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법원경매에 나온 3231톤짜리 페리선은 감정가의 5%에도 못 미치는 헐값에 낙찰이 이뤄졌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가 진행중인 부산의 한 중소 조선업체가 보유했던 길이 57.68m, 너비 26m, 감정가 58억4484만원짜리 페리인데, 무려 6차례나 유찰된 끝에 결국 2억7270만원의 헐값에 주인을 찾았다. 조선·해운업계 침체로 배가 경매에 부쳐져도 선뜻 사겠다고 나서는 입찰자가 없어 유찰에 유찰을 거듭하다 보니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낙찰이 이뤄지는 것이다.
최근 경매시장에서 선박 물건이 헐값에 처리되고 있다. 31일 경매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경매 시장에 나온 선박 물건은 지난해 상반기(103건)보다 늘어난 137건으로, 이중 총 57건이 낙찰됐다.
이들 선박의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45.2%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51.6%)보다 6.4%포인트 떨어졌다.
경매시장에서 나오고 있는 선박 물건들의 경매지표를 보면 조선·해운업 불황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상반기 진행된 선박 낙찰가율은 73.9%로 양호한 편이었으나, 이듬해 상반기 58.1%로 하락하더니 올 상반기에는 50% 선에 머무르고 있다.
같은 기간 감정가 총액은 4배 이상 늘었지만 상대적으로 총낙찰가 상승액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07년 상반기에 있었던 선박 경매 진행건수와 올 상반기 건수는 각각 125건, 137건으로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총 감정가는 2007년 137억5365만원이었으나, 2013년 상반기에는 565억1398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불황이 지속되며 전보다 덩치 큰 선박들이 경매 시장에 대거 등장한 탓이다.
반면 낙찰가격 상승률은 총감정가 상승폭에 훨씬 못 미친다. 2007년 상반기 총낙찰가격은 102억1840만원, 올 상반기에는 255억6075만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경매 시장에 나온 물건들의 규모는 커졌지만 물건 가치는 떨어진 셈이다.
조선·해운업의 최근 심각한 불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선주협회에 따르면 최근 3년 새 국내 해운선사 180여개 업체 중 12개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80개 이상이 폐업한 상태다. 업계 3·4위인 대한해운(005880)·STX팬오션도 적자를 견디다 못해 기업인수·합병(M&A)시장에서 매물로 나온 상태다. 1·2위 업체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같은 업계 대표 업체들도 갖고 있던 선박을 하나 둘 내다 팔고 있다.
조선업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010140)과 같이 소위 기술력이 되는 빅3는 해양플랜트, FPSO(부유식 원유 생산ㆍ저장ㆍ하역설비)와 같은 고가 선박을 수주하고 있지만 대부분 업체는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지난해 중하위권 조선업종 기업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2.9%에 그쳤다.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 하유정 연구원은 "선박 물건이 늘어 경매 시장에 쏟아지는 물건이 많지만 낙찰가율은 전보다 더 떨어져 선박 값어치가 그만큼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며 "조선업체와 해운사들이 그만큼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