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한강' '타짜'의 만화가 허영만(66) 화백이 지난 9일부터 카카오 모바일 콘텐츠 판매장터 '카카오 페이지'에 '식객2'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 신작을 보려면 월 2000원을 내야 한다. 허 화백은 "한국 만화의 미래를 위해 최고참인 내가 총대를 메고 콘텐츠 유료화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도전은 불행히도 자발적인 선택은 아니다.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최고의 만화가이자 한국 창작 콘텐츠 산업을 대표하는 그였다. 그러나 그는 인터넷 포털과 인쇄매체에서 사실상 퇴출당한 상태다. 아니 스스로 걸어나왔다고도 할 수 있다. 콘텐츠를 공짜 내지는 싸구려 취급하는 포털의 생태계에서 더 이상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포츠신문 같은 출판업체나 '다음' 같은 포털과 만화 연재를 위해 오래 협상했지만 실패했어요. 한 달 연재료로 포털과 출판업체에 3500만원을 요구했으나 모두 거절당했죠. 겨우 사무실 유지하는 비용일 뿐인데…."
각오는 비장하다. "모바일에서 실패하면 모든 연재를 중단하고 작업실 문을 닫을 겁니다."
그는 1966년 '집을 찾아서'란 작품을 시작으로 '타짜' 등 100여 편의 연재 만화를 그렸다. 그의 손끝에서 태어난 그림은 한국 콘텐츠 산업의 젖줄이었다. 타짜·식객·각시탈·미스터 손(날아라 슈퍼보드)·비트·아스팔트 사나이 등 20개가 넘는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의 원작이 그의 만화다. 그가 만든 콘텐츠에서 나온 매출 합계는 수천억원에 달한다.
허 화백은 "사람들은 개인 허영만이 만화를 그리고 3500만원을 받아간다고 생각하지만 내 만화는 공동작업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팀은 7명입니다. '식객'은 사진이 들어간 만화죠. 사진 찍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예전엔 만화가 흑백이었지만 이제 컬러예요. 채색 작업에도 손이 갑니다. 내가 한 푼도 안 가져간다는 전제하에서 작업실 운영에 월 3500만원이 필요합니다."
과거 그를 모셔갔던(?) 스포츠지와 잡지는 경영난에 시달린다. 인터넷 포털과의 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허 화백은 "종이 만화가 인터넷 만화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큰 실수를 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돈 몇푼 받고 만화를 무제한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람들이 인터넷에선 만화가 공짜라고 생각합니다. 만화 유통이 종이에서 인터넷으로 넘어갔는데, 이제 포털은 콘텐츠 공급 대가로 수천만원을 제공하지 못하겠다고 나옵니다."
그가 포털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재했던 만화는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2011~2012년 다음)였다. 허 화백은 "다음으로부터 다른 만화가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았지만 그래도 월 1000만~2000만원 적자가 났다"고 말했다.
"카카오 페이지에서 4만명이 보면 카카오에 줄 수수료(매출의 50%)를 주고, 부가세 내고 작업장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선 독자들이 돈을 내지 않지만 모바일에선 다를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금 '식객'이 카카오 페이지 매출 6위입니다."
원래 말랐던 그의 몸무게가 최근 4㎏이나 줄었다. "살이 빠지는 게 아니라 뼈에서 국물이 빠지는 느낌입니다. 만화가 존폐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내가 직원들 급료를 제대로 못 준다면 다른 후배들은 말할 필요도 없어요. 내가 성공하면 후배들도 모바일에 도전하겠죠. 만화로 떼돈을 벌지는 못해도 먹고살면서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내 의무죠."
그는 '식객'보다 '식객2'가 더 인기가 있을 것으로 본다. "'식객'은 흑백이지만 '식객2'는 컬러입니다. 흑백으로 음식의 맛을 표현하기는 너무 어려웠어요. 우리가 그린 만화를 보고 우리가 입맛을 다십니다. 쏟아 부은 노력과 정성이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