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건축가]② 김찬중, '건축판' 살리는 건축가

조선비즈
  • 허성준 기자
    입력 2013.02.20 06:00

    ‘건축판’에서 아틀리에(소규모 건축설계사무소)는 가시밭길로 통한다. 우선, 설계를 도제식으로 배울 수 있는 아틀리에는 영세하다. ‘건축’이라는 단어가 주는 화려함에 비해 설계사무소의 임금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출근은 빠르고 퇴근은 느리기로 유명하다. 오후 9~10시에 퇴근하면 일찍 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입사가 쉬운 것만도 아니다. 매년 쏟아지는 건축학과 졸업생을 소화할 만큼 아틀리에가 많지 않다. 볼멘소리라도 했다간 당장 “그럴 거면 뭐하러 건축했느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게 건축판이다. 이런 상황을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가르치며 건축계 누구나 당연시한다.
    김찬중 더시스템랩 소장.
    ‘더시스템랩(THE_SYSTEM LAB)’ 김찬중(44) 소장은 이런 건축판 논리에 반기를 들었다.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면서도 경희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재직 중인 김 소장은 큰 괴리감을 느꼈다. 제자들의 갈 가시밭길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건축판은 성취를 이룬 유명 건축가들에게는 좋을 것이다. 그러나 건축을 배우고 지속해 나가려는 건축가의 행보를 가로막는 것으로 봐야한다.”

    아틀리에는 대형설계사무소가 설계도를 10장 그릴 때 100장을 그린다고 보면 된다. 웬만한 아틀리에 소장들이 다 그렇게 배웠다. 그러다 보니 돈도 별로 되지 않는 프로젝트를 두고 밤을 새우고 코피를 쏟는다.
    신천 나들목 전경./박완순 사진작가
    “물론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보람은 있다. 그러나 몸, 그리고 생활이 무너진다. 그걸 제자들 보고 똑같이 하라고 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좀비’ 같은 건축판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 고정관념 깨니 비용·시간 확 줄어

    김 소장의 첫 번째 실험은 소재를 다양하게 사용한 것. 전통적으로 건축에 쓰이는 소재는 돌·목재·콘크리트지만, 김 소장은 플라스틱에 속하는 ‘폴리카보네이트(Polycarbonate)’와 ‘섬유강화플라스틱(FRP·Fiber Reinforced Plastic)’를 사용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그동안 김 소장 이외엔 건축업계에선 플라스틱을 자재로 사용하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다.

    “일반적으로 돌이나 나무는 자재를 공수하는 것부터 시공하는 데까지 시간과 공력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그런데 강도와 방수 능력이 뛰어난 폴리카보네이트나 FRP 등을 사용하니, 자재를 공수하는 시간은 물론 제작하는 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어 들었다. 플라스틱은 한 개 틀로 대량생산도 가능하다. 설계 인력이 일일이 현장에서 시공 과정을 지켜볼 필요도 없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작된 플라스틱을 이어 붙이기만 하면 된다.”

    실제 신천 한강 나들목 리모델링 공사에 4가지 형태의 폴리카보네이트 모듈을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나들목 외장공사는 타일을 사용하지만, 폴리카보네이트 모듈 시공방법으로 구간별로 사업비를 약 2억원씩 절감했다. 또 파손되면 해당 모듈을 바꾸면 되도록 설계했다. 유지·보수 측면에서도 비용 절감 효과가 컸다. 무엇보다 음습한 분위기였던 나들목이 밝고 환하게 바뀌면서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으로 바뀌었다.

    김 소장의 새로운 시도는 모델하우스 시공 방법에도 큰 변화를 줬다. 모델하우스는 일반적으로 분양이 끝나면 허물거나 다른 건설사가 새로 꾸미면서 건축 폐자재들이 다수 발생한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조립·해체가 가능한 강화 플라스틱 시공법을 도입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분양이 끝나면 자재를 해체해 보관해두고 분양이 시작되면 다시 조립한다. 돈과 시간, 환경까지 챙길 수 있게 된 것. 김 소장은 삼성물산의 래미안 갤러리, 쌍용건설 홍보관, 한화건설 에코메트로 홍보관 등 다양한 건설회사의 모델하우스를 설계했다.
    경남 양산시가 발주한 미래 디자인 연구소 조감도. 김 소장이 설계한 이 프로젝트는 외부공간이 특히 강조됐다./더시스템랩 제공
    ◆ “의사결정 방식으로 비용·시간 줄인다”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 시간·비용 절감에 성공했던 김 소장이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딛쳤다.

    “많은 건축주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방식으로 은행에서 돈을 대출해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공사기간을 줄일 수 있는 설계 방식을 과도하게 선호하기 시작했다. 돌과 나무 등 진성 소재를 사용하고 싶어도 무조건 시간이 덜 드는 강화플라스틱류의 새로운 소재를 사용해달라는 요구도 많았다. 내 설계의 정체성(identity)이 (소재로만) 굳어지는 것이 싫었다.”

    김 소장은 또 다른 혁신을 시도했다. 소재가 아니라 설계 과정 부문에서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연구했다.

    “각 프로젝트에는 예산·기간·면적·시장요구·프로그램 등 다양한 조건이 존재한다. 각 조건은 일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를 잘 연구하면 최대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각 조건들은 서로 고유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가정해보라. 우리는 이런 가정 아래서 최적화한 설계도안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전체 작업에 들이는 시간과 공력의 50%를 최적화 솔루션을 찾는데 쏟아붓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자연스럽게 시행착오를 줄인다. 작업 시간도 짧아졌다.”

    김 소장은 고유 관계성을 일종의 시스템으로 본다. 이걸 깨달은 2012년 김 소장은 회사 이름도 ‘시스템랩’에서 ‘더시스템랩(the system lab)’으로 바꿨다. 정관사(the)를 붙인 것은 각 조건마다 고유한 관계가 있다는 강조한 것이다. 더시스템랩의 설계 진행 방식은 다른 설계사무소와 다르다. 소장까지 총 8명의 인력이 각자 전체 프로젝트 각 부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실현 가능한 시안을 일정 기간 내에 마련한다. 그다음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부분별로 마련된 시안들을 짜맞춰 본다. 어떨 땐 시뮬레이션으로 수백 개 시안이 도출될 때도 있다. 그래도 모두 시험해보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효율적이라는 것이 김 소장의 설명이다.

    “이 방법을 적용한 후 대부분 오후 8시쯤이면 퇴근한다. 건축판은 이직이 많은 데 더시스템랩은 초기 구성원들이 여전히 이끌어 가고 있다.”
    더시스템랩이 설계 중인 한남동의 오피스건물./더시스템랩 제공
    ◆ “이용자가 행복해야 건물 가치도 높아져”

    최근 김 소장은 프로젝트마다 발코니, 옥상공원, 구름다리 등 외부 공간을 마련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보통 발코니 등 외부공간을 만들면 공사비가 더 들고 단열이나 방수가 취약해진다. 특히 외부에 공간을 만들면 건축 표면적이 늘어나면서 비용이 추가되기 때문엔 건축 설계에선 보통 금기시한다.

    “사람들은 외부 공간이 많은 건축물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그걸 알기 때문에 외부 공간 설계에 총력을 다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려고 노력한다.”

    현재 경남 양산시가 발주하고 더시스템랩이 설계 중인 6600㎡ 규모의 ‘미래 디자인 연구소’도 외부공간이 강조된 건물이다. 각 동 연결 이음매마다 작은 정원이 있다. 어느 곳에 있어도 문을 열고 나가면 바람을 쐴 수 있다. 표면적이 늘면서 생긴 추가 공사비는 태양광 발전 시스템 장착할 수 있도록 설계한 지붕으로 해결했다. 장시간 햇볕을 잘 받을 수 있도록 해 에너지 사용 비용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발주처나 건축주보다 이용자가 건물에 대해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관이 웅장하고 멋있어도 실제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건물 내부에 있다. 그 점을 항상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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