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일감 몰아주기 과세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만큼 완화방안을 검토하겠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기업들에게 발생할 비용(cost)이 과다하다면 경제민주화 강도나 시기 등을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

정부가 경제활성화를 위해 기업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기업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경제민주화 논의는 이제 접을 때라는 얘기도 정부내에서 공공연하게 나온다. 민간투자 활성화 없이는 하반기 경제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9분기만에 0%대를 벗어났지만 주로 정부 지출 확대 효과였다. 이에 따라 정부가 올해 세제개편안 등 하반기 경제정책에서 재계의 요구를 수용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도 하반기 민간 투자활성화가 관건이라며 정부가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세제 혜택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기완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경쟁정책 연구부장은 "기업들 입장에서 보면 세계 경제 전망 자체가 밝지 않고 불확실성도 크기 때문에 투자를 자제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 국세청 세무조사 축소 이어 기재부는 세제 완화 분위기

기획재정부는 오는 8일 발표할 올해 세법개정안에서 기업의 세제 개선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공약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일몰이 도래한 비과세ㆍ감면제도를 원칙적으로 폐지한다는 입장을 밝혀왔지만 기업의 투자 등과 연계된 세제에 한해서는 필요성을 따져 예외를 인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일몰이 다가온 10대 비과세ㆍ감면 항목 중 두 번째로 조세감면 규모가 큰 에너지절약시설 투자세액공제는 일몰을 연장하되 세액공제율(현재 10%)을 낮추고 수혜 대상을 조정할 예정이다. 또 대기업이 '중소기업 상생협력을 위한 기금'에 출연하면 세액공제를 적용하는 제도도 유지하기로 했다.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 부담도 완화한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27일 제주 해비치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제주하계포럼에서 "일감 몰아주기 과세의 경우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세금을 달리 적용한다든지 대기업의 경우는 지분율 조정 등을 담은 세법을 준비하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계열사 간 거래에서 대주주 지분이 3% 이상이고, 내부거래 비율이 30% 이상인 경우 증여세가 부과되는데, 과세 대상의 99%가 중소기업으로 파악되면서 기업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국세청은 올해 세무조사 규모를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세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공격적으로 세무조사에 나섰지만 기업활동 위축을 우려해 방침을 바꿨다. 김영기 국세청 조사국장은 지난 25일 기자간담회에서 "경기 침체 등 경영 여건을 감안해 연간 세무조사 건수를 1만9000여건에서 1만8000여건으로 1000여건 축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 기업 투자 확대 절실한 정부

정부가 이처럼 기업 달래기에 나서는 것은 하반기 경제가 기업의 투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2분기 GDP 성장률이 9분기만에 전분기 대비 1%대 성장률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2분기들어 정부 출범 지연으로 미뤄진 예산 지출과 추가경정예산 집행 등을 통해 재정을 확 풀었기 때문이다. 올해 2분기 재정지출은 지난해 2분기보다 13조5000억원 가량 늘었다. 그러나 하반기 재정지출 증가폭은 둔화될 예정이다. 3분기에 전년대비 9조원, 4분기에는 8조6000억원 늘어날 전망이다. 결국 하반기에도 2분기 처럼 전분기 대비 1%대 성장률을 이어가려면 민간투자 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하반기 민간 투자가 상반기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기 어렵다. 기업 설비투자는 지난 5월까지 전년동월대비로 13개월 연속 감소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100대기업중 67.1%가 '하반기 투자를 상반기보다 늘릴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 재계 "수도권 규제 완화 등 화끈한 대책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후 두 차례에 걸쳐 투자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각종 법 개정 사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기업들이 체감하는 투자 분위기는 그다지 나아진 게 없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정권 들어 경제민주화, 지하경제 양성화로 기업들이 풀이 죽은데다, 정부가 풀어주기로 한 각종 대기성 투자가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면서 실망감이 크다"고 말했다.

재계는 투자에 불을 지피려면 보다 화끈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투자활성화는 경제상황, 산업수급, 규제 상황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데 현 시점에서는 규제 상황 개선이 중요하다"며 "정부가 전면에 나서 투자 심리를 살리고 재정·금융을 친기업적으로, 성장지향적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의료 영리법인(투자개방형 병원) 허용과 같은 서비스 산업 대책을 포함해 수도권 내 공장 증설 허용 등 수도권 규제를 풀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영리 의료법인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고 있지만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이달 발표한 서비스 산업 대책에 포함하지 않았다. 수도권 규제 완화는 자연보전권역 내 공장 신증설 제한을 풀어달라는 게 재계의 핵심 요구 사안이다. 재계에 따르면 광주ㆍ이천ㆍ용인 등 수도권 자연보전권역에 있는 62개 기업이 공장 신증설과 관련해 애로를 호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