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사들의 개업이 어렵다. 지난해에만 1625개 의원이 폐업했다. 반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성공한 기관도 있다. 의사이면서 경영자로 성공한 이들을 Dr.CEO 코너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불합격 통보를 받고 처음엔 비참했죠."
이상덕 하나이비인후과병원장은 1994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이비인후과에 입사 원서를 냈다가 떨어졌다.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대학 교수를 꿈꾸며 일본 연수까지 받았던 그에겐 날벼락이었다. 다른 대학에 다시 지원할까 하다가 자기 의원을 열기로 결심했다. 이 병원장은 "대학은 내 자리가 아니구나 싶었다"며 "교수가 못 돼 아쉽지만 개원하면 더 멋지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서른 둘, 젊은 의사의 과감한 도전이 시작됐다.
그는 스승이자 국내 코 내시경 수술을 처음 도입한 박재훈 당시 이대목동병원 이비인후과장을 설득해 함께 개원하는데 성공했다. 나아가 대부분 의원이 30~40평(66~99㎡) 규모이던 시절에 200평(660㎡)으로 개원했다. 평균 1억5000만원이면 개원할 것을 8억원이나 썼다. 의료장비 장기임대에만 4억원이 들었다. 이 병원장은 "주변에서 무모하다고 하더군요. 사고 한 번 친 거죠"라며 웃었다.
하나이비인후과병원은 지난달 31일 총 누적수술 4만6000건을 달성했다. 1995년 3월 개원한 이래 총 176만3467명의 환자가 이곳에서 진료를 받았다. 지난해 외래환자는 11만8871명, 수술환자는 3290명이다. 환자가 늘면서 2009년 의원에서 병원으로 승격됐다. 2011년엔 보건복지부에서 국내 최초 이비인후과 전문병원으로 지정 받았다. 이어 복지부의 의료기관평가인증을 획득하며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공식 인증 받기도 했다.
2명으로 시작한 이비인후과 전문의 수만 13명으로 늘었다. 이곳에 로열티를 내고 병원 명칭과 진료 매뉴얼을 공유하는 의료기관은 전국27개소다. 주변 전문병원에서도 앞선 시스템을 배우고 싶다며 방문하고 있다. 이 병원장은 "철저한 사전 준비를 토대로 차별화를 시도했다"고 성공 비결을 밝혔다. 개원의의 성공 모델이 된 이 원장을 최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병원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만 18년째다.
-의학 공부만 했는데 경영에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그는 곧장 노트 뭉치를 꺼내왔다. 개원을 준비하며 적었던 메모가 가득했다.) 처음엔 리스가 뭔지도 몰랐어요. 은행과 세무서 등 도움이 될만한 곳에 열심히 찾아가 묻고 또 물었습니다. 얼마나 알아봤던지 의료장비 장기임대도 그냥 않고 미국장비는 달러로, 독일장비는 마르크로, 일본장비는 엔화로 빌렸습니다. 환율 재미 좀 봤죠. 물론 외환위기 때 손해를 입었지만 곧 회복했어요."
-성공할 줄 알았나요.
"의료기술은 자신이 있었어요. 처음부터 대학병원 이상의 이비인후과를 목표로 시설과 장비를 최첨단으로 구비했습니다. 치료과정만 빠르게 단축시키면 승산이 있다고 봤습니다. 예컨대 축농증 수술의 경우, 대학병원은 예약·검사·진단에 최소 2주가 걸렸지만 우리는 1~2시간 이내로 끝냈습니다. 비용도 절반 수준으로 저렴했고요. 환자들이 원하는 걸 잘 알고 있던 게 주효했습니다."
-선진 진료시스템은 어떻게 도입했나요.
"개원 전에 준비를 철저히 했어요. 일본에서 알레르기 비염으로 박사 과정을 밟으며 이비인후과 전문병원인 카미오병원을 수 차례 견학했습니다. 모니터와 내시경을 이용해 환자가 자신의 귀·코·입 속을 볼 수 있게 한 점을 벤치마킹 했죠.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한 뒤에 치료를 시작하는 태도를 배운 겁니다. 실제 도입한 결과, 국내 환자들의 반응이 뜨거웠죠."
-성격이 굉장히 꼼꼼하신데요.
"2009년 병원 리모델링을 할 때 인테리어 업자들을 데리고 직접 일본과 국내 병원들을 돌아다녔습니다. 바닥재부터 천장 마감, 안내판 디자인까지 일일이 챙겼죠. 직원들이 같이 일하기 힘들어 합니다. (웃음) 그러나 남들과 똑같아서는 앞서나갈 수 없습니다. 차별화가 경쟁력인 셈이죠. 최신 의료장비를 제일 먼저 들여야 하는 등 일종의 강박증이 있어요. 다음날 할 일을 생각하느라 매일 밤잠을 설칩니다."
-의료기관인증도 빨리 받았는데.
"의원에서 병원으로 승격된 다음 또 무엇에 도전할까 고민했어요. 의료기관인증제도가 도입된다는 얘길 듣고 제일 먼저 해야겠다 싶었죠. 2011년 3월부터 8개월간 준비해 인증평가를 통과했습니다. 직원들이 매일 야근하며 엄청 고생했죠. 고맙게도 한 명도 그만두지 않았어요. 어려웠지만 그 과정을 통해 진료 수준이 크게 향상됐습니다. 직원들이 느끼는 만족감도 커졌고요. 이제는 주변 병원들이 찾아와 우리 시스템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뭐든 앞서나가는 병원이 되려 합니다."
-병원의 실적은.
"지난해 100여억원의 매출을 올렸어요. 순수익은 높지 않은 편입니다. 다른 병원보다 인건비 지출이 크기 때문이죠. 40병상 규모인데 직원이 90명으로 많습니다. 이 중 조무사가 아닌 정규 간호사만 22명을 채용하고 있고요. 최신 장비와 전문의 영입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경영을 공부한 적은 없었는지요.
"짧은 과정도 들은 적이 없어요. 최고경영자이지만 잘 모릅니다. 다만 내 수준에 맞춰 설명해줄 외부 전문가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법무, 노무, 회계, 경영분석 등에 대해 자문을 구하고 있어요. 다양한 컨설팅을 많이 받았는데 오늘날 성공하는데 큰 밑거름이 됐죠. 간단한 계약서 사인도 모두 전문가에게 확인한 뒤 처리합니다."
-최근 개원의사들과 협력을 강화하는 이유는.
"정부가 우리를 전문병원으로 지정한 건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잡으라는 뜻도 있습니다. 의원급 환자를 뺏으라는 것이 아니죠. 축농증이나 비염처럼 경증질환자가 상급종합병원에 몰리면 의료낭비입니다. 환자의 시간과 비용도 아깝지만 정작 치료 받아야 하는 중증질환자에게 피해가 갑니다. 동네의원에선 치료가 어려운 환자를 큰 병원으로 보내는데, 환자를 되돌려 받지 못해 불만이 크더군요. 우리는 의사가 자신의 환자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병원이 되려 합니다. 보내준 환자는 잘 치료해 반드시 회신서와 함께 해당의원으로 돌려 보냅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전담조직을 만들어 가동한 결과, 수도권 등 약 160개 의원에서 환자를 보내고 있습니다. 상생이죠."
-다른 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절대 환자를 돈으로 보지 말라는 겁니다. 수익을 극대화 시키려 하는 고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안 해도 될 검사나 처치를 하면 지금 당장은 도움이 될 지 몰라도 오래 못 갑니다. 요즘 환자는 정보가 많고 현명해서 다 알기 때문이죠. 약물치료를 충분히 하다가 수술하면 환자의 믿음도 커집니다. 우리 병원이 환자들의 신뢰를 얻게 된 비결입니다. 우리병원 의사들에게 부탁하는 두 가지는 늘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라, 환자를 가족처럼 생각하라 입니다."
-앞으로 계획은.
"직원들과 토론 끝에 정한 미션이 있습니다. 풍부한 임상경험으로 환자를 섬기는 세계적인 이비인후과 전문병원이 되는 거죠. 진행된 두경부암만 빼고는 다 자신이 있어요. 이비인후과 중에서는 대학병원보다 월등하고 싶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한 길만 바라본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봅니다. 전문병원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