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건축가]⑪"동서양의 하이브리드", 유현준의 '머그학동'

조선비즈
  • 허성준 기자
    입력 2013.05.11 09:15

    9일 오전 8시 부산 김해국제공항. 차량을 타고 남쪽으로 40분쯤 가니 곧 900m가 넘는 높이의 주탑이 압도적인 거가대교가 나타났다. 섬과 섬을 이으며 유려하게 뻗은 길을 따라가길 10여분. 저 멀리 팔색조가 깃을 친다는 거제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구불구불한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1시간을 더 달렸다. 옥포항과 장승포항을 지나고 5월 녹음(綠陰)이 짙은 가라산(585m)을 넘자 눈앞으로 바다가 펼쳐졌다.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돌이 많다고 해 이름이 붙여진 학동리의 몽돌 해변은 해수에 젖어 햇살에 반짝였다.

    해변 뒤편의 마을 입구로 향했다. 그러나 마을 모양새는 해변이 안겨준 절경의 여운을 삼켜버렸다. 유명세 때문인지 학동리 일대는 우후죽순 들어선 원색적인 모텔과 간판으로 뒤덮인 식당 천지였다. 마을 주민들이 사는 집들보다 높이 올라선 건물은 바다로 향하는 시선을 가로막았다.
    거제도 학동리의 카페겸 게스트하우스 '머그학동' 전경./박영채 사진작가
    공해(公害)나 다름없는 건물이 줄을 이었지만, 백색 저층 건물 한 채만은 눈길을 끌었다. 몽돌 해변을 연상시키는 자갈 깔린 대지에 차분하게 앉은 이 건물은 수많은 흰색 박스가 중첩된 모습으로 세련미가 물씬 풍겼다. 카페 겸 게스트하우스인 ‘머그 학동’이다.

    “학동은 나의 고향이다. 예전엔 조용한 어촌 마을이었다. 모 방송프로그램에 소개된 이후, 매년 여름 피서객이 몰리는 관광지가 됐다. 사람이 갑자기 몰린 만큼 개발도 급히 이뤄졌다. 돈벌이가 되니 숙박시설과 유흥주점이 마구잡이로 생겼다. 현재 학동 전경이 그 결과다. 옛 풍경으로 돌리긴 어려워도 학동을 나름의 정체성을 가진 마을로 살리고 싶었다. 첫 번째 시도가 머그 학동이다.” (진현미 머그학동 건축주, 현 아트미아 대표)
    담장이나 벽 곳곳의 공간적 변형을 가능케 했다./박영채 사진작가
    진 대표는 이 같은 목표를 실현키 위해 건축가 유현준(45)을 찾았다. 유 소장은 현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학과장이자 (주)유현준 건축사사무소 소장.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설계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석사를 마쳤다. 2009년 건축계의 신인상 격인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했으며, 이듬해 건축문화공간대상 대통령상을 받은 실력파다.

    “처음엔 대지 앞쪽에 바다가 보이고 뒤쪽에 산이 있는 땅이라고 들었다. 바다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면서도 산세에 어울리는 곡선형 건물을 설계하려고 했다. 그러나 현장에 가보니 정제되지 않은 색깔과 재료들로 만들어진 주변 건물이 풍광을 다 망친 상황이었다. 기본적인 설계방향을 내부지향적으로 수정해야 했다. 머그 학동이 깔끔한 백색에 담장으로 둘러싸인 건물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현준 소장)
    게스트하우스동 전경. 담장의 일부의 변형을 통해 공간 구획도 달라질 수 있도록 했다./박영채 사진작가
    머그 학동은 외관상으론 높고 견고한 콘크리트 담장 때문에 남성적 풍모가 강하고 폐쇄적 느낌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오가는 대로변 동남쪽 담장은 모서리 부분과 담장 일부를 통째로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열어 두면 외부에서 내부 공간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높이 4m가 넘는 담장을 직접 손으로 열고 닫을 수 있는 경험은 그 자체로 신선하다. 물리적 구조의 변화가 가능하고, 그에 따른 기능도 달라진다는 점에서 ‘트랜스포머’를 연상케 한다.

    머그 학동의 열림과 닫힘은 카페공간과 게스트하우스공간에도 적용됐다. 먼저 카페동 천장에는 공간을 다변화할 수 있도록 십자형 무빙월(moving wall·이동벽)이 설치됐다. 기본 용도는 카페지만 기업 연수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건축주의 요구를 공간적으로 풀어낸 것. 무빙월을 잘만 활용하면 널찍한 카페는 필요에 따라 총 4개 형태로 재구성할 수 있다. 카페동의 공간 활용은 머그 학동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머그 학동의 전체 형태도 상징적으로 십자형으로 쪼개져 있다.
    카페동 내부 전경. 십자형태로 무빙월을 설치해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공간 구획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박영채 사진작가
    이 방식은 2층 규모, 총 8개의 객실로 이뤄진 게스트하우스동에도 적용됐다. 2층은 4개 객실이 독립적으로 운영되지만, 1층은 무빙월을 통해 2개 객실이 1개 객실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머그 학동의 공간 구성 및 배치를 보면 동·서양의 전통적 건축양식이 조화롭게 드러난다. 서양에서는 종교 건축물과 같이 중요한 건물을 만들 때 기하학적 공간 구성을 중요시했고, 동양에서는 중요한 공간을 안쪽에 배치하고 몇 겹으로 둘러싸며 공간의 층을 만들었다.
    1층 게스트하우스 방 내부에서 바라본 전경. 방 앞의 담장을 미는 방식으로 열고 닫을 수 있다. 이로써 카페동과 게스트하우스의 방의 관계가 시각적으로 이어진다./박영채 사진작가
    “머그 학동의 핵심은 카페 공간이기 때문에 건축주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기하학적 분석을 통해 공간 평·단면을 설계했다. 그런데 머그 학동의 카페공간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담장과 건물 외벽으로 둘러싸인 궁(宮) 같다. ‘하이브리드(hybrid)’다. 회전하거나 접히는 방식으로 공간의 개폐도 자유롭다. 외부(外部)를 내부(內部)로 끌어오고, 내부가 외부로 느껴질 수 있는 여지를 줬다. 공간에 자율성을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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