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시되는 스마트폰은 사양이 얼마나 높은지 자랑하지 않는다. 최신 스마트폰이라면 어느 것을 골라도 풀HD급 화면에 1300만화소 카메라, 최소 쿼드코어 수준의 CPU(중앙처리장치)를 갖췄기 때문이다. 기술은 상당 부분 평준화됐다. 대신 애플과 삼성·LG 등 제조사들은 얼마나 편리한 기능을 탑재했는지를 강조한다.
삼성전자가 최근 공개한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S4'도 사용자의 시선을 인식해 동영상을 멈추고 재생하는 기능을 전면에 내세웠다. 올 초 선보인 스마트TV는 "뭐 볼 만한 거 없어"라고 물으면 사용자의 평소 시청 습관 등을 파악해 채널을 추천해주는 기능을 갖췄다. 이제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닌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기술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UX(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I(사용자 환경·User Interface)란 개념도 여기서 나왔다. 인간이 IT 기기를 쓰면서 어떤 경험을 얻는지 파악하고, 편리하고 직관적으로 기기를 쓸 수 있도록 제품이나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것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가전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모바일전시회 MWC(Mobile World Congress) 등에서 확연히 느껴지는 UX·UI의 진화(進化) 방향이 있다. 인간과 기술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점점 인간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닮아간다는 점이다.
왜 전 세계 기업들이 이를 최적의 사용자 경험으로 여기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부단한 진화를 통해 다른 인간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법을 태생적으로 갖고 태어난다. 언어·표정·제스처·눈짓 등 오감(五感)을 통한 의사 소통 방법은 물론 상대방의 마음과 감정을 추측하고 상황의 맥락을 파악하는 육감도 있다. 이것은 의식적으로 공부하거나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태어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습득된다.
마찬가지로 IT 기기 제조사들이 인간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적극 활용한다면 사용자들이 별다른 학습 없이 직관적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과의 상호작용에서 얻었던 정서적 소통과 이해를 기술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게 한다. 사용자에게 감성적 만족까지 안겨주는 것이다.
인간과 기술의 만남이 마치 인간 대(對) 인간의 만남처럼 바뀌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인간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해석하는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언어다. 하지만 이외에도 표정, 몸짓, 목소리의 작은 떨림,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 등 다양한 정보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된다.
스마트폰에 음성 명령을 내리면 사용자의 목소리 떨림이나 성조(聲調)의 변화를 분석해 성격이나 감정을 읽어내는 기술이 필요하단 얘기다.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계산해 표정에 드러난 감정을 읽어내는 기술, 눈동자의 움직임을 추적해 사용자의 관심과 집중도의 변화를 계산하는 기술도 필요할 것이다. 홍채의 변화를 통해 놀라움의 정도나 감정의 세기를 측정하고, 심장 박동이나 혈압·땀의 변화를 측정해 각성 상태와 피로도를 판단하는 등 감성(感性) 기술이 발달해야 한다.
지난해 IBM은 향후 5년 이내에 인간과 같은 오감을 가진 컴퓨터가 출현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올 초 CES 기조연설에서 폴 제이콥스 퀄컴 회장은 수년 내에 스마트 기기들이 사용자의 마음을 미리 알아내는 일종의 디지털 육감을 제공할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둘째, 기기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의지와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 스마트폰이 사용자의 말은 잘 알아듣지만 정작 표현은 잘 못 한다면 그만큼 답답한 일도 없을 것이다. 스마트폰이 멀뚱멀뚱 있으면 같은 명령을 반복하거나 내 의사를 제대로 파악했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소통의 불안(不安)이 생길 수 있다.
이를 위해 IT 기업들은 다양한 감성 피드백(feedback)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초기엔 단순한 그래픽이나 음향을 통해 의사를 전달했지만 좀 더 인간적인 방법으로 답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최근 촉각·후각·미각과 관련된 특허 비중이 급증하고 있다. 작년 미국 내 전체 오감 인식 관련 특허의 12% 이상을 차지했다.
수년 내에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질감을 실제로 느끼고, 인간보다 더 명확하게 얼굴로 감정 표현을 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센서 기술의 개발과 함께 기술이 마치 인간처럼 답을 하게 만드는 혁신적인 디자인도 필요하다.
현재까지는 애플이 이 부분에 제대로 대응하는 유일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예를 들면 애플의 로그인 화면에서 사용자가 잘못된 패스워드를 입력하면 아이콘이 좌우로 흔들린다. 마치 사람이 '아니다'라고 고개를 흔드는 것처럼 말이다. 단순히 잘못된 암호를 쳐넣었다는 기계적인 피드백보다 더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피드백이다.
셋째는 좀 더 복잡한 문제다. 서로의 언어적·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모두 이해하는 것을 넘어 전 세계의 다양한 사회적 규범까지 기기가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사회 속에서 상호작용을 하며 규범을 학습한다. 이 규범들은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양하다. 우리가 단지 영어를 유창하게 쓸 수 있다고 해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완벽한 소통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연구 분야를 '소셜 인터페이스(Social Interface)'라고 부른다. 필자(이관민 교수)를 비롯해 미국 스탠퍼드대의 클리포드 나스(Nass) 교수,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문영미 교수 등이 이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990년대 후반 이 기술을 오피스 프로그램에 적용했지만 당시 기술 수준이 1·2단계만큼도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3단계는 성공하지 못했다. 최근 들어 앞에서 언급한 감성 기술의 두 가지 영역이 상당히 발전하면서 소셜 인터페이스에 대한 관심도 다시 높아지고 있다. 현재 스마트폰, 스마트TV, 차세대 게임기, 미래형 자동차와 같은 제품들에 이 같은 기술을 적용하려는 연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소니·구글·BMW·아우디와 같은 다양한 기업들이 소셜 인터페이스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앞선 두 가지, 커뮤니케이션의 이해와 전달이 근본적으로 공학적 문제라면 감성 기술의 마지막 조건인 소셜 인터페이스는 인문학과 공학의 통섭(統攝)적 문제다. 이는 인간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이해와 고찰 없이는 발전하기 어렵다.
초기에 BMW에 내비게이션을 탑재했던 연구자들은 독일 운전자들이 왜 여성 목소리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가기를 거부했는지에 대해 리콜 요청이 들어오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 소니와 구글의 TV 디자이너들은 게임기보다 더 복잡한 리모컨이 집에서 휴식을 취하려는 가정주부와 중년 남성들에게 얼마나 거부감을 주는지 알지 못했다.
많은 스마트TV 업체들은 아직도 TV 사용자들이 TV를 통해 얻고자 하는 근원적인 욕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이 때문에 거의 사용하지도 않을 다양한 기능과 비자연스러운 시각 경험인 3D(3차원) 기능에 매달리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생을 마감하기 수년 전부터 애플의 DNA를 인문학과 공학의 교차점에 놓기 위해 노력했던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디자인과 UI는 경쟁 국가들보다 한 차원 위라고 평가된다. 올해에도 우리 제품들이 꾸준히 세계 시장에서 선전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하지만 인간과 기술의 상호작용에 대한 근원적이고 인문학적인 이해 없이는 우리 기업들도 과거 소니나 노키아의 전철(前轍)처럼 순식간에 뒤처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UI(사용자 환경 : User Interface)
인간과 기기·시스템이 원활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나 소프트웨어 환경. 눈동자 움직임을 감지해 화면을 멈추는 기능이나 메뉴·버튼 배치 등 사용자가 편리하고 직관적으로 기기를 쓸 수 있게 하는 요소들이 이에 속한다.
☞UX(사용자 경험 : User Experience)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얻는 총체적인 경험. 예를 들어, 애플의 아이폰을 사용하면서 축적되는 기억·느낌·만족감 등을 총칭하는 개념. 긍정적인 UX가 쌓일수록, 사용자의 만족도와 브랜드 충성도가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