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집행부가 교체된 현대자동차##노조는 4년 만에 부분 파업에 돌입했다. 사측과의 임금·단체협상이 진척되지 않자 곧바로 꺼내든 카드가 파업이었다.
그 결과 현대차 노조는 역대 최고의 협상결과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기존 300%였던 성과금은 500%로 인상됐고, 연말 일시금으로 960만원(상품권 10만원 포함)을 지급 받았다. 대졸 초임의 3분의 1을 연말에 현금으로 챙긴 셈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펴낸 '월간 노동리뷰'에 따르면 지난해 지급된 일시금을 더할 경우 현대차 생산직 근로자(정규직)의 1인당 연봉은 최고 1억1500만에 이른다.
반면 회사가 입은 손실은 막대했다. 현대차가 7~8월 중 92시간 파업으로 총 3만2646대의 생산 차질을 빚었고, 기아차가 8~9월 중 80시간 파업으로 2만1413대를 생산하지 못했다. 이는 잔업·특근을 제외한 기준으로, 실제 생산 차질량은 현대·기아차를 합쳐 총 14만4000대, 금액으로는 2조7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8월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 금액은 1년 전보다 21.7%나 감소하기도 했다.
◆ 20년간 335일 파업하는 노조
최근 엔저 현상과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견제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기아차에게 강성으로 선회한 노조가 위기감을 더하고 있다. 현대차가 2009~2011년 3년 연속 무분규 타결에 성공, 안정적 노사관계가 형성되는 듯 보였으나 이는 노조가 원하는 '당근'을 모두 쥐어 주고 이끌어낸 '불편한 동거'에 불과했던 셈이다.
대표적인 ‘귀족 노조’로 알려진 현대·기아차 노조는 회사가 중요 변곡점을 지날 때마다 전면·부분 파업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 왔다. 이는 생산성 저하라는 직접적인 피해와 함께 회사 안팎의 차가운 눈초리를 맞는 원인이 됐다.
현대차만 해도 1987년부터 2006년까지 20년간 1994년 한 해를 제외하고 매년 관행적으로 파업을 벌였다. 이 기간 파업 일수는 총 335일, 생산 차질액은 10조5381억원에 달한다. 20년 중 1년 가까이를 파업으로 공장을 놀린 셈이다. 파업이 없었던 1994년에는 임금을 13.5%나 파격적으로 올려줘야 했다.
◆ 연봉 올라도 생산성은 제자리
이처럼 업계 평균을 훨씬 뛰어넘는 대우에도 불구하고 노조 차원의 생산성 제고 노력은 미미하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자동차 한대를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HPV·하버리포트의 생산성 조사 참고)은 31.3시간으로, 제너럴모터스(23.0시간)·포드(21.7시간)·혼다(23.4시간)·도요타(27.1시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다. 그만큼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임단협의 핵심 이슈였던 주간 연속 2교대제 역시 협상 과정에서 난맥상을 보였다. 주간 연속 2교대제는 1조가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 40분까지 일하고, 2조가 오후 3시 40분부터 다음 날 오전 1시 반까지 일하는 근무 형태다. 기존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50분까지 일하는 ‘주간조’와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일하는 ‘야간조’를 나눠 근무했다.
조업 단축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가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받아들인 것은 이를 통해 밤샘 근무가 사라지고, 노동자들의 삶의 질도 향상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조는 주말 특근만큼은 종전처럼 토요일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심야에 일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시간에 특근을 해야 밤샘 근무로 인한 수당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휴일 심야 근무는 최대 3.5배의 시급을 적용받기 때문에 개인당 하루 30만원 정도의 수당을 챙길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밤샘 근무를 없애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주간 2교대제의 당초 취지와는 맞지 않다. 노조 안에서도 휴일 야간에 근무하는 것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는 주간 2교대제 하에서 주말 특근 방식을 조율 중이지만, 시행 보름을 앞둔 현재까지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황용현 한국경영자총협회 노사대책팀장은 “최근에는 노사간의 신뢰가 기업의 생산성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현대·기아차가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노사문화를 조기에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 현대·기아차 노무담당, 임원의 '무덤'
이처럼 사안마다 사측과 대립하는 노조 탓에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현대·기아차에서도 '노무 담당 임원'은 유난히 단명하는 경우가 많다. 기아차는 지난해 10월 노사협상 실무 책임자였던 노무지원사업부장(상무)을 전격 해임했다. 해당 사업부를 담당한 지 불과 7개월 만이었다. 작년 여름 장기 파업으로 기아차의 매출 손실이 컸고, 임금인상·주간 연속 2교대제 등 노조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줬다는 게 해임 사유였다. 사측을 위해 얻어낸 것은 없었다는 문책도 받았다.
앞서 2010년에는 기아차 노조가 봄부터 부분 파업을 하자 회사는 강경 대응을 고수했던 화성공장장(부사장)을 그해 4월 경질했다. 당시 후임으로 왔던 전무 역시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2011년 초와 지난해 초에도 노무관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각각 기아차 사장과 현대·기아차 노무 총괄 부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사측이 노조와의 협상 실패 책임을 노무 담당 임원에게 전적으로 뒤집어 씌운다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사안의 근본적 원인은 강성 노조에 있는데, 애먼 실무자들만 치도곤을 당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잦은 노무라인 교체는 노조에 대한 사측의 협상력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 노조 안에서만 많게는 10여개의 계파가 나눠질 만큼 정치적 사안이 복잡하지만, 노무관리 실무팀이 자주 교체되면서 업무 파악하다 짐싸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현대차는 파업이 나면 일단 노무라인을 교체하고 본다”며 “노측은 오랜기간 노사협상에 나선 전문가인데 사측은 계속 새로운 사람이 나온다”고 말했다. 협상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