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가 연구비 27억원 주겠다며 데려간 34세 과학자

조선일보
  • 조호진 기자
    입력 2013.05.15 03:06

    ['투명 뇌' 기술 개발한 정광훈 박사, MIT 교수로]

    MIT 신임 조교수 채용사상 가장 많은 연구비를 제공
    "헤어젤 회사서 병역특례한 게 10년 지나 투명 뇌 기술로…
    뇌과학 연구 계속 벤처 창업, 한국 바이오산업 도울 것"

    "병역 특례 시절 헤어젤 제조 회사에서 일했는데 그때 배운 게 뇌를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미 스탠퍼드대 연구원인 정광훈(鄭光勳·34) 박사는 최근 칼 다이서로스(Deisseroth) 교수와 함께 생쥐의 뇌를 투명하게 만들고 그 안에 있는 신경세포의 3차원 연결망을 하나하나 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본지 2013년 4월 11일 A2면 참조

    뇌가 불투명한 것은 지방 때문이다. 지방은 단백질과 DNA가 제자리에 있도록 지지하는 역할도 한다. 정 박사는 지방을 빼고 묵과 같은 투명 하이드로겔(hydrogel)을 집어넣어 신경세포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뇌 안쪽이 훤히 보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정광훈 박사
    13일 KIST 강연에 앞서 정광훈 박사는“투명한 뇌 기술로 뇌의 각 영역을 연결하는 신경회로를 파악하는‘뇌 지도’작성이 좀 더 편해졌다”고 말했다. /KIST 제공
    13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연을 위해 방한한 정 박사는 "헤어젤 회사에서 하이드로겔이나 헤어젤은 모두 온도가 올라가면 액체에서 그물 형태의 고체로 변하는 특성을 배웠다"며 "병역 특례를 마치고 10년도 더 지났는데 그게 연구에 도움이 될지 몰랐다"고 말했다.

    '네이처'지에 발표한 정 박사의 투명 뇌는 미국의 뉴욕타임스(NYT), 영국의 BBC방송 등 전 세계 언론이 "난치성 뇌 질환 연구 흐름을 바꿀 획기적인 성과"라고 앞다퉈 보도했다. 전 세계가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알츠하이머·파킨슨병 같은 난치성 뇌 질환에 인류가 몸살을 앓고 있다. 알츠하이머 치료 시장만 2020년 16조원, 파킨슨병 치료 시장은 2018년 3조3000억원에 각각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뇌를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면 난치성 뇌 질환이 뇌의 어떤 부위에 발생하고 악화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정 박사는 하마터면 과학자가 아닌 의사가 될 뻔했다. 부산과학고 3학년이던 1997년 IMF 경제 위기가 터졌다. "먹고 살려면 의대를 가야 한다고 부모님이 강력하게 요구하셨어요. 고등학교 친구들도 진로를 의대로 바꾸기도 했죠. 하지만 과학고 나왔으면 과학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그는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번 투명한 뇌 기술로 세계적인 과학자 반열에 올라선 그를 교수로 채용하려고 프린스턴대, 조지아공대, MIT 등 미국의 유명 대학들이 경쟁을 벌였다. 그는 MIT를 선택했다. MIT는 그를 데려가려고 신임 조교수 채용 역사상 가장 많은 연구비인 250만달러(약 27억원) 이상을 조건 없이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MIT가 제 경험을 모두 살릴 수 있는 화학공학과와 뇌신경과학과 양쪽 소속의 교수직을 제안했습니다. 예전 MIT대학원에 진학하려 했지만 낙방한 것도 이번에 MIT를 선택하는 데 작용했습니다."

    그의 성과로 지도교수인 다이서로스 교수도 노벨상 수상자 후보로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미 레이저로 뇌 신경회로를 연구하는 광(光)유전학(optogenetics)을 창시한 다이서로스 교수는 정 박사 덕분에 투명한 뇌라는 또 다른 금자탑을 추가한 것이다. 그는 다이서로스 교수 연구실 출신으로서는 다섯 번째로 MIT 교수가 됐다.

    그는 "다이서로스 교수에게 과학에 대한 열정, 정신과 의사답게 40명에 달하는 연구원 하나하나의 심리를 읽으면서 운영하는 조직 관리를 배웠다"고 말했다. 다이서로스 교수의 연간 연구비는 100억원에 달하는데, 그중 절반은 개인이 기부한 것이라고 한다.

    정 박사는 "다이서로스 교수가 기부를 많이 받는 것은 연구 성과가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글 쓰는 능력이 뛰어난 점도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수시로 자신의 연구가 사회와 인류의 난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연구 제안서를 쓰고 글로 알립니다. 그 글을 읽으면 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을 정도이죠. 연구자에게 글쓰기도 매우 중요한 덕목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를 포함해 한국 과학자들이 가장 부족한 점이기도 하고요."

    정 교수는 MIT에서 뇌 과학 분야에서 계속 연구를 하면서 벤처도 창업하겠다고 밝혔다. "바이오 분야는 지금보다 학문은 물론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질 것입니다. MIT에서 벤처를 시작해 한국의 바이오산업을 돕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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