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지친 소비자들… 감성 자극에 민감한 반응

조선일보
  • 오윤희 기자
    입력 2013.01.28 03:04

    [올해 업계 화두는 '충동 마케팅']
    미래 위해 저축하기보다는 현재 행복 위한 소비 성향 커져… 감성 건드리는 이벤트 효과적
    비행기 대기 고객이 글 올리면 깜짝 선물 항공사 캠페인 큰 호응
    사고싶은 물건 사진 찍어 인쇄하면 그 상품 선물하는 프린터 업체도

    올 초 인사이동으로 지방에서 서울 본사로 발령받은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최근 인터넷 쇼핑몰을 검색하다 지금껏 잘 쓰지 않았던 향수를 즉석 구매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성인 그를 사로잡은 것은 건 '오랜 친구 같은 도시남의 향기'라는, 상품 소개글 한 구절. 업무 환경 변화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은 데다, 생소한 서울 생활로 인해 매일 긴장의 연속이었던 김씨에겐 '오랜 친구'와 '도시남'이란 두 단어가 구매욕을 자극했다.

    올해 유통업계는 소비자들의 감성을 민감하게 자극해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충동 마케팅'을 화두(話頭)로 삼고 있다. 장기 경기 불황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불안한 일상 속에 살고 있는 대중들의 불안정한 심리를 파고드는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불황에도 소비자들이 지갑 여는 이유는?

    제일기획은 지난해 서울·대전·대구·부산·광주·인천 등 6대 도시에 거주하는 만 13~59세 남녀 3800명의 라이프스타일을 조사해 올해 소비 트렌드가 '일상충동(日常衝動)'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위해 저축하기보단 깊이 생각하지 않고 현재 지향적인 소비를 하는 성향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먼 훗날 행복보다 현재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한 응답자는 2011년 44.7%에서 작년엔 48.9%로 증가했다. "저축을 하며 힘들게 살기보다는 즐기기 위해 돈을 쓰는 편이다"라고 한 응답자 비율도 작년이 2011년 대비 2.7%포인트 높았다. 제일기획 커뮤니케이션연구소 허원구 팀장은 "일상생활에서 긴장 상태가 계속되다 보니 소비자들이 확실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주저하는데, 이때 외부에서 작은 자극이라도 받게 되면 감정적으로 받아들여 충동적인 행동(구매)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가 스마트 프린터를 홍보하기 위해 진행한 이벤트에서 한 여성 참여자가 자신이 사고 싶어했던 옷을 선물로 받은 뒤 활짝 웃고 있다(사진 위). KML 항공사(사진 아래)도 소비자들이 존중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충동 마케팅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삼성전자 제공·유튜브
    다만 이때의 충동성은 과거 무분별한 과소비나 충동구매욕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제일기획은 "시대의 불안과 긴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반작용에 가깝다"며, "단순히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내면에 숨겨진 니즈(needs)를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깜짝 이벤트·감동으로 소비자를 자극하라"

    충동 마케팅은 '타인으로부터 관심 받고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만들어 현대사회에서 불안과 소외감을 느끼는 소비자들을 공략한다.

    네덜란드 항공사 KLM은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고객들에게 이 전략을 사용했다. 최근 이 항공사를 이용한 남성 고객은 공항에서 대기 시간 동안 KLM 항공사 트위터에 "해외로 장기 출장을 간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후 탑승 수속을 밟던 그 남성은 항공사 직원들의 깜짝 선물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 메시지를 확인한 항공사 직원이 승객에게 "해외에서 건강 조심하라"며, 근육통 완화제 등 상비약을 챙겨줬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객이 남긴 글을 읽고 그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소소한 배려를 한 전략 덕택에 KLM 트위터엔 100만 건 이상 댓글이 달릴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회사가 고객의 의견과 기호를 존중한다는 인상을 심어줘서 소비자 개개인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자극'을 주기도 한다. 브라질의 건설회사 까르발류 오스껜(Carvalho Hosken)은 거주자들의 이용 성향을 내부 설계에 반영하는 고객 맞춤형 콘셉트의 아파트를 론칭하면서 충동 마케팅 기법을 도입했다.

    고객이 모델하우스에 입장하기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로그해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뒤 '좋아하는 음악은 ○○' 같은 소소한 개인 정보를 온라인에 노출시킨다. 그 뒤 모델하우스에 들어서면 자신이 좋아한다고 했던 음악이 흘러나오고, 온라인에 공개한 사진과 동영상들이 벽에 설치된 디지털 액정 화면을 통해 흘러나온다. 이 캠페인 결과, 아파트 판매 매출은 약 30%나 뛰었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가 지난 7월 삼성 스마트 프린터 'JUMP(점프)' 홍보에 충동 마케팅을 도입했다. JUMP는 별도로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아도 내장 무선 인터넷 기술을 사용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사용자가 주변 10m 이내에 있는 프린터로 간편하게 인쇄할 수 있도록 한 기기다.

    행사에선 JUMP 사용자가 쇼핑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제품 사진을 찍은 뒤 행사장에 마련된 스마트 프린터를 사용해 시험 인쇄해 보도록 했다. 이벤트 주최 측은 인쇄물이 출력되는 용지함 안에 미리 금빛 용지를 섞어서 상품 사진이 황금색으로 인쇄될 경우, 해당 상품을 선물로 증정했다. 행사에 참여한 한 소비자는 "백화점 마구잡이식 경품이 아니라 내가 찍어뒀던 상품을 깜짝 선물로 받으니 기분이 좋다"며, "소비자 개개인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캠페인 직후 브랜드 인지도가 30.5%에서 46%까지 높아졌고, 제품 구매 의사 역시 37.5%에서 50.5%로 올라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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