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輕-財 북리뷰] 시계와 문명

조선비즈
  • 윤예나 기자
    입력 2013.08.04 16:35

    카를로 M 치폴라 지음ㅣ최파일 옮김ㅣ미지북스ㅣ244쪽ㅣ1만3000원

    “우주는 신성한 존재와 유사한 것이 아니라 시계와 비슷하다.”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
    “우주는 거대한 시계태엽 장치.” (영국 화학·물리학자 로버트 보일)

    유럽 과학자들은 곧잘 우주를 ‘시계’에 비유했다. 이들에게 시계는 단순한 기계 장치가 아니라 우주의 원리를 보여주는 세계의 축소판이었다. 기계식 시계가 유럽 역사에 등장한 것은 13세기 후반. 그 후로 시계는 세계사의 흐름까지 바꿔놓았다. 그 변화를 추적한 것이 이 책이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저자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1922~2000)는 근대 초반, 유럽 문명의 진보를 시계의 발전으로 풀어냈다.

    시간을 재기 위해 사람들은 다양한 장치를 만들어냈다. 해시계가 최초의 해법이었다. 고대 서양에서는 클렙시드라라 불리는 물시계, 불시계도 개발됐다. 본격적인 ‘시계의 시대’는 13세기 후반에 와서야 개막됐다. 굴대 탈진기(톱니바퀴 회전 속도를 고르게 하는 장치)가 나오면서 기계식 시계의 탄생을 알렸다.

    마침 유럽에서 최초로 대포가 제작된 시기와도 맞물렸다. 그만큼 당시 금속 직공이 성장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시계만 전문으로 만드는 시계공이 등장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초창기 시계 제작자 다수는 대포 제작자이거나 대장장이, 대포 주조공이었다. 금속을 다루는 법을 아는 전문가들이 이따금 기계식 시계도 만드는 식이었다.

    기계식 시계가 등장한 초반, 대부분의 시계는 어느 개인의 물건이 아니라, 공공의 용도로 만들어졌다. 제작 비용이 비싸 공공 부문이 발주하지 않으면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시계태엽을 관리하는 특별 관리장까지 임명하면서 비용은 어마어마하게 들어갔다. 그래도 사람들은 대체로 공공 시계를 무척 자랑스러워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15세기 한 프랑스 문헌은 “일부 도시가 도시를 빛낼 크고 훌륭한 기계를 갖고 있다는 명성을 두고 다른 도시와 경쟁했다”고 묘사했다.

    도시의 자부심과 실용성, 기계에 대한 관심이 결합하면서 시계는 널리 퍼져 나갔다. 특히 16세기와 17세기엔 시계를 구입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 수요가 크게 늘었다. 개인용 소형 시계가 활발하게 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시계공의 면면도 변화한다. 수공업자 출신이 대부분이던 15세기 시계공과는 달리, 17세기 중반을 거치면서 과학이 측시학에 결합된다. 저자는 “정밀 기기가 과학의 진보를 가져왔고, 과학은 정밀 기기의 향상을 가져왔다”며 “과학자와 시계공이 긴밀하게 협력하며 시계 제작 기술 진보의 돌파구가 열렸다”고 쓴다.

    시계 산업에는 원자재보다 숙련공 개개인의 자질이 크게 작용했다. 숙련공의 출신과 이주 경로에 따라 시계의 중심지도 바뀌었다. 16세기부터 17세기 초까지 시계의 중심이었던 아우크스부르크와 뉘른베르크는 1618~1648년 신·구교의 ‘30년 전쟁’으로 쇠락하고, 개종한 시계공들이 제네바와 런던 등으로 망명하며 새로운 시계의 중심을 구축했다.

    전체가 두 장(章)인 책의 다음 장은 중국과 시계 이야기에 할애된다. 유럽의 기계식 시계라는 혁신을 접하고도 18세기까지 바뀌지 않은 중국의 수공업 문화를 조명한다.

    중국과 유럽이 교역을 시작하고 상당 기간 유럽은 무역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중국에 비해 경쟁력 있는 물품은 ‘은(銀)’밖에 없었다. 이런 판도에 변화를 가져온 게 유럽의 기계식 시계였다. 1582년 마카오의 예수회 신부들이 중국 양광 총독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동으로 시간을 알리는 종을 치는 시계’를 선물로 바치기 시작했다. 기계식 시계는 황제에게 헌상됐고, 황실 안에 시계 제작소가 생길 만큼 인기를 끌었다. 웬만해선 외국인과 외국 물건에 감탄하지 않던 중국인으로선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중국에도 시계와 더불어 금속 수공업이 개화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문제는 시계를 받아들인 방식이었다. 중국의 경우 오히려 수공업의 발달 속도가 늦어졌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서양인들은 시계를 과학 발전에 이용했던 데 반해, 중국인들은 한갖 ‘장난감’으로 여겼다. 유럽의 시계가 들어오던 명대 중국에선 수공업자와 기술을 천대하는 문화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다수 중국 농민은 시간이라면 여전히 날과 달로 헤아리는 데 익숙했다. 하루를 같은 단위로 쪼갠 시계가 일상의 장치로 들어설 여지는 별로 없었다. 저자는 결국 “중국인의 고립성이 기술 발달의 발목을 잡았다”고 진단한다.

    시계의 역사를 통해 동서양의 근대 과학 발전사를 일별한 책이다. 무엇보다 세밀한 묘사가 읽기의 즐거움을 더한다. 큰 그림을 그려내고 설명이 따라붙기보다는 구체적으로 “1449년 제네바에는 시계공이 딱 한 명 있었다, 1550년쯤 몇몇 프랑스인 시계공이 제네바에 왔다”고 밝히는 식이다. 사이사이에 끼워놓은 진기한 일화들도 흥미롭다. 가령 17세기 프랑스에선 시계 숫자판에 향신료를 발라, 어두울 때에는 향신료 맛으로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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