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국부펀드들이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데… 외국계 자산운용社가 독식… 국내 대형운용社, 15년간 1건도 수주 못해

  • 방현철 기자

  • 입력 : 2013.07.18 03:07

    [안방도 못 지키는 한국 금융] [1] 운용사 '천수답式' 경영

    長期 안정수익 원하는 큰손, "믿을 만한가"에 초점 두고 일관된 운용 철학·원칙 중시
    국내 대형 운용사들 실적은 주가 오르내릴 때마다 출렁… 펀드매니저 등 교체도 잦아

    한국 금융은 글로벌 기준에서 보면 꼴찌에 가깝다. 외환위기 이후 제조업에선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기업이 탄생한 반면 금융산업은 엄청난 공적자금 투입에도 여전히 뒷골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수익성이 떨어지자 한국 금융회사들은 해외 진출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가 먼 자금 운용과 인사 구조, 영업 관행 등을 갖고서는 우리 안방조차 지켜내기 힘든 실정이다. 한국 금융산업의 현주소를 시리즈로 짚어본다.  /편집자주

    우리나라 증시가 1998년에 외국인에게 완전 개방된 이후 크고 작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들어와 국내 주식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테마섹을 비롯한 국부펀드 등 글로벌 큰손들까지 주식·채권 등 한국물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자산운용사들은 외국에서 들어오는 거액의 투자 자금을 맛도 못 보고 있다. 한국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는 것인데도 외국계 자산운용사가 거의 독식하고 있다. 증권사의 한 임원은 "외국인들은 지금도 위탁매매사를 선정할 때 '결제가 제대로 될 수 있느냐'를 따진다"며 "그만큼 한국 금융회사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고 말했다.

    증시 호, 불황에 따라 춤추는 펀드 수탁고 그래프
    금융시장 완전 개방 후 15년이 흘렀지만 토종 자산운용사가 해외 국부펀드로부터 자금을 위탁받은 것은 지난해 10월 딱 한 건 있었다. 그것도 삼성운용·한투운용·미래에셋운용·KB운용 등 내로라하는 대형 자산운용사가 아닌 주식형 펀드 수탁고 6위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었다. 이 회사가 지난 5월부터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글로벌정부연금펀드(GPFG), 2위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공사(ADIA) 등 두 국부펀드의 자금 10억 달러를 위탁받아 운용하게 되었다는 게 뉴스가 될 정도이다. 〈16일자 B3면 참조〉 일본만 하더라도 해외 국부펀드가 일본 주식에 투자할 때 일부를 노무라·다이와 등 일본 토종 자산운용사에 위탁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운용사들이 국부펀드 위탁 운용에서 배제된 주요 원인은 수익률을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GIPS(국제투자성과기준) 기준으로 공개하는 걸 꺼리기 때문이다. GIPS의 정신은 수익률 좋은 펀드만 모아서 공개하면 안 된다는 것인데,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단기 성과가 좋은 펀드 위주로 선전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GIPS 기준 수익률의 공개를 꺼리는 것이다.

    국내 운용사들 판매사에 휘둘리다 단기 성과에만 치중

    글로벌 금융시장의 큰손인 세계 10대 국부펀드 목록 표
    국부펀드들은 미국계 자산운용사인 프랭클린템플턴에도 국내 주식 운용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운용 인력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지? 이탈 가능성은 있는지? 종목 발굴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묻는다. 프랭클린템플턴은 65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세계적인 자산운용사인데도 이런 기초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다. 오성식 프랭클린템플턴 한국주식부문 대표는 "국부펀드와 같은 외국 장기 투자자가 자산운용사를 고를 때 기준은 '잘한다'가 아니라 '믿을 만한가'이다"라며 "일관된 운용 철학과 원칙을 지키고 있지 못하면 국부펀드의 자금을 운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금융그룹이나 대기업의 계열사여서 단기 성과를 좇는 구조이다. KB운용은 펀드 중 77%, 미래에셋은 42%, 삼성운용은 41%가 계열사로 팔려나간다. 계열 판매회사의 의사에 맞춰 단기적으로 잘 팔릴 것 같은 펀드만 양산하다 보니 장기 성과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판매사들은 3개월 수익률이 높은 펀드 위주로 투자를 권유한다.

    국내 운용사(KB운용)와 외국계 운용사(PCA운용)의 최고경영자(CEO)를 모두 지낸 이원기 전 이스트스프링운용 대표는 "6개월만 수익률이 안 좋으면 펀드에서 돈이 빠져나가고, 자산운용사들은 이름만 바꿔 새 펀드를 내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선 5~10년 장기 수익률이 좋게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국부펀드 같은 외국인 장기 투자자들이 보는 건 5년 이상 수익률이 안정적이냐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시장이 좋을 때는 펀드 수익률이 급등했다가 나쁠 때 수익률이 급락하는 게 특징이어서 외국인들이 볼 때는 리스크(위험) 관리를 제대로 못 하는 운용사로 보인다고 한다.

    운용사 대표와 펀드 매니저의 잦은 교체

    국내 대형사들은 금융그룹 계열사이거나 대기업 계열사이다 보니 인사철만 되면 대표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조재민 KB운용 대표는 “해외 장기 투자자가 한국 시장에서 대형사보다 독립계 회사를 선호하는 이유는 회사를 소유한 대표가 운용을 책임져서 투자 기간 중간에 운용 철학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단기 성과를 추구하다 보니 실적이 안 좋을 때마다 펀드 매니저를 바꾼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펀드 매니저의 평균 근무 기간은 미래에셋운용이 4년7개월, 한투운용이 4년9개월, KB운용이 5년4개월, 삼성운용이 6년이다.

    반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프랭클린템플턴은 평균 근무 기간이 7년6개월, 피델리티가 7년으로 길다. 트러스톤은 핵심 인력의 근무 기간이 길다고 하는데, 투자자문사 시절부터 한 회사에서 근무해서 리서치 책임자는 10년, 투자전략팀장은 13년, 운용본부장은 9년을 일했다고 한다.

    이런 문제는 국민연금의 운용사 선정 때도 지적되고 있다. 국민연금이 해외 주식을 운용할 업체를 선정할 때 국내 자산운용사를 포함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해외 자산운용사에 비해 국내 운용사들의 운용 인력 이동이 잦아 전문성이 떨어지고 성과도 저조할뿐더러 투자 및 위험관리 프로세스가 취약해 선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재민 KB운용 대표는 “대부분 외국인은 아시아 투자나 신흥국 투자의 일부로 한국에 투자하기 때문에 역사가 짧은 국내 운용사로서는 아시아·신흥국까지 넓게 투자하는 외국계 운용사와 경쟁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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