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휘발유 가격이 17주 연속 하락했습니다. 그동안 고유가에 신음해온 서민들에게는 정말 반가운 소식입니다만, 기름값이 묘합니다. 지난 17주 동안(9월 14일~1월 10일) 휘발유 가격은 2020원대에서 1930원 수준으로 5% 정도 하락했습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기름값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국제 두바이유 가격은 6% 넘게 내렸는데 말이죠. 쉽게 말해 국제유가가 내린 만큼 국내 기름값은 낮아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기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급락하며 원유 수입 가격이 낮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기름값은 더 묘한 셈입니다.

국제 유가와 국내 기름값의 하락폭 차이가 1%포인트로 미미해 보이지만, 정유사와 주유소 이익으로 계산해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 차이가 1년 동안 계속된다고 가정하면 국내 정유사와 전국 주유소들이 한 해 거둬들이는 초과 이익은 1106억원에 달합니다(2011년 국내 휘발유 소비량 6957만배럴 기준). 소비자 주머니에서 나간 기름값이 정유사와 주유소의 배만 불리는 셈이지요.

정유사들도 할 말은 있습니다. 정유사들이 해외에서 원유를 들여와 정제해 국내에 판매되기까지 시차가 있기 때문에 두바이유 움직임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유사들은 싱가포르 시장에서 거래되는 국제 휘발유 현물 가격을 기준으로 마진을 붙여 매주 금요일 세전(稅前) 주유소 공급가격을 결정합니다. 여기에 세금과 주유소 마진이 합쳐지면 최종적으로 소비자 가격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국제 유가와 국내 휘발유 가격 사이에 길게는 2주 정도의 시차가 발생합니다.

해외에서 원유를 들여와 정제하고 국내에 판매하기까지는 길게 3달의 시간이 걸리지만, 정부는 2001년부터 원유 가격과 국내 유가의 시차를 더 줄이기 위해 원유 대신 국제 석유 제품 가격을 국내 휘발유 가격의 기준으로 삼도록 했습니다.

지경부의 석유산업 담당 공무원은 "원유보다 석유 제품 가격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국제 원유가와 국내 휘발유 가격의 시차를 줄일 수 있어 기준을 바꾸었지만, 시차가 짧은 것이 꼭 기름값 안정에 도움이 되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국내 기름값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원유 가격 외에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작용하기 때문이죠.

국제 유가가 오를 때는 국내 휘발유 가격이 큰 폭으로 가파르게 상승하지만, 국제 유가가 내릴 때에는 소비자들이 이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가격 인하 요인이 발생해도 국내 휘발유 가격은 천천히, 조금 내린다는 것이지요. 가격이 오르는 모습과 내리는 모습이 다르다고 해서 이를 '석유가격의 비대칭성'이라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비대칭성의 원인을 주유소 유통·판매 과정에서 찾습니다. 전국 주유소들은 정유사에서 공급받은 제품에 마진을 붙여 소비자에게 판매하는데, 기름값이 오르내릴 때 인근 주유소와 가격을 비교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겁니다. 기름값이 오르면 이를 바로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지만, 내릴 때는 인근 주유소와 비교하며 천천히 조금씩 낮춘다는 것이지요. 담당 공무원은 "이를 꼭 주유소 담합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마진을 더 남기려는 의도적인 가격 결정이라기보다 수익을 추구하는 판매자 입장에서 당연히 발생하는 경쟁이라는 겁니다.

이렇다 보니 그동안 기름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기름값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 '하방 경직성'이 나타나고 있지만 석유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명확한 증거나 정황은 잡기 어렵기 때문이죠.

지난 2011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말한 이후 정부는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석유가격TF(전담반)를 만들어 석 달 가까이 정유업계를 조사했습니다. 그러나 긴 조사 기간 나온 결론은 "특이 사항이 없다"였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휘발유 가격은 사상 최고가로 급등했습니다. 정부는 다시 정유사에 메스를 들이댔습니다. 지식경제부는 작년 4월 알뜰주유소 확대와 제5의 정유사 삼성토탈을 통해 정유사들의 담합을 근절하는 유가안정 종합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묘한 기름값'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국제 원유 움직임과 환율, 유통구조, 세금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하는 기름값 구조를 정부가 수박 겉핥기식으로 처리해 오히려 정유사들에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서민 경제에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기름값을 제대로 잡으려면 더 많은 전문가가 더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며 "이 때문에 새 정부에서는 현재의 지경부에서 에너지 부처를 반드시 독립시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