는 세종청사에 있는 정부 부처와 관련된 회사 업무를 처리하는 직원들이 일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다. 공정위 관계자는 "아직은 당일 왕복으로 일처리를 해결하지만 밤늦게 끝나는 경우는 잘 곳이 없어서 불편하다는 기업체 직원들이 있다"고 말했다. 또 장기적으로 세종시가 행정 중심 지역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미리 좋은 곳을 선점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기업들이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아지트로 삼는 것은 세종시에 제대로 된 업무용 빌딩이나 상가가 없는 데다, 제반 여건상 잠자리까지 해결되는 게 좋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행정복합도시건설청 관계자는 "대기업들로부터 세종시에 빌딩을 하나 짓고 싶으니 땅을 팔 수 없느냐는 문의 전화가 종종 오지만 도시 계획이 완료돼 있어 땅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개 기업들은 아지트를 마련하는 작업을 은밀하게 진행하고 있고, 아지트를 마련한 뒤에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있다. 최근 오피스텔을 마련한 A 로펌 관계자는 "로비를 한다는 오해를 살까봐 외부에는 일절 알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