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과 기업 이익의 절묘한 균형을 맞추는 것이 미래 기업의 생존 전략이다."

세계적 마케팅 학자인 필립 코틀러가 올 초 나온 신간 '필립 코틀러의 굿워크 전략'에서 강조한 말이다. 그는 기업이 예전처럼 여윳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업의 사업 목표에 맞는 사회문제를 찾아 마케팅과 경영 차원에서 다각도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평소 "기업은 고객과 사랑의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회사가 부도나면 고객이 친구를 잃은 것처럼 슬퍼할 정도가 돼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의 주장은 지금 한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다. 올해 국내 기업에선 따뜻한 경영, 이른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경영 화두다. 주요 그룹 총수들도 올해 신년사에서 거의 빠짐없이 이를 언급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국민경제에 힘이 되고, 우리 사회에 희망을 줘야 한다"며 "어려운 이웃들이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사회 공헌 사업을 더 활발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어려운 때일수록 소외된 계층을 보살피고, 협력 업체와 동반 성장에도 앞장서 국민 행복과 국가 경제 발전에 공헌하는 모범적인 기업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해외 봉사에 나선 삼성서울병원 직원. 어린아이를 돌보는 그녀의 눈길이 따스하다. 우리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은 이제 국내에 머물지 않고 세계 곳곳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 온기가 언젠가는 우리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우리가 속한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라는 점을 늘 유념해야 한다"고 했고, 허창수 GS그룹 회장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에 부응해 법질서를 존중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경영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의 밑바탕에는 경제 민주화를 강조하는 새 정부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깔려 있다. 하지만 이젠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노력이 기업 매출과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는 인식이 기업 전반에 퍼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경제연구원 현진권 사회통합센터 소장도 지난달 19일 열린 세미나에서 "기업의 이윤 추구와 사회적 책임은 상호 충돌하는 것이 아니다"며 "그동안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규범적 측면에서만 다뤄왔지만 이젠 경제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를 실증한 외국 기업은 상당히 많다. 미국 카드 회사인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1983년 고객들이 카드로 거래하거나 새로 카드를 발행할 때 회사가 일정액을 기부하기로 했다. 자유의 여신상을 보수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170만달러를 모금했고, 그해 회사 카드 사용량도 27% 증가했다.

커피 회사인 네스프레소도 아프리카 지역 원두 생산자들에 대한 교육과 투자를 한 후 매년 20% 이상 생산성이 향상되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미국에선 최근 10년간 친환경, 유기농, 공정무역 등의 가치를 내세운 상품들이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런 사례들이 쌓이면서 글로벌 기업의 사회 공헌은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기업 경영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2011년 창립 100주년을 맞은 IBM의 기념행사 메인이벤트도 사회 공헌 활동이었다.

국내 기업들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11년 한 해 동안 국내 기업의 사회 공헌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주요 기업 222개사가 3조1241억원을 사회 공헌 활동에 썼다. 1조원대를 기록한 2002년보다 10년 만에 3배 수준으로 규모가 커진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올해 이를 더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은 지난 2월부터 계열사 사회 공헌 조직을 CEO 직속으로 바꿨다. 사회 공헌 활동을 CEO가 직접 챙기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사회 공헌 활동도 교육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방과 후 중학생들에게 영어·수학을 무상으로 가르치는 드림클래스 사업을 올해 더욱 확대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도 청년 일자리 지원 사업과 사회적 기업 일자리 창출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치기로 했다. 청년 사회적 기업가 발굴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H-온드림 오디션'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올해는 계열사별로 전문 분야와 관련한 사회 공헌 사업을 새로 개발할 예정"이라고 했다.

LG그룹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차원에서 올해 역대 최대인 20조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16조8000억원)보다 19% 늘어난 것이다. 또 올해 초부터 임직원들이 협력 회사를 비롯한 업무 관련자로부터 경조사와 관련한 금품을 일절 받지 않도록 윤리 규정도 강화했다. 포스코는 다문화 가족 등 취약 계층에 대한 일자리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 올해 고용 인원을 1300여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국내 기업들은 해외 비즈니스 확대에 맞춰 해외에서의 사회 공헌 활동도 활발히 진행할 계획이다. 기업이 해외에서 자리 잡는 데 사회 공헌 활동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당장 중국만 해도 시진핑 체제의 출범을 기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한층 강조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아프리카 지역 IT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해 IT 기술을 전파하고 취업·창업을 지원하는 '엔지니어링 아카데미' 사업을 올해 더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갑수 수석연구원은 "해외에서의 사회 공헌 사업은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앞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사회 공헌 활동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