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건축가]③ 이재하, 판교 휩쓴 단독주택 명장 "함부로 짓지말자"

조선비즈
  • 허성준 기자
    입력 2013.03.02 10:00

    “나는 친한 건축가가 없다. 집을 지으면서 인연을 맺은 건축주와 만나기도 바쁘다. 집을 지어주면서 그 사람의 가족과 인생을 속속들이 알게 되니 친해질 수밖에. 계속 주택을 지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의 인생과 어우러져 살고 싶다.”

    보통 많은 건축가는 경력이 쌓일수록 규모가 큰 건축물을 설계하고 싶어한다. 사업가가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이재하(44) 소장은 정반대다. 단독주택을 계속 짓겠다고 한다. 자신의 건축적 역량을 집중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집을 지어주면서 얻게 되는 인연과 추억이 더 좋다고 했다.

    이재하 건축가./이재하 건축설계사무소 제공
    주택 설계 전문가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일감이 쏟아졌다. 보통 소규모 건축설계사무소(아틀리에)는 1년에 4~6개 프로젝트를 하지만, 이 소장은 지난해 20개의 주택을 설계했다. 이 소장의 사무소가 총 8명으로 꾸려지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물량이다. 실력은 자타공인이다. 이 소장은 2009년 세계적인 건축상 중 하나인 시카고 아테나움 국제 건축상을 수상했다.

    “외국 유학을 안 간 대신 학부 졸업 후 계속 주택 설계에 매진했다. 현장 경험이 또래 건축가보다 훨씬 많은 것이 내 장점이자 강점이다.”
    경기 판교신도시에 있는 단독주택 I-ZIP 야경./박완순 사진작가
    ◆ “주택은 아무나 지으면 안 돼..계속 집짓기 이어갈 것”

    이 소장의 설계사무소는 판교신도시에 있다. 이곳에 조성된 단독주택단지에 이 소장의 작품은 시공 중인 것까지 포함해 총 12개. 한 건축가의 작품이 한 지역에 이 정도 쏠려 있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입소문이 나면서 일감이 갑자기 몰렸다. 그러나 12개의 주택 모두 제각기 개성이 다르다. 각 건축주마다 개성이 다르고 생활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집도 그것에 따라 고유의 정체성을 갖는다. 애초 설계에 들어가기 전에 가족들의 생활 패턴과 스타일, 요구하는 것을 자세히 취재한다. 그 후 주어진 땅의 조건들을 고려하고 집이 조형적으로도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집에 사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집은 함부로 지어선 안 된다는 말을 많이 했다. 아파트 일색인 수도권에서 사는 많은 사람에게 단독주택을 짓는다는 것은 ‘평생의 꿈’을 실현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과 함께 만들어갈 추억이 아로새겨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50대 초반의 건축주가 있었다. 그는 부인을 잃은 뒤 단독주택을 짓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분은 딸과 함께 살 집을 나와 매일 같이 의논하며 직접 설계했다. 그는 설계가 마무리될 때쯤 집을 설계하는 과정이 자신이 치유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때 굉장히 엄숙하고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집이란 그런 것이다. 나는 그것에 대한 책임감을 사랑한다.”
    I-ZIP의 계단 모습. 원목을 벽에 그대로 박았다./박완순 사진작가
    ◆ 판교의 미술관 같은 집, ‘I-ZIP’

    경기 성남시 판교 단독주택 단지에는 아름다운 집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이 소장이 설계한 ‘I-ZIP’은 조형적으로 단연 눈에 띈다. 우선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주택 전체에 하얀색 페인트를 칠해 주변 다른 주택과 확연히 구분된다. 주택 형태는 마치 미술관을 연상시키듯 비정형적이다. 주택 높이만큼 높게 올라선 계수나무 두 그루는 운치를 더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거실이 보이지 않고 좁은 통로를 뒀다. 주택 외관과 마찬가지로 즉각적으로 일반적인 집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한 것.

    거실로 들어서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오는데 보통 계단과 방식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계단을 지탱하는 기둥을 세우지만, 이 집의 계단은 벽에 수평으로 박은 나무를 밟고 올라가는 형식이다. 원목을 수평으로 벽에 박고 계단 마감은 오래된 나무를 덧대 클래식한 분위기를 살렸다.

    “나는 고요, 영원, 숭고, 고귀라는 단어를 품고 설계를 한다. 그러나 늘 그 건축물에는 지루함을 깰 수 있는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건축물에 1~2가지 재미있는 요소를 넣어주면 건축물에 생기가 돈다. 완벽한 대칭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대칭에 살짝 깨진 대칭들을 겹쳐 놓는 것을 좋아한다.”
    충남 태안군 신두리에 있는 마로니에 팬션 전경. 1층 로비로 통하는 길에 일부러 다리를 놓았다./박완순 사진작가
    시카고 아테나움 건축상을 수상한 충남 태안군 신두리의 마로니에 팬션은 입구가 특이하다. 1층 로비로 통하는 입구로 통하는 길은 건축 당시 평지였음에도 일부러 직육면체의 모양으로 흙을 팠다. 그다음 폭이 좁은 다리를 통해 로비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고, 계단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조성된 지하공간은 팬션 지하 쪽을 통해 바로 바다로 나갈 수 있도록 했다.

    “모든 건축물에는 드라마틱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칭과 비대칭을 넘나들고, 소재 사용도 다양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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