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전지를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가지고 다니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노트북 컴퓨터 등 전자기기를 수시 충전할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3~5년 안에 이 상상은 현실이 된다. ‘휘는 태양전지’가 2016년쯤 상용화하기 때문이다. 휘는 태양전지는 휘어지는 재질의 플라스틱 위에 빛을 전기로 바꾸는 재료를 덧씌워 만든다.
모바일 기기가 늘다 보니 모바일 기기의 전기 소모량도 폭증하고 있다. 2015년에는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절반을 모바일 기기가 쓸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전기 생산이 용이하고 휴대가 쉬운 보조전원의 필요성도 아울러 커지고 있다. 가장 유력한 대안은 휘는 태양전지다. 문상진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휘는 디스플레이부터 웨어러블 컴퓨터(wearable computer·입는 컴퓨터)까지 스마트 기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휘는 태양전지의 수요는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휘는 태양전지는 전체 태양전지 시장의 10%를 차지한다. 전문가 상당수는 이 비중이 갈수록 커져 5년 뒤 5000억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산한다. 이동윤 한국전기연구원 태양전지연구팀장은 “국내 기업 상당수가 휘는 태양전지 개발과 기술이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빠르면 2015년 늦어도 2020년이면 휘는 태양전지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민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사는 “휘는 태양전지 기술은 (국내 업체가 세계 최고의 기술력 가진) 디스플레이, 반도체와 유사하다. 전지 기술만 완성되면 국내 장비업체가 태양전지를 연속·고속 생산하는 체제로 전환할 수 있어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 국내 기업 잇따라 유기 태양전지 사업 진입… 3년 뒤 제품 나올듯
국내 대기업은 휘는 태양전지 중 대량생산이 용이한 유기 태양전지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유기 태양전지는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해 유리 같은 민감한 소재를 쓸 때보다 생산성이 좋다. 얇고 가벼우면서도 구부릴 수 있어 활용 폭도 넓다.
LG화학은 작년 말부터 정부 국책과제로 유기 태양전지를 개발하고 있다. 2017년 시제품을 만들 계획이다. 디스플레이나 건물 유리창에 붙여 보조 전력원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이재철 LG화학 기술연구소 부장은 “싸게 많이 만들어야 하므로 연속인쇄 공정 롤투롤(roll to roll) 장비를 사용해 태양전지를 대면적(大面積)으로 빠르게 찍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도 같은 생산방식을 채택했다. 갈진하 코오롱인더스트리 중앙기술원 실장은 “원재료가 대면적에서도 에너지 효율을 얼마나 보존하느냐가 관건이다. 지금 롤투롤 공정에서 효율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16년부터 코오롱스포츠의 아웃도어에 휘는 태양전지를 부착할 방침이다. 앞으로 전자기기와 차량용 보조전원, 빌딩 전원까지 순차적으로 제품군을 늘릴 계획이다.
중소기업은 염료감응 태양전지 개발에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빛에 노출된 염료가 전기를 만들면 전지가 저장하는 방식이다. 색깔도 다양하게 낼 수 있다. 염료감응 태양전지는 불투명한 재질이라 빛 차단용 커튼이나 건물 외장재 형태로 개발되고 있다.
상보는 국내 최초로 염료감응 태양전지의 생산 장비를 들여왔다. 빠르면 오는 10월 시제품이 나온다. 이상근 상보 전무는 “2008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기술을 이전받아 5년에 걸쳐 상용화 방안을 연구했다. 지붕에 두루마리처럼 깔거나 벽에 붙여 실내조명의 보조전원으로 사용하는 태양전지를 2015년까지 상용화할 것”고 말했다. 그 외 동진쎄미켐, 이건창호등이 염료감응 태양전지를 개발하고 있다.
고민재 박사는 “염료감응 태양전지가 유기 태양전지보다 상용화에 더 근접했다. 유기 태양전지는 풀어야할 기술적 과제가 아직 남아있다”고 진단했다.
◆ 언제 어디서나 에너지 공급… 효율성·가격 개선은 과제
휘는 태양전지는 빛의 세기와 상관없이 일정하게 전기를 만들 수 있다. 일반 태양전지는 일조량이나 빛의 각도에 따라 발전량이 일정치 않다. 아침, 저녁 빛이 세지 않거나 날이 흐리면 발전량이 줄어든다. 이와 달리 휘는 태양전지는 빛 흡수율이 높아 실내등처럼 약한 빛으로도 일정한 전력을 만들어낸다.
휘는 태양전기가 상용화하려면 광변환효율을 높여야 한다. 유기 태양전지의 광변환효율은 3~4%에 불과하다. 태양광 100 중 3~4를 전기로 바꾼다는 뜻이다. 실리콘 태양전지의 7분의 1 수준이다. 전문가는 10%까지 효율을 높여야 상용화할 만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격도 상용화하기에는 아직 비싸다. 이동윤 태양전지연구팀장은 “실리콘 태양전지 값이 1와트당 1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휘는 태양전지는 1와트당 3~4달러나 된다. 0.5달러선까지 낮춰야 제품 생산 시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