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우 교수의 경영수필] 정주영 회장에게 사막은 '地上 최고의 공사장'이었다

조선일보
  • 이명우 한양대 특임교수·경영학박사
    입력 2013.03.28 03:07 | 수정 2013.03.28 17:42

    모두가 덥고 물 없다며 꺼릴 때 "비 안 오니 1년 내내 공사 가능"
    몸소 보여준 발상의 전환이 '인사이트 경영'의 교과서였다

    이명우 한양대 특임교수·경영학박사

    "어떻게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하셨어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성공한 경영자가 수없이 접하는 질문이다. 발상의 전환을 가져온 생각의 원천, 즉 인사이트(insight)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묻는 것이다.

    인사이트의 사전적 의미는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명료하고 즉각적인 이해'로 우리말로는 '직관'이나 '통찰력'으로 번역된다. 다양한 관점으로 사물의 핵심을 꿰뚫어볼 수 있는 인사이트는 성공에 필요한 중요한 능력이다. 하지만 어떤 경영자도 인사이트를 기르기 위해 따로 정규교육이나 훈련 과정을 이수한 적은 없다.

    인사이트를 키우는 좋은 방법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성공한 경영자의 스토리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다. 필자도 사회 초년생 시절,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낸 살아 있는 롤(role) 모델이 참 많았고 그들로부터의 배움이 나름대로 인사이트를 키우는 데 좋은 초석이 되었던 것 같다. 그 롤 모델 중 한 분이 현대그룹의 고(故) 정주영 회장이다. 정 회장은 선진국보다 열악한 여건에 처해 있던 우리에게 발상의 전환을 통하여 늘 '다르게 보고 생각하고 실행해야 함'을 몸소 실천해 가르쳐 주신 분이다.

    1980년대 초, 필자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할 때이다. 당시 그 나라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 건설 회사의 공사 현장이 있었고 10만명이 넘는 건설 인력이 조국 근대화의 꿈을 실천하고 있었다. 당시 해외 현장 근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면 컬러 TV를 한 대씩 사오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러던 중 국산 컬러 TV가 개발되자 정부가 귀국 근로자가 반입하는 국산 제품에 면세 조치를 해 주었다. 덕분에 우리 전자 업체의 중동 진출이 탄력을 받게 됐고 이런 연유로 삼성전자도 비교적 일찍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Jeddah)에 지점을 낼 수 있었다. 당시 필자는 담당 판촉 요원들과 함께 제품을 소개하려고 중요한 건설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모래바람을 헤치고 돌아다니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극한의 작업환경에서 고생하는 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자극이 되었다. 그러던 중 현대건설의 한 현장 소장으로부터 우리 건설 업체의 중동 진출과 관련된 정주영 회장의 일화를 듣게 되었다.

    일러스트=이동운 기자

    1975년 여름, 박정희 대통령이 정 회장을 청와대로 급히 불렀다고 한다.

    "달러를 벌어들일 좋은 기회가 왔는데, 일을 못 하겠다는 자들이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정 회장의 물음에 대통령의 설명이 이어졌다.

    "석유파동으로 유가가 올라 지금 중동 국가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주체하지 못한답니다. 그 돈으로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고 싶어 우리나라에 건설 사업 참여 의사를 타진해왔습니다. 그런데 현장 조사차 보낸 공무원들이 돌아와서 한다는 이야기가 너무 더워서 낮에는 일할 수 없을뿐더러, 공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도 없어 건설을 할 수가 없는 나라라고 합니다. 안 된다는 이야기만 늘어놓아요. 정 회장이 상황을 한번 봐주시오. 만약 정 회장도 안 된다고 하면, 나도 포기하지요."

    급히 사우디로 갔던 정 회장은 5일 만에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이렇게 보고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하늘이 우리나라를 돕는 것 같습니다.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 공사를 하기에 제일 좋은 지역입니다. 1년 열두 달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공사할 수 있습니다. 건설에 필요한 모래, 자갈이 현장에 바로 있으니 자재 조달도 쉽고요."

    "물은요?"

    "그거야 어디서 실어오면 되고요."

    "50도나 되는 더위는요?"

    "정 더울 때는 천막을 쳐서 낮에는 자고 밤에 일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뜨거운 햇살이 공무원들에겐 건설 불가능의 조건이었지만, 정 회장에겐 건설 최적의 조건으로 판단되었다. 그에겐 숨겨진 기회를 보는 눈이 있었던 것이다. 같은 상황을 두고 남들이 보지 못한 기회를 발견하는 능력, 같은 문제를 두고 남들이 찾지 못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 이것이 인사이트이다.

    그의 탁월한 인사이트에 매료된 필자는 한동안 정 회장의 이야기에 심취했다. 1952년 겨울 미군이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인의 부산 UN묘지 방문을 준비하면서 푸른 잔디 묘역을 주문하자, 겨울에도 새파란 청보리를 이식하여 해결한 기지(機智)에 탄복했다. "조선 기술이 전혀 없는 나라에 차관을 제공할 수 없다"는 영국 은행 담당자에게 500원짜리 지폐의 거북선을 보여주며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앞선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소"라고 설득해 돈을 빌린 맨주먹 마케팅에 환호했다. 그의 수많은 일화엔 모두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실행하는 힘, 즉 인사이트 경영이 자리하고 있다. 가진 것도 없고 역량도 부족했던 시절에 청년 정주영이 몸소 보여준 발상의 전환은 인사이트 경영의 교과서였고, 후일 필자가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늘 남과 다르게 일에 접근하고, 기존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앞서 연재했던 기고에서 언급했던 '계란 냉장고에의 집념'이나 '상자 밖 협상'도 그런 결과 중의 일부가 아닌가 한다.

    많은 기업과 비즈니스맨들이 남보다 뛰어나길 바라고, 남보다 앞서가길 바란다. 이럴 때 인사이트는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이정표이자 그곳에서 무엇을 할지를 알려주는 실행 지침이 될 수 있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선 어디로 가야 할지, 즉 어디에 좋은 기회가 있는지, 나아가 그 기회를 어떻게 내게 유리하게 활용할지를 알아야 한다. 당장 내일을 가늠할 수 없는 변화의 시대, 과거 비즈니스 성공 사례와 그 사례를 겪은 선배들의 경험들에서 인사이트 경영의 단서를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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