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정희부터 이승만까지, 차(車)밖에 모르는 남자

조선비즈
  • 송병우 기자
    입력 2013.05.31 11:03 | 수정 2013.05.31 15:08

    약 30년 전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타던 출퇴근용 셔틀버스. GM이 만들었다. 이 역시 백중길 사장이 미국 대사관에 직접 찾아가 사온 차량이다. /사진=송병우 기자 sono@chosun.com

    백중길(71) 금호클래식카 대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차(車)종을 소장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버린 군용차부터 이승만, 박정희 등 전직 대통령의 방탄차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는 스물여섯살 부터 자동차 수집에 나섰다. 청년 백중길은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오자마자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자동차를 모으기 시작했다.

    택시 기사인 아버지 덕에 백 사장은 어릴 때부터 차에 관심이 많았다. 핸들이 가장 좋은 장난감이었다. 그러다 미 8군과 자동차학원 등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사업을 벌였다. 사업으로 버는 수입의 상당액은 자동차 수집에 쓰였다. 지금은 딸과 사위가 백 사장을 돕고 있다. 조선비즈는 지난 29일 경기도 여주에 있는 '자동차 역사박물관(가칭)'에서 백 사장을 만났다.

    문화재청은 백중길 사장의 보유 차량 다수를 문화재로 지정했다. /사진=송병우 기자 sono@chosun.com

    - 왜 차를 모으나.
    "아버지는 택시 기사였다. 어릴 때부터 자동차를 갖고 놀았다. 1968년 베트남에 파병을 갔다 제대했다. 당시 시발차 같은 클래식카가 도로에서 하나둘 사라지는 걸 보면서 차에도 역사가 있는데 아무도 수집하지 않는게 슬펐다. 그래서 1968년부터 자동차 수집에 나섰다."  

    - 지금 몇 대나 소장하고 있나.
    "600대 가량이다. 그동안 수해로 갖다 버린 차만 100대가 넘는다. 지금도 40대가량이 침수 탓에 상태가 좋지 않다."

    '시발' 자동차는 1955년 8월부터 생산됐다. 6·25 전쟁 당시 미군은 여러 경로로 군용 차량을 들여왔다. 전쟁이 끝난 후 한국에서는 자동차 재생 산업이 활기를 띠었다. 파괴된 자동차들의 부품을 활용해 운행 가능한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 시발 택시 이전까지 순수 국산차는 없었다. 1900년대 초 고종황제가 들여온 포드 자동차가 전부였다. /사진=송병우 기자 sono@chosun.com

    -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을텐데.
    "70~80년대에는 폐차 값이 쌌다. 자동차 부품업으로 생긴 수입은 모두 자동차 구입에 쓴다."

    - 지금 찾고 있는 자동차가 있나.
    "1962년 국내에 들어온 새나라 택시다.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가 일본에서 반조립제품(CKD)으로 200대 들여왔다. 일본 이름은 블루버드. 김 총리가 수입한 목적은 국내 자동차 산업의 부흥이었다. 이 차 2대가 경기도 충주의 자동차학원에 있다고 해서 찾아 갔지만 이미 버리고 없었다. 이젠 한국에는 없고 일본에 우핸들식으로 있다. 사와서 좌핸들로 복원할 계획이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타던 차도 있다고 하던데.
    "한국 정부가 1968년 미국에서 수입한 지엠(GM) 캐딜락을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이 차를 타고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 참가했다."

    '시발' 자동차는 1955년 8월부터 생산됐다. 6·25 전쟁 당시 미군은 여러 경로로 군용 차량을 들여왔다. 전쟁이 끝난 후 한국에서는 자동차 재생 산업이 활기를 띠었다. 파괴된 자동차들의 부품을 활용해 운행 가능한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 시발 택시 이전까지 순수 국산차는 없었다. 1900년대 초 고종황제가 들여온 포드 자동차가 전부였다. /사진=송병우 기자 sono@chosun.com
    백중길 사장은 수년전 여름철 홍수로 보유하던 차량 수백대를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지금도 50여대 이상의 차가 침수로 망가졌고 폐차시켜야 할 상황”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사진=송병우 기자 sono@chosun.com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8년 미국에서 수입한 지엠의 캐딜락(왼쪽)을 타고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 참가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60년 우리나라 최초로 리무진을 수입해 애용했다. 당시는 대통령이 아니면 리무진을 탈 수 없었다. /사진=송병우 기자 sono@chosun.com

    - 대통령들이 타던 차들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아니지만, 이승만ㆍ박정희ㆍ전두환 등 전 대통령의 차는 모두 외무부에서 관리했다. 5년 가량 타다 외무부 조달청으로 보내 수리한 뒤 국빈용으로 썼다. 외무부에 직접 가서 감정가의 몇 배를 줄 테니 차를 달라고 요청했다."

    - 한국 정부는 전직 대통령의 차에 관심이 없나.
    "아니다. 청와대에서 여러번 와서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이 타던 차를 팔라고 했다. 청와대 수송부가 관리하고 지하실에 전시하고 싶다고 하더라. 하지만 난 수집가다. 가치 있는 차들이 있어야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거절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타던 차들의 사진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사진 20여장 찍어 보내줬다."

    - 수출된 차를 가져온 적도 있나.
    "현대차가 포니2 2대를 미국 대사관에 판 적이 있다. 미 대사관까지 가서 모두 사왔다. 당시 내수용과 수출용이 달랐다. 자동차 소유주들이 같은 값이면 수집가인 내게 차를 팔았다."

     

    "이 차 정말 폼나네요"라는 기자의 말에 백중길 사장은 검은색 클래식카를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1950년식 스테드 보그 챔피언. 백중길 사장은 2007년 직접 미국으로 건너 가 당시 미국돈 4만달러를 주고 이 차를 사왔다. 스테드 보그 챔피언은 원래 마차를 만들던 독일계 미국인 형제가 생산한 자동차다. /사진=송병우 기자 sono@chosun.com
    이 차는 2008년 8월 12일 등록문화재 제399호로 지정됐다. 1937년 일본 아사후지사가 1933년형 포드 트럭을 소방차로 개조한 것을 우리나라에 들여와 서울에서 사용한 특수차량이다. 6기통 엔진, 85마력. 6·25전쟁 때는 평양에서 사용됐다. 이후 대구소방서에서 쓰이다가 1956년 상주의용소방대로 이관돼 약 20년간 사용됐다. 외장은 짙은 붉은색으로 1983년 상주의 어느 자동차정비공장 대표가 소유하고 있던 것을 백중길 사장이 사왔다.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소방차로 우리나라 특수차량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사진=송병우 기자 sono@chosun.com

    - 현대ㆍ기아차의 역사를 한 개인이 더 많이 갖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정부는 국제공항을 인천으로 옮기고 김포공항 터에 자동차 테마파크를 조성하려 했다. 당시 나는 김포공항 관리공단에 찾아가 자동차 박물관을 짓자고 건의했다. 공단 관계자는 땅을 빌려줄 수 있지만 자금은 지원하기 힘들다고 하더라. 그래서 현대차 종합기획실을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박물관 건립은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며 거절했다."

    백중길 사장은 "수집한 차들이 자라나는 청소년과 학생들의 교육자료로 활용되길 바란다. 하지만 개인이 관리를 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기업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관리에 힘을 보태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전했다. /사진=송병우 기자 sono@chosun.com

    - 국내에는 자동차 박물관이 없는데.
    "현대차, 기아차, 대우차(한국지엠)는 당시 자동차를 만드는 것만 생각했다. 김우중 대우그룹 창업주가 1992년 사람을 보내 '자동차 박물관을 만들겠으니 갖고 있는 차를 넘겨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조건도 맞지 않은데다 소장품을 넘기고 싶지 않아 싫다고 했다."

    - 영화나 드라마 제작에 차량을 지원하는 일이 많겠다.
    "100여편 이상 작품에 참여했다. 토지ㆍ여명의눈동자ㆍ수사반장ㆍ모래시계ㆍ장군의아들ㆍ야인시대ㆍ쉬리ㆍ공동경비구역JSA 등 주로 시대극에 차량을 지원했다."

    백중길 사장은 "수집한 차들이 자라나는 청소년과 학생들의 교육자료로 활용되길 바란다. 하지만 개인이 관리를 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기업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관리에 힘을 보태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전했다. /사진=송병우 기자 son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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