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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 건축가]⑩ 제주 담은 조재원의 '플로팅 L'

  • 허성준 기자

  • 입력 : 2013.04.27 09:30

    20년간 제주 풍광을 사진으로 담았던 고(故) 김영갑 사진작가는 말했다.

    “제주도 사람 누구나 알고 있는 제주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꼭꼭 숨어 있는 속살을 엿보려면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고 이해해야 한다. 바람을 이해하지 않고는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만 보고 느낄 뿐이다.” (출처: 김영갑갤러리두모악)
    플로팅 L에서 바라본 삼나무 방풍림과 귤농장 일부./허성준 기자
    플로팅 L에서 바라본 삼나무 방풍림과 귤농장 일부./허성준 기자
    25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 중문상로 기슭. 여느 날과 같이 바람이 심했던 이날, 거무튀튀 숨구멍이 이러 저리 터져 나온 현무암질 제주 돌담길을 따라 올랐다. 20~30m는 족히 되는 쭉쭉 뻗은 삼나무 방풍림이 제주 바람에 파도 치듯 출렁이고 있었다. 눈앞의 삼나무서 북쪽의 한라산으로 시선을 옮길새 어른 키보다 작은 귤나무 수천 그루가 언덕 아래로 펼쳐졌다.

    바람 소리 외엔 적요(寂寥)한 이곳은 조재원(43) 01(공일) 스튜디오 대표가 지은 단독주택 ‘플로팅 L’이 있는 곳이다. 주먹만 한 현무암이 주택 후면에 붙어 있어 제주 돌집으로도 불린다.

    플로팅 L 후면부./진효숙 사진작가
    플로팅 L 후면부./진효숙 사진작가
    이 집은 조 소장이 독립 후 지은 첫 작품이자 친척인 고모 부부의 세컨드 하우스다. 미국에 거주하는 고모부부는 은퇴 후 제주에서 살기로 하고 조 소장에게 일을 맡겼다. 고모부부가 제주를 찾기 어려웠던 탓에 조 소장은 직접 땅을 찾는 일부터 설계·시공을 도맡았다. 최근까지는 아예 한 달에 한두 번씩 내려와 직접 살면서 집을 관리하고 있다.

    플로팅 L은 대문을 열자마자 탄성이 나오는 집이다. 대문이 거실과 침실 사이 복도에 있는데 복도 벽면이 전면 창이다. 즉 출입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도 곧바로 주택 앞에 펼쳐진 귤 농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집을 필로티(건물 상층을 지탱하는 독립기둥) 방식으로 띄운 것이나, 출입문과 복도 벽체의 전면 창을 나란히 둔 것은 바람이나 사람의 시선을 막고 싶지 않았기 때문. 필로티로 건물을 띄운 것은 기능적으로도 습기를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플로팅 L 거실 전경./진효숙 사진작가
    플로팅 L 거실 전경./진효숙 사진작가
    신발을 벗고 오른쪽으로 가면 주방과 식탁, 거실이 일자로 이어진 공간이 나온다.

    거실은 귤 농장 쪽으로 전면 창이 설치돼 한눈에 한라산까지 볼 수 있도록 했다. 거실의 하이라이트는 삼나무로 뚝딱 만든 툇마루. 타일이 깔린 거실에 약 35cm의 높이를 둔 툇마루를 둬 벽을 세우지 않고도 공간을 따로 구획하는 느낌을 살렸다.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아기자기한 요소를 담고 싶었다. 바닥재가 타일이기 때문에 소파가 아니면 앉을 곳이 마땅치 않은데, 툇마루를 설치해 앉고 눕기에 무리가 없도록 했다. 특히 이 툇마루는 전면 창 외부까지 이어져 테라스에서도 밖을 내다보며 앉아 있을 수 있다.”

    집안 곳곳에 숨겨진 세세한 손길도 눈길을 끈다. 대형 전면 창이 많지만, 침실에는 가로는 길고 세로는 짧은 창을 하나만 뒀다. 동틀 무렵 눈이 부시지 않으면서도 은은하게 햇살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 주방은 일반 주택과 다를 바 없지만, 싱크대를 벽면에 두지 않고 식탁 겸 조리대에 둠으로써 거실에 있는 사람들과 주방에서 요리를 준비하는 사람이 마주 볼 수 있도록 했다.
    플로팅 L 후면부에 붙인 현무암./허성준 기자
    플로팅 L 후면부에 붙인 현무암./허성준 기자
    실내의 목조 가구는 모두 제주산 삼나무로 짰다. 조 소장은 붙박이장, 침대, 아일랜드 조리대, 의자, 툇마루까지 현지의 솜씨 좋은 목수에게 부탁했다. 이 때문에 집엔 은은한 삼나무 향이 배어 있다.

    이날 플로팅 L에서 저녁을 맞이했다. 동향(東向)인 탓에 늦은 오후가 되자 주변 풍광은 좀 더 차분해졌다. 바람에 흔들리는 삼나무와 구름에 가린 한라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귤나무들이 늘 그대로인 듯 자리를 지킨 채 어둠을 맞이했다.
    그래픽=최지웅 연결지성센터 연구원
    그래픽=최지웅 연결지성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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