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미플루 개발 김정은 박사 '한국 제약업계 위한 처방' "巨人 다국적 제약사 어깨 이용하면 멀리 볼 수 있어"

조선일보
  • 조호진 기자
    입력 2013.05.29 03:34

    FDA 신약 후보 물질·임상 시험 결과, 이 정도 자료만 잘 이용해도 성공 가능

    김정은 카이노스메드 부사장은“한국 제약 기업이 공개 된 임상 시험 정보를 활용하고 임상·동물 실험의 아웃소 싱으로 비용을 절감하면 다국적 제약사와 경쟁해서도 이 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거인의 어깨 위에 서면 아무리 작은 사람도 먼 곳을 볼 수 있어요. 작은 벤처에서 세계적인 제약사가 된 길리어드의 성장 비결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국도 그렇게 한다면 매출 10조원이 넘는 제약사도 가능합니다."

    김정은(金正恩·73·카이노스메드 부사장) 박사는 1994년 당시 벤처기업이었던 미국 길리어드에 합류한 지 1년 반 만에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를 개발했다. 현재 타미플루는 신종독감·조류독감 치료제 시장의 95%를 장악하고 있다. 개발 당시 동물실험만 한 번 했는데도 세계적인 제약사들이 서로 가져가려고 경쟁을 벌였다. 최종 승자는 스위스 제약사 로슈였다. 로슈는 1997년 계약금 5억달러(약 5500억원)에 향후 매출의 22%를 받는 조건으로 타미플루를 사갔다.

    "계약금으로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를 제시하는 곳도 있었어요. 하지만 매출에 따른 수익 배분 비율이 높은 로슈를 택했죠."

    길리어드는 지금도 타미플루를 개발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하는 일 없이 매년 1조원에서 많게는 3조8000억원의 돈다발을 꼬박꼬박 받고 있다. 타미플루로 벤처기업의 수준을 벗어난 길리어드는 에이즈 치료제 '아트리플라', B형 간염 치료제 '비리어드' 등의 '블록버스터 신약'(매출 1조원짜리 약품)을 잇따라 성공시켰다. 길리어드는 작년 매출 97억달러(약 10조6000억원)를 기록해 세계 15위권 제약사로 올라섰다.

    "길리어드는 남이 개발 중인 신약을 주의 깊게 살펴보다 독창적으로 개선할 아이디어가 확실하면 비로소 뛰어드는 전략을 취합니다."

    실제로 타미플루는 임상 2상 시험 중이던 GSK의 들이마시는 인플루엔자 치료제를 먹는 약으로 개발했다. 에이즈 치료제인 아트리플라는 기존에 출시된 세 종류의 약이 지닌 약효를 하나로 합쳐 선발주자를 제치고 시장을 싹쓸이했다. 김 부사장은 "한국 제약사도 다국적 거대 제약사의 연구 동향을 활용하면 돈과 연구원이 적어도 충분히 블록버스터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부사장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눈여겨보라고 충고한다. FDA는 신약 후보 물질의 임상시험 중인 경과와 결과를 지속적으로 공표한다. 또한 신약 후보 물질의 임상시험 결과는 수시로 학술지에 등재된다. 이 정도의 자료만 갖고도 다국적 제약사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세계 제약 시장에서 자웅을 겨룰 수 있다는 것이다.

    "신출내기 연구원을 데리고는 거대 제약사의 연구 동향에서 성공의 열쇠를 건질 수는 없겠죠. 나도 타미플루를 개발하기 전 다국적 제약사 BMS에서 10년이나 연구한 경력이 있었습니다. 최소한 세포생물학·독성학·유기화학 등을 개별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연구원 10명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김 부사장은 한국 제약업계가 취해야 할 또 다른 전략으로 '버추얼 컴퍼니(virtual company)'를 제시했다.

    "버추얼 컴퍼니는 핵심 연구만 직접하고 동물실험·임상시험 등은 모두 아웃소싱(outsourcing)하는 형태입니다. 길리어드는 모든 동물실험·임상시험을 외부에 맡깁니다. 중국, 인도 기업에 맡기면 비용이 최대 60% 절약됩니다. 비용을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한국 제약사는 반드시 버추얼 컴퍼니로 가야 합니다."

    김 부사장은 마지막으로 제약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반드시 결단성과 능력을 고루 갖춘 최고경영자(CEO)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길리어드의 CEO인 존 마틴이 선택한 신약 개발의 70%가 성공했습니다. 통상 FDA 임상 3상의 성공률이 25%라는 점을 감안하면 마틴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지요."

    김 부사장은 CEO의 결단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2011년 길리어드의 미국 벤처기업 파마셋의 인수를 들었다. 파마셋은 C형 간염의 신약을 개발하고 있었다. 마틴 CEO는 파마셋을 인수하는 데 한 해 매출보다 많은 무려 110억달러(약 12조원)를 투자했다. 모두가 무리한 결정이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계약 당일 길리어드의 주가는 10% 폭락했다.

    “마틴은 길리어드의 기술과 파마셋의 기술을 합치면 100억달러 규모의 전 세계 C형 간염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출시 2년이면 투자액을 뽑을 수 있죠. 내년쯤이면 마틴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되겠죠.”

    김 부사장은 재일교포 2세 출신이다. 일본 도쿄대 약대를 졸업하고 미국 오리건 대학에서 유기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은 세계 2위의 제약 시장이다. 그런데도 “일본을 따라가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한 일본 제약사 CEO가 마틴과 합의하고 일어나면서 ‘본사에 가서 임원들과 협의하겠다’고 말해서 길리어드 임원진을 당황하게 했습니다. 일본 제약사는 좋게 말하면 집단지도체제이고 나쁘게 말하면 사내 정치로 휘둘리는 경우가 많죠.”

    그 일 이후로 마틴 CEO는 “앞으로 다시 일본 회사와 일하지 않겠다”고 단언까지 했다고 한다. “일본 제약사는 오너 일가 위주의 가족 경영을 하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집니다. 결단을 못 해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많았죠.” 일본 제약 산업이 다른 업종과 달리 국내 시장에만 머물고 복제 약 위주의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것도 그 때문이란 것.

    김 부사장은 작년 길리어드를 떠나 국내 제약 벤처기업 카이노스메드에 합류했다. 김 부사장은 카이노스메드의 신약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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