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財 북리뷰] 메이커스

조선비즈
  • 윤예나 기자
    입력 2013.05.26 16:07 | 수정 2013.06.28 14:26

    크리스 앤더슨 지음ㅣ윤태경 옮김ㅣRH코리아ㅣ355쪽ㅣ1만6000원

    이달 초, 20대 미국 청년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하나가 세계를 흔들었다. 권총을 만들어 쏴 보이는 실험 동영상이었다. 문제는 청년이 손에 쥔 권총의 출처가 ‘프린터’였기 때문. 모든 부품을 3차원 프린터로 ‘찍어낸’ 그는 권총을 조립해 격발하는 장면까지 담은 동영상을 공개했고, 뒤이어 설계도까지 인터넷에 올렸다.

    어떤 물건이든 이제 공장을 찾지 않고 스스로 ‘제작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의 개막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아이디어만 있다면 발명가는 거대 기업에 기대지 않아도 제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다. 잉크 대신 플라스틱을 분사해 물건을 찍어내는 3차원 프린터가 나왔고, 재료를 설계도대로 깎아주는 레이저 커터도 있다. 물체를 현실과 최대한 가까운 이미지로 컴퓨터에 옮겨주는 3차원 스캐너도 나와 있다.

    저자는 “오늘날 초기 산업혁명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롱테일 법칙’의 창시자로 유명한 저자는 특히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제조의 디지털화’에 주목한다. 그동안 거대 제조업은 전문 지식과 설비, 투자가 모두 필요한 대기업과 전문 인력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3차원 프린터 같은 여러 디지털 도구의 발달로 상황은 변했다. 디자이너가 책상에 앉아 직접 제품을 생산할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판매까지 할 수 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내공업’ 시대다.

    ‘메이커스(Makers)’라는 책 제목도 새로운 산업혁명을 주도할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메이커스’는 말 그대로 제조자,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다. 하지만 현대의 제조자는 이전까지의 여느 제조자와는 차원을 달리 한다. 기본 도구부터 다르다. 바로 인터넷이라는 아이디어 공유 수단이다. 개인은 아이디어 공유를 통해 더 많은 아이디어를 연결하고, 더 많은 가치를 창조한다. 아이디어를 현실로 끌어낼 제조 수단도 훨씬 다양해졌다.

    저자는 현 세대의 ‘제조자 운동(maker movement·다양한 분야의 제조업 활동)’이 지닌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데스크톱 디지털 도구를 사용해 새로운 제품과 디자인을 구상하고 시제품을 만든다. 둘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른 사람과 디자인을 공유하고 공동 작업하는 문화 규범을 갖는다. 셋째, 누구라도 제조업체에 몇 개든 생산할 수 있도록 디자인 파일을 공유한다. 아이디어가 제품화되는 경로가 대폭 단축된다.

    새로운 제조자 운동의 목적은 “거대자본이나 권력이 없는 일반인도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거대 공장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요약한다. 신세대 제조자는 대중 취향의 획일적인 기성품 대신, 대중과 다른 관심사를 가진 소비자를 위해 맞춤형 상품생산에 주력한다.

    세계 최초의 오픈소스 자동차 공장인 ‘로컬모터스(local motors)’가 21세기형 제조업체의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애리조나주 챈들러에 있는 이 공장은 연간 2000대 이내, 한 대에 평균 7만달러(약 7800만원)짜리 자동차만 생산한다. 그런데도 직원 수는 40명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이 회사는 자동차 소비자와 전문가가 모인 커뮤니티에서 자동차를 설계한다. 외부 전문가와 일반 대중이 머리를 맞대는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방식이다. 각종 부품은 세계 각지에서 조달하고, 조립에도 차를 사는 고객이 직접 참여한다.

    이 회사의 ‘커뮤니티’가 일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2008년 이 회사는 첫 차의 디자인을 결정하기 위한 콘테스트를 열었다. 우승자는 예술대학의 디자인 전공 학생이었다. 하지만 전체 디자인을 정한 뒤에도 각종 보조 디자인을 결정하기 위한 콘테스트가 계속됐다. 최종 디자인에 참여한 사람 수는 160명이 넘었다.

    2만 명에 이르는 커뮤니티 회원은 아마추어와 전문가가 섞여 있다. 자동차 전문 디자이너도 있고, 일부는 다른 회사 디자이너다. 그저 자동차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아마추어도 있다. 저자는 “이 구성원들 사이에서 재능의 ‘롱테일’이 나타난다”고 쓴다. 학위를 받은 전문가의 수와 학위는 없지만 도움이 될 만한 기술·아이디어를 가진 사람 수를 비교하면 후자가 훨씬 많다.

    정작 커뮤니티를 움직이는 것은 자신과 취향이 같은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이다. 자동차 디자인을 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에게도 기회를 제공해, 잠재 공급(해당 분야에서 쓰이지 못한 재능)과 잠재 수요(기존 생산 방식에선 경제성이 없어 생산되지 못한 상품)를 맞추는 식이다.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잠재력이 개방형 혁신 커뮤니티를 움직인다.

    저자 역시 오픈소스 기업 최고경영자(CEO)다. 현재 무선항공기 자동조종장치를 개발 중인 그는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적는다. “블로그나 토론 그룹이 아닌 소셜네트워크에 커뮤니티를 만들어라.” 뉴스피드와 사진·비디오 공유, 공개 제작 과정 자체가 최고의 마케팅 전략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이런 기업에서는 지적 재산권도 문제 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같은 디자인의 제품을 복제 판매하는 기업이 나와도, 복제에 참여한 사람도 결국 제품의 혁신에 기여하게 될 거란 믿음 때문이다. “중국 개발팀이 우리 회사 개발팀보다 나은 디자인을 내놓으면, 우리 회사는 다시 중국 개발팀의 디자인을 받아들일 것이다.” 저자는 “모든 사람이 상생한다”고 말한다.

    21세기 정보과학기술(IT)의 기세에 밀려 제조업에 대한 관심이 다소 떨어지는 듯싶은 요즘, 이 책은 강력한 반론이자 새로운 진단으로 읽힌다. 이미 이런 추세에 맞춰 행동에 나선 국가와 기업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작년 초 앞으로 4년 동안 미국 학교 1000곳에 3D 프린터와 레이저 커터 같은 디지털 제작도구를 갖춘 ‘메이커 스페이스(생산설비를 공유하는 곳)’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중국만 해도 상하이에 건설 중인 메이커스페이스가 100곳이다.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 포드도 작년 디트로이트에 메이커스페이스를 지어 직원들의 발명을 장려하고 있다. 이처럼 숨가쁘게 진행되는 세계 산업 지도의 변화를 따라잡고 싶다면 간과하지 말아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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