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건축가]⑦ 이소진, 당신을 위한 공공건축

입력 2013.03.30 10:50 | 수정 2013.03.30 11:05

물탱크 있던 폐허… 윤동주를 만나다

윤동주문학관 전경./허성준 기자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中

28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청운동 소재 창의문 인근. 북악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 걷다 보니 서울 성곽을 따라 조성된 청운공원과 시인 윤동주가 시심(詩心)을 가다듬으며 자주 오르내렸다고 해 이름 붙여진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나타났다. 평일 오후임에도 이곳은 삼삼오오 짝을 이룬 등산객부터 팔짱을 낀 연인까지 많은 이들이 오가고 있었다.

언덕 입구에는 작은 박스형태의 하얀색 1층 건물이 있었다. 건물 벽면에는 ‘내를 건너서 숲으로∨고개를 넘어서 마을로∨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나의 길 새로운 길’이란 시구로 시작하는 시인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이 적혀 있었다. 이곳은 본래 1974년부터 2009년까지 청운동 일대에 수돗물을 공급한 수도가압장 건물이다. 수명이 끝난 뒤 방치되다가 지난해 7월 ‘윤동주 문학관’으로 탈바꿈됐다.

이소진 소장/아틀리에 리옹 제공

이 건물은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에서 13년간 건축가로 활동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소진(46) 아틀리에 리옹 서울(Ateliers Lion Seoul) 소장의 최근작이다. 이 소장은 이 프로젝트로 지난해 건축계의 신인상으로 통하는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했다.

“윤동주 문학관에 개관 직후부터 6개월간 3만명이 다녀갔다. 새로 터를 닦아 세운 것이 아니라 수명이 끝나 버려진 공간을 많은 사람이 찾고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 쌍둥이 물탱크가 만들어낸 시인 윤동주의 빛과 어둠

28일 방문한 윤동주 문학관은 총 3개 전시실로 이뤄져 있었다. 출입구에서 바로 이어지는 제1전시관 ‘시인채’로 가니 시인 윤동주가 평소 소중히 여기던 소설·시집의 영인본이 전시돼 있었고, 소학교 시절부터 작고 때까지의 일생을 주요 시기별로 구분해놓은 전시관을 볼 수 있었다. 본래 이 공간은 2008년 윤동주 문학관이 임시개관했을 당시 구성된 곳이다.

충격은 물탱크였던 제2·3전시관에서 시작됐다. 콘크리트로 사방이 막힌 직육면체 모양의 물탱크에 들어서는 기분이란, 일제 시대 감옥이 눈 앞에서 포개지는 듯 했다.

2개의 쌍둥이 물탱크의 바닥면적은 각각 55㎡, 높이는 5m에 이른다. 수십년간 수돗물이 저장되던 곳이란 것을 말해주듯 벽면은 불그스름한 녹물 자국이 지층처럼 남아있었다. 물탱크 상부에서 바닥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설치됐다가 문학관 공사 때 제거된 철제 사다리가 있던 벽면은 상흔(傷痕)마냥 붉은 자국이 남으면서 음습한 분위기를 더했다.

제2전시관 벽면. 물탱크로 쓰였던 탓에 벽면이 불그스름하다. 이 소장은 이를 그대로 뒀다./허성준 기자

제2전시관은 제1전시관에서 제3전시관으로 이어지는 통로이자 중정 역할을 한다. 사방이 막혀 있던 물탱크의 상부 한 면을 뜯어내 하늘과 윤동주 시인의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에 자리한 팥배나무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은유하듯 제2전시관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품고 있다.

제3전시관 전경. 제2전시관과 달리 콘크리트 천장을 걷어내지 않고 물탱크의 원형을 보존했다./허성준 기자

제3전시관은 제2전시관과 달리 출입문을 제외하곤 기존 물탱크의 원형대로 사방이 막혀 있다. 기존 철제 사다리가 달렸던 상부에만 사람 한명이 내려올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다. 따로 내부 조명이 없기 때문에 그 구멍에서 빛이 쏟아진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시인 윤동주의 고통을 상징하는 듯하다. 이곳에서는 시인 윤동주의 삶을 그린 영상이 재생된다.

지난해 ‘젊은건축가상’ 심사위원은 윤동주 문학관에 대해 “도시의 집합적 기억과 시인의 기념공간을 섬세한 건축적 언어로 결합시켰다”며 “도시에 산재한 소규모 공공건축물의 재생 가능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선례”고 평가했다.

◆ ‘나와 당신을 위해’…. 공공 건축에 목맨 이소진 소장

“우리의 작업이 조금이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할 수 있다면 계속해서 아낌없는 열정으로 작품에 임할 것이다.”

2007년 귀국해 건축설계사무소를 연 이 소장의 최근까지 작업은 대부분 공공 건축이다. 대부분의 아틀리에(소규모 건축설계사무소)가 공공 건축에는 쉽사리 손대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아틀리에가 공공 건축을 기피하는 이유는 보수에 비해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공력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공공건축은 대부분 수의계약이 아닌 경쟁방식의 현상설계공모로 이뤄지기 때문에 당선되기까지 기간·절차가 길고 까다롭다. 또 그간 국내 현상공모는 ‘절차가 공정치 않다’·‘심사위원의 결정이 의아하다’·‘설계비가 터무니 없다’는 이야기가 터져나올 정도로 건축가들에게 비판을 많이 받아왔다. 업계에서는 10명 이하로 꾸려지는 아틀리에가 현상공모에 매달리는 것은 ‘사무소 말아먹기 딱 좋은 짓’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이 소장은 사무실을 유지하는 것은 녹록지 않지만, 개인이 아닌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 건축물을 설계하는 것이 보람있다고 말했다.

“지방은 현상공모에 이미 지역 건축가가 내정된 ‘무늬만 현상공모’가 많았고, 현상공모에 참여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CG(Computer Graphics)’ 등의 준비 비용이 만만치 않아 사실상 아틀리에가 현상공모에 도전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많았다. 또 심사위원의 자질 문제도 늘 거론됐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민의 문화의식이 높아지면서 관(官)도 정신을 차린 것 같다. 심사위원도 건축가들이 납득할 수 있는 분들로 위촉되고 있고, 절차도 공정한 편이다. 이런 환경이라면 실력 있는 아틀리에는 공공건축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봤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좀 더 개성 있고 다양한 건축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종로구청이 발주한 윤동주 문학관 외에도 서울시가 발주한 ‘한강변 나들목 개선사업’에 참여해 금호·암사·서초 나들목을 리모델링했다. 이밖에 부산 영도구 소재 신선 초등학교,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청학교에 북카페 등의 시설 설계도 진행했으며,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일부 골목을 디자인했다. 규모는 작지만, 모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이다.

“오세훈 전 시장의 여러 공공 프로젝트들이 최근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쓸모가 변변치 않고, 너무 커서 흉물이라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일부 공감한다. 그러나 오 시장이 디자인을 말하기 전에 디자인을 말한 시장은 없었다. 일종의 과도기였다고 생각한다. 이제 대형 프로젝트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규모가 큰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형 프로젝트는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한정돼 있다. 결과가 뻔하다는 이야기다. 규모가 작으면 다양하고 많은 건축가가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작게, 단계적으로 프로젝트를 나눠주면 일이 세분화되면서 좀더 다양하고 풍부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은 아직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나는 작은 작업을 통해 조금씩 나와 모두가 영위하는 공간을 풍요롭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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