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종자주권 찾기 '김의 전쟁'은 승기 잡아

입력 2013.01.31 03:06

2년 전엔 대부분 일본산 사용, 토종 종자 개발해 도전장
생산량 1.5배, 가격은 절반… 김 산지 명량해전 해역서 경쟁
해외 종자 로열티 매년 증가 "감귤 등 9개 품목 로열티로
2020년엔 7900억 나갈 것" 버섯·딸기는 국산 증가세

배양 중인 토종 김 종자
지난 25일 오전 7시 20분 전남 해남군 송지면 어란항. 김 채취선이 항구를 떠나 20분을 가자, 망통(스티로폼)과 줄로 연결된 김 양식장이 나타났다. 김을 채취하던 어민 박태양씨는 "새로 개발된 진짜 토종 김"이라며 "지난 시즌까지는 일본 종자 김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해남군수협 어란 위판장의 유바우 경매사는 "한국에서 재작년까지 키우던 거의 모든 김은 일본 종자였지만, 이제는 토종 김의 도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충무공 이순신이 단 12척의 배로 왜구 300여척에 대승을 거둔 명량해전과 같은 해역(海域)에서 한국과 일본의 김이 다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1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한국의 김 시장은 2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종자 김 일색이었다. 토종 김 종자는 쓸 만한 것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김은 종자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

그러나 전라남도는 2008년 해남에서 특이하게 우량한 토종 김 종자를 발견한 뒤 육성해, 한국 토종 종자인 해풍1호, 일명 수퍼김을 개발했다. 해풍1호를 개발한 김동수 전남도 해양수산과학원 목포지소장은 "해풍1호는 생산량이 일본 김의 1.5배 이상이고 병에 대한 저항력도 강하다"며 "가격도 종자 1g당 5만원으로 일본 종자의 절반도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해남의 경우 지난겨울에는 해풍1호를 기르는 어민이 전체의 30%였고, 지금은 60%"라고 말했다. CJ제일제당 등 국내 업체는 작년 하반기부터 이 김을 상품으로 만들어 팔고 있다.

지난 25일 전남 해남군 어란항 앞바다에서 어민들이 ‘해풍 1호’를 채취하고 있다. ‘해풍 1호’는 전남 해양수산과학원이 개발한 종자다. 그동안 우리가 먹어온 김은 대부분 일본산(産) 종자를 키운 것이었다. /이준헌 기자
◇먹는 농산물 대부분은 외국 씨앗

이는 해조류 부문에서 우리 종자를 제대로 키운 첫 사례다. 종자는 제조업으로 따진다면 핵심 기술이지만, 우리는 종자 전쟁에서는 밀려도 한참 밀리고 있다. 원래 종자 개발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IMF 외환위기 이후 종자 권리를 갖고 있던 업체들이 해외에 팔렸기 때문이다. 이 탓에 우리 농산물의 약 70%는 외국 씨앗에서 나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 종자에 지급하는 로열티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한국이 외국 종자에 지급하는 로열티는 2001년 5억5000만원에서 작년 205억원으로 늘어났다. 안광현 농림수산식품부 주무관은 "수입 종자를 많이 쓰는 김·감귤·버섯 등 9개 품목의 경우 국산 종자를 보급하지 않는다면 2020년까지 7900억원이 로열티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로열티 지급액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는 한국이 2002년 가입한 국제식물신품종보호 조약 때문이다. 이 조약은 해조류를 포함한 식물 종자에 대해 20년(나무는 25년) 동안 특허를 보호해 주는 제도다. 한국은 가입 10년이 되는 2012년 모든 식물에 대한 특허를 보호할 의무를 지게 됐다.

버섯·딸기 등은 국산화 성공

그러나 다행인 것은 종자 주권을 되찾으려는 시도가 김뿐 아니라 농산물에서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 해 18만t이 소비되는 버섯의 경우, 팽이버섯은 일본, 표고버섯은 중국과 일본, 양송이는 유럽이나 미국 품종이 장악하고 있었다.

팽이버섯에서만 한 해 로열티로 10억원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농촌진흥청은 10년 동안 종자를 개량해 2009년부터 국산 버섯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2010년 36%였던 국산 버섯 종균 비율은 지난해 45%까지 높아졌다. 공원식 농진청 연구관은 "작년 한 해 20여억원의 로열티를 절감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딸기는 국산 종자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004년 국내에서 재배되는 딸기 종자 가운데 국산은 4.6%에서 불과했다. 그 후 2012년에는 74%까지 올랐다. 대형마트에서 흔히 보게 된 '매향', '설향' 같은 품종이 우리나라에서 육성된 딸기다. 시작 단계지만 사료용 옥수수도 국산화가 시작됐다. 2011년에 쓰인 사료용 옥수수 종자 285t 가운데 국산종은 81t에 불과했다. 70% 넘게 외국 종자를 쓴 셈이다. 하지만 국제 사료 가격이 오르면서 수입 가격이 비싸진 뒤, 농촌진흥청은 작년 '평강옥', '안다옥' 같은 국산 품종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종자 개발 건수도 늘고 있다. 국립종자원에 따르면 한국 품종보호 출원 건수는 2009년 547건, 2010년 574건, 2011년 587건, 2012년 606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국립종자원 이승인 연구관은 "한국 기후는 아열대부터 한대까지 다양해서 개발에 쓸 수 있는 종자의 종류는 많은 편"이라며 "다만 외국에 비해 육종 역사가 짧고 업체들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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