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버그 "적극적인 여성에게 '나댄다'고 하지 마세요"

입력 2013.07.03 21:44 | 수정 2013.07.03 23:02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 /노자운 기자

“적극적인 여자 아이를 보면 나댄다고 하지 마세요. 지도적인 인물이 될 아이라고 해 주세요.”

여성의 진취력을 독려한 베스트셀러 ‘린 인(Lean In·뛰어들어라)’의 저자답게 그녀의 강연은 시종일관 여성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메시지로 가득했다.

“똑같은 행동인데도 남성인 경우엔 ‘적극적’이라고 하면서, 여성이 나서면 다르게 말하지요? 한국에서도 그런 말이 있다고 들었어요. ‘나-댄-다!’ 어때요? 제 발음이 맞나요?” ‘나댄다’라는 우리말을 애써 또박또박 발음하자 객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3일 저녁 서울 신촌 연세대 대강당. 요즘 미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여성 중 한 명인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책임자(COO)의 특별 강연이 한창이었다. 주제는 여성의 사회 진출 활성화와 이를 위한 환경 조성의 중요성. 객석에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많이 눈에 띄었다.

강연 시작 시간인 오후 7시가 되기 훨씬 전부터 객석은 자리가 차기 시작했다. 취재진들도 앞쪽 자리를 메웠다. 올해 나이 43세의 여성 리더.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 명단에 3년째 이름을 올리고 있는 파워 우먼이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가 ‘미래의 여성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라고 전한 적도 있다. 지난해 포천이 정한 ‘2012년 최고 연봉 여성’ 가운데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 막강한 유명세는 한국의 강연장에서도 여실히 느껴졌다.

7시 2분. 그녀가 강당 뒷쪽에서 일행과 함께 들어서자 카메라를 든 취재진이 구름처럼 따라붙었다. 한동안 인파에 묻혀서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김진우 연세대 학술위원장의 소개에 이어 샌드버그가 무대로 올라왔다.

170센티미터 조금 더 되는 키에 다부진 체구. 짙은 오렌지색 원피스에 검정 자켓을 걸쳐 입은 모습에서 세련된 커리어우먼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굽이 높지 않은 검정 구두를 신은 그는 자신감 넘치는 걸음으로 무대 중앙으로 나왔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가 자신의 자서전 제목 'LEAN IN'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노자운 기자

객석에서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나왔다. 휘파람 소리도 곳곳에서 들렸다. 그녀는 마치 익숙한 공연장 무대에 오른 락스타 같았다.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가 싶더니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안녕하세요!”라고 외쳤다. 동시에 상체를 깊이 숙였다가 몸을 세우는 순간, 어깨까지 닿는 윤기 나는 짙은 갈색 머리가 찰랑거렸다. 명랑 소녀 같았다. 오늘 오전 공항에 도착해서 오는 길이라는 데도 피곤한 기색이라곤 별로 없었다. 가까이서 본 얼굴이 책 표지에 걸린 사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헤드셋 마이크를 착용한 샌더버그는 무대를 좌우로 오가며 말을 이어갔다. 손짓을 섞어가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테드에서 강연으로 인기를 얻은 연사임을 실감케 했다.

그녀가 선 무대 뒤로 대형 스크린에서는 그녀의 실시간 근접 촬영 장면이 동시에 펼쳐졌다. 상단에는 실시간 한글 번역문이 떴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 페이스북 코리아팀을 소개하겠다며 힘차게 불렀다. “스탠드 업! 플리즈!” 1층 객석 왼쪽 중간쯤에서 일군의 남녀 10여명이 벌떡 일어서서 함께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자유로움과 신바람을 중시한다는 페이스북의 회사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샌드버그는 A4 절반 크기 종이에 메모를 들고 이야기했지만 이따금씩 주요 대목을 확인할 뿐 거의 보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친절한 원어민 강사처럼  빠르지 않은 어속에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얘기했다. 말뿐만 아니라 바디랭귀지로 이야기했다. 표정도 다양했다. 인상을 썼다가 폈다가, 눈썹을 치켜 떴다가 모았다가 반복했다.

강연 내용은 상당 부분이 책에서 소개한 일화와 교훈들이었다. 샌드버그 자신도 남녀 차별을 겪었다며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저녁식사를 하던 도중이었어요. 한 남성이 혼자 계속해서 말을 하길래 내가 살짝 끊었어요. 그러자 그 남성은 손을 내 얼굴 바로 앞에 갖다대며 ‘내가 얘기하겠다’며 잘라 말하더군요.”

샌드버그는 이런 남녀 차별적인 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자신감이 떨어지게 된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성공 요인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면, 남성은 자기 능력이 뛰어나서 성공했다고 말할 거에요. 반면 여성이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운이 좋았다, 다른 사람이 도와줬다’고 대답하겠죠. 여성도 남성처럼 스스로의 능력때문에 성공했다고 믿는다면, 다음 기회에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될 거에요.”

샌드버그는 강연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펼치고 있는 ‘린 인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해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연단 쪽으로 걸어갔다. 준비해온 흰 도화지를 들고 나와 펼쳐 보였다. 붉은색의 큰 영문 타이핑으로 ‘Lean In’ 책 제목이 적혀 있었다. 그 밑에는 검정색 손글씨로 “전 여성의 리더십에 대한 책을 쓰겠습니다”가 적혀 있었다. 청중 각자에게 그런 각오와 다짐을 호소하는 말로 강연은 끝이 났다.

그녀는 강연 시작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크게 팔을 벌리고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땡큐!” 박수 소리가 강연 시작 때보다 더 컸다.

7시46분. 사회자가 질의 응답 시간의 시작을 알리자 곧장 객석 여기저기서 팔이 올라갔다. 질문도 다양했다.

한 남성이 “당신 책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고 했다. 샌드버그는 “아직도 대기업 임원의 5% 이상이 여성인 나라가 몇 곳 없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남자에 대한 역차별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고, 본질적인 문제도 아니다”라고 응수했다. 그는 “미국 상원만 해도 여성 의원은 고작 20%임에도 불구하고 신문에는 헤드라인으로 ‘여성들이 국회를 장악했다’고 뽑는다”며 탄식했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 /안지영 기자

한 여학생은 장래 진로를 고민하는 질문을 했다. 샌드버그는 “회사를 택할 때는 현재의 모습보다 성장 잠재력을 가장 중요하게 보라”고 답했다. 또다른 여학생이 “인생의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뭘 택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질문하자, 갑자기 객석의 페북 코리아 직원들을 향해 “여러분은 페북이 첫 직장인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라”라고 반문했다.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다시 질문한 여학생을 향해 “모두 다 차례로 시도해보라”라고 답했다. 간명하면서도 재치있는 답변에 박수가 터졌다.

또다른 여성은 “제 또래인 20대초만 해도 여성들은 자신감에 차 있는데 20대 후반으로 가면서 결혼, 임신, 출산과 더불어 퇴보하는 것 같다. 어떡해야 하나”라고 물었다. 샌드버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혼을 결정하는 것과 어떤 배우자를 택하느냐는 것”이라며 “배우자의 지원이 없이는 여성이 고위직에 오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런 후에는 앞서 질문했던 남학생을 가리키며 “이 남성 같은 배우자를 고르면 완벽할 것”이라고 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삼성SDS 직원이라는 남성은 “여성과 협력해야 한다는 건 알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 세대는 힘들 것 같다. 다만 나중에 우리 딸이 나중에 차별을 받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 조언해 달라”고 했다. 샌드버그는 “솔직한 질문 고맙다. 맞다. 당신 세대는 어렵다. 하지만 여러분 세대가 안 바뀌면 딸 세대에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아이들을 위해 바꾸자면서 자기 세대에는 안된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이다. 당신부터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11개월짜리 딸을 가진 여의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질문자가 “의사로서 일을 하다 보면 가족과 자녀에게 죄책감이 들 때가 많다”며 “뚜렷한 성취감이 없이도 어떻게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나”라고 물었다. 샌드버그는 “페이스북 사내에는 ‘두려움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실행해 보는 것이 완벽함보다 낫다’는 문구가 적혀있다”면서 “여성은 자기 성취에 대해 남성보다 자신감이 적고 죄책감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8시 19분 그녀가 마지막 격려로 문답 시간의 끝을 장식했다. “진심으로 바랍니다. 1분만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린 인’할 것인가.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오늘 가서 결심을 적어 벽에 붙여보세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땡큐!”

마지막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가 3일 오후 연세대 대강당에서 강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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