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떠맡은 국책사업, 장부 따로 써 책임 가린다

입력 2013.01.21 03:07

우량공기업이던 수자원공사 4대강 맡은 후 빚 11조원 급증… LH·한전·水公 부채만 45조원
책임 소재 가리려 회계 분리, 국고로 적자 보전 방안도 검토, 공기업 자구 노력도 매년 평가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 2007년 말 부채비율이 16%밖에 안 되는 우량 공기업이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부채비율이 급속히 악화돼 2011년 말엔 116%로 치솟았다.

본업 때문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 공약인 4대강 사업을 정부 대신 떠맡았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막대한 돈이 필요한 4대강 사업을 재정으로 충당할 경우 국가채무가 불어날 것을 우려해 수자원공사에 맡긴 것이다. 수자원공사가 채권을 찍어 4대강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면서 이 회사 빚은 1조6000억원에서 12조6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수자원공사 경영진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앞으로는 정부로부터 강제로 떠안은 국책사업의 회계는 본업의 회계와 분리된다. 이른바 정부 대행사업에 대한 '사업별 구분회계' 제도이다. 공기업 부채 증가의 책임이 정부에 있는지, 해당 공기업에 있는지 명확하게 구분하자는 취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세웠고, 정부도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강제 국책사업 관련 부채나 적자는 정부도 일정 정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기업 부채, 책임 소재 가린다

사업별 구분회계는 현재 288개 공공기관 중 유일하게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만 시행하고 있다. 보금자리주택, 혁신도시 등 5개 사업에 대해서다. LH공사는 이들 사업에서 발생한 적자에 대해 우선 다른 부문에서 발생한 이익으로 메꾸고 그래도 모자라면 정부의 국고 지원을 받도록 돼있다.

정부는 이 같은 구분회계를 수자원공사의 4대강 사업이나 가스공사·석유공사의 해외 유전·가스전 개발사업, 한국전력의 전기판매사업(전기료 수입)처럼 공기업의 의사와 무관하게 떠맡은 '강제 국책사업'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내부 결론이 나진 않았지만 이런 사업에 대해서는 최악의 경우 국고로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강제 국책사업을 모두 회계 분리할 경우, 이들 사업의 부채 규모가 5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9~2011년 3년간 LH공사가 26조원, 한국전력공사가 13조원, 수자원공사가 6조원의 채권을 발행해 빚을 늘렸다. 이 3곳의 부채만 45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가스공사 등 에너지 기업을 합치면 적어도 5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3%가 넘는 규모이다. 공기업 부채는 2011년 말 기준으로 463조5000억원으로 국가 부채(420조7000억원)를 넘어선 상태다.

부채 증가 방치한 공기업 CEO, 퇴출될 듯

부채 감축 노력이 부족하다고 평가되는 공기업 CEO(최고경영자)에 대해서는 기관장 평가 때 불이익을 주는 방안도 도입된다.

자산 2조원 이상인 41개 공기업은 매년 9월 재무개선방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공기업 부채 문제가 심각해지자 국회와 정부가 합의해 작년부터 도입한 제도다. 하지만 지금은 공기업들이 재무개선계획만 내놓으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정부는 그러나 앞으로 이 계획을 매년 평가해 그 결과를 공기업 기관 평가와 기관장 평가 때 반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렇게 하면 부채 감축 노력이 부진한 공기업의 직원 성과급이 깎이고, 해당 공기업 CEO는 퇴출될 수도 있다.

공기업 기관장 평가에서 부진한 평가를 받는 CEO의 경우 정부가 '해임 건의'를 할 수 있고, 실제로 이런 평가를 받아 퇴출된 공기업 기관장도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작년에 처음 공기업들이 재무개선방안을 제출했는데, 비용을 아끼려는 계획보다는 정부에 공공요금 인상을 요구하거나, 국고 지원을 더 해달라는 '읍소형' 요청만 많았다"며 "부채를 줄이도록 공기업을 압박할 수 있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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