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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 건축가]① 장영철·전숙희, “이젠 초식 건축가 시대"

  • 허성준 기자

  • 입력 : 2013.02.09 11:00

    내심 걱정했다. 경기 불황이 극심해지면서 대형 건축설계사무소들도 무너지거나 몸집을 줄이는 판인데 10명 이하의 인원으로 꾸려가는 소규모 건축설계사무소(아틀리에)의 경영난은 불 보듯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7일 만난 ‘와이즈 건축’의 장영철(43)·전숙희(38) 건축가의 입에선 정반대의 말이 돌아왔다.

    와이즈 건축의 전숙희(좌) 정영철(우) 건축가./와이즈 건축 제공
    와이즈 건축의 전숙희(좌) 정영철(우) 건축가./와이즈 건축 제공
    “제 또래의 젊은 건축가 중에서 지금 일감 없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서너개씩은 진행 중일 정도로 바쁩니다. 경기 침체로 대형 프로젝트는 사라졌지만, 오히려 중·소 규모 프로젝트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큰돈 버는 것은 아니지만, 큰돈 벌 욕심이 없고 사무소 운영에도 지장이 없습니다.”

    중·소 규모 프로젝트가 많은 데는 뚜렷한 이유도 있었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아파트 시장이 무너지면서 대중의 눈이 변했기 때문. 주택·빌딩·근린생활시설을 자본증식을 위한 투자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목적으로 사용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 “우린 초식 건축가…돈 안 되는 일로 돈 번다”

    장영철·전숙희 건축가는 자신을 ‘초식 건축가’로 칭했다. 초식은 육식의 반대말. 그들의 설명은 이렇다. ‘육식 건축가’는 거대하고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설계하겠다는 욕망이 앞선다. 초식 건축가는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작은 건물로 빈 공간을 채우고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우선시한다.

    두 건축가는 이른바 ‘초식 건축’이 최근 30·40대 건축가들의 공통 관심사라고 했다. 실제 대규모 프로젝트의 경우 제안이 들어와도 맡지 않는다. 현상 공모에도 나가지 않는다. 발주-수주 방식의 생존 논리에 따라가다 보면 부침이 심해 소규모 건축사무소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건물을 지어달라는 제안을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나 공모전에 당선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일감이 없을 땐 공공예술 프로젝트 등을 자체 자본으로 진행하며 끊임없이 ‘뭔가’를 해왔다. 건축 설계뿐 아니라 제품 디자인, 가구 디자인도 한다.”

    두 사람은 부부다. 장 건축가는 1997년 홍익대를 졸업하고, 미국 UC버클리에서 수학했고 전 건축가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미국 프리스턴대에서 유학했다. 두 사람은 승효상 건축가의 ‘이로재’에서 실무를 쌓다가 인연을 맺었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내부 전경./김두호 사진작가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내부 전경./김두호 사진작가
    ◆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공간과 동선에 위로와 희망을 ‘담다’

    그렇다고 초식 건축가가 상과 인연이 없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의 ‘젊은 건축가상’을 받은 데 이어 최근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담은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으로 서울시 건축대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아래 4만5000장 벽돌로 차곡차곡 지어진 박물관이다.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 주택을 리모델링하고 증축했다.

    입구부터 기존 건축물과 다른 분위기다. 출입구를 도로 쪽에 두지 않고 막다른 골목에 설치했다. 1층이 아닌 지하 1층으로 진입해 계단을 통해 올라가도록 동선을 짰다. 지하 1층에서 시작된 계단은 1층은 건너뛰고 2층의 전시공간으로 이어진다. 어두침침하고 좁고 거친 계단을 오르내려서일까. 1900년대 초 일본군 위안부의 고통과 두려움이 한층 진하게 다가온다.

    2층 전시공간에는 빛과 바람이 들어선다. 전시공간 벽을 구성하는 벽돌을 아귀가 맞지 않게 배치해 일정 간격의 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틈으로 빛과 바람을 통한다.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이어진 답답하고 어두운 분위기도 해소된다. 듬성듬성 벌어진 벽돌 틈으로 형형색색의 꽃들을 꽂을 수 있다. 전쟁 피해자의 넋을 기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면 탁 트인 유리문을 통해 정원으로 나올 수 있다. 어둡고 거친 지하를 거쳐 풍요로운 자연과 빛을 마주할 수 있도록 한 것.

    장 건축가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의 동선 구성은 일본군 위안부의 일대기를 표현한 것”이라며 “방문객들이 자연스럽게 일본군 위안부의 아픔에 동감하면서도 아픈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외부 전경./김두호 사진작가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외부 전경./김두호 사진작가
    ◆ “손의 프로세스가 중요하다”

    그들은 ‘손’을 놀리지 않고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적용한다.

    “자신이 개별적으로 좋아하고, 관심이 가는 것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에 집중하는 편이다. 공공예술 프로젝트든, 건축물이든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중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손의 프로세스가 중요하다. 말이 아니다.”

    장·전 건축가는 지난해 금호미술관에서 진행된 ‘두잉doing’전(展)에 참여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진행하는 ‘도시공원 예술로’ 프로젝트에 작가로 선정돼 작업을 진행 중이다.

    초식 건축가는 말한다.

    “우리 방식에 가치를 느끼는 사람들이 집이나 건물의 설계를 부탁하는 구조다. 이런 구조는 한번 만들기가 어렵지 일단 작동하면 일감은 절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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