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압부품을 만드는 A 기계업체는 지난해 미국 대형 기계업체와 100만달러(약 10억원) 규모의 납품 계약을 진행했다. 그동안 일본 부품을 수입해 사용해온 이 미국 업체는 최근 엔화 가치가 급등(엔고)하자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가 철폐된 한국 기업과 거래를 시작한 것이다.

공작 기계를 만드는 현대위아##는 한·미 FTA가 발효되며 지난해 대미(對美) 수출에서 10억원의 수출 증가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추정했다. 현대위아 측은 "미국에 수출 비중이 아직 크지 않고, 현대위아의 한 해 매출이 6조원에 이르기 때문에 10억원은 큰 규모가 아니지만, 관세가 철폐되며 미국에 수출하는 제품 가격이 그만큼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DB.

지난해 3월 한미 FTA가 발효된 이후 우리나라 기계 업체들의 미국 수출이 활기를 띠고 있다. 우리 기업이 세계 최대 기계 시장인 미국 시장에서 관세 장벽 없이 거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 기계 업종, 한미 FTA 활용률 70% 수준

무역협회는 평균 4.5% 수준이었던 기계 업종의 관세가 즉시 철폐되며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우리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고, 미국에서 수입하는 기계 부품의 가격도 낮아져 비용 절감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기계 업체들은 다른 업종보다 한미 FTA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더 컸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기계 업종의 한미 FTA 활용률은 65~71%로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FTA 활용률이란 FTA가 효율적으로 이행되는 수준을 일정한 분석 방법으로 측정한 것으로, FTA 활용률이 높을수록 기업이 FTA 체결에 따른 경제적 혜택을 많이 누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2012년 대미 기계 업종 수출은 FTA 발효에 힘입어 전년보다 소폭 증가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계 업종의 대미 수출 금액은 103억5523만달러로, 2011년 99억1387만달러보다 4.5% 증가했다. 수입이 소폭 줄어들며 무역 수지 역시 2011년 28억1326만달러에서 2012년 34억7609만달러로 개선됐다.

전문가들은 특히 기계산업은 한국과 미국의 기술보완성이 높아 앞으로도 꾸준히 무역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원은 지난 FTA 협상 이후 낸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범용 기계와 부품에, 미국은 전용 기계에 특화돼 있어 상호 보완성이 크고 협력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 “2014년 본격적인 FTA 효과 기대”

다만 지난해 세계 경기 침체의 여파로 한·미 FTA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지는 못했다.

미국에 공작 기계를 수출하는 B 기계업체의 미주 지역 영업부 관계자는 “FTA 발효 이후 관세가 철폐됐지만, 가격 인하만으로 수혜를 누리기에는 미국 기계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관세가 철폐되며 가격 인하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 구매자 측이 가격을 추가로 인하하라는 요구를 해 실질적으로 관세 인하를 체감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미국 기계 업황이 위축된 상황에서 일본을 비롯해 대만과 중국 등 경쟁국 업체들과 경쟁이 심화된 것도 우리 기업의 FTA 효과를 반감시켰다. 미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다수 기계 업체들은 올해 하반기 미국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다시 시작하면 내년 초부터 FTA 효과가 극대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경기가 회복될 때 FTA 효과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 기업들이 기술 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술 개발을 통해 저가(低價) 공세를 펼치는 신흥국과의 경쟁에 대응하고 원가를 절감하면 우리 기업이 미국 시장 점유율을 더 늘려나갈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중소 기계 업체 등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한국기계연구원은 “까다로운 인증수출 제도와 원산지 증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중소 기계 업체의 FTA 활용도를 높이고, 한미 양국의 기술 협력을 지원해 산업 발전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