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중앙연구소에는 식품공학과 출신만큼 미생물학과·신소재공학과 출신 연구원들이 많다. 최근 투자를 확대하는 분야가 쉽게 잠들 수 있게 하는 음료 등 기능성 건강기능식품이기 때문이다. 제약사인 한독약품은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네이처셋'을 출시하고, 일반의약품사업부를 아예 소비자건강영양사업부로 재편했다.

식품 회사와 제약 회사 간 경계선이 사라지고 있다. 식품 회사가 비타민 시장에 진출하고, 제약 회사는 식·음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식·음료 부문 매출이 의약품을 넘어선 제약 회사도 나왔다. 식품과 제약의 융·복합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 건강식품 분야에서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모식품회사의 고위 관계자는 "현재 우리 경쟁자는 식품업계에는 없다"며 "그러나 제약 회사가 언젠가 우리의 자리를 위협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식품·제약사, 건강기능식품 잇따라 선보여

지난해 시작된 약가(藥價) 인하로 제약 회사의 수익 구조는 크게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1000억원 이상 제약 회사는 36개사. 이 중 13개사가 전년 대비 매출이 감소했으며, 영업이익은 22개사가 줄었다. 식품 회사도 위기는 마찬가지다. 롯제제과는 지난해 0.2% 매출 증가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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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최근 8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27.4%다.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병에 걸리기 전에 스스로 건강을 챙기자는 생각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제약사 중에는 한독약품에 이어 LG생명과학이 지난해 9월 '리튠'이라는 건강기능식품 브랜드를 선보였고, 유한양행·삼진제약·JW중외제약·일양약품·국제약품 등이 최근 이 시장에 진출했다. 식품업계에서는 CJ제일제당롯데제과·오뚜기·대상·동원F&B·한국야쿠르트 등이 건강기능식품 사업을 주력 사업으로 확대하고 있다.

한국인삼공사는 홍삼 브랜드 '정관장'으로 건강기능식품에서 확고한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지난해 매출이 15% 감소했다. 홍삼 시장에 식품업체와 제약업체들이 많이 뛰어들어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

제약사에서 식품 회사로 탈바꿈도

한국야쿠르트는 최근 탈모를 방지하는 건강기능식품을 개발하고 있다. 대상의 건강기능식품 전문 계열사 대상웰라이프는 음식을 직접 먹지 못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특수의료용식품을 생산하고 있다.

광동제약은 아예 식품 회사로 탈바꿈했다. 지난해 '비타500'으로 92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옥수수수염차 등까지 합하면 매출 60%가 음료에서 나온다. 지난해에는 2000억원대 매출을 올렸던 생수 최고의 브랜드 '제주 삼다수'까지 농심에서 인수했다.

현재 건강기능식품 1위는 한국인삼공사이고 2위는 화장품·식품업체인 마임이다. 3위 서흥캅셀은 약품 캡슐 전문회사이며, 4위 일진제약은 최근 주력 제품을 의약품에서 건강기능식품으로 바꿨다. 5위인 태평양제약은 지난해 매출의 27%를 건강기능식품에서 올렸다.

음료시장에서도 식품·제약사의 경쟁이 치열하다. 대표 분야가 숙취해소음료다. 국내 시장은 2300억원대로 CJ제일제당(컨디션)과 그래미(여명808), 동아제약(모닝케어)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유한양행·보령제약도 최근 이 시장에 진출했다.

동아제약 박카스가 주를 이뤘던 자양강장제 시장에서는 롯데칠성음료의 '핫식스'와 롯데제과의 '왕올빼미'가 도전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박카스와 같은 타우린 성분을 함유한 '프리미엄레시피'를 출시했다.

식품 회사와 제약 회사의 융·복합은 품질 경쟁을 유도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경쟁이 국내에만 국한되는 것은 문제다. 회사들이 잇따라 해외 유명 건강기능식품, 음료 브랜드를 도입하고 있어 외화 유출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