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사진)은 매출이 130조원이나 되는 SK그룹의 오너십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SK그룹은 지난해말 최태원 그룹회장이 맡았던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을 임명했습니다. 최 회장이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을 도맡아 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김 의장이 협의회 산하 6개 위원회를 조율하는 '집단지성'식 그룹 운영체제로 변신한다는 것입니다.
 
주요 의사결정이 총수 1인에 집중되지 않고 집단지도체제로 이뤄지는 방식입니다. 2000년대 초중반 SK가 소버린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며 내세운 '이사회 중심 경영'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셈입니다.

그러나 SK는 아직까지 김 의장을 제외하고 수펙스추구협의회와 산하 위원회 위원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고경영자(CEO) 인사 때문입니다. ‘따로 또 같이 3.0’ 체제에서는 협의회 산하 인재육성위원회에서 계열사에 CEO를 추천합니다. 각 계열사 이사회에서 수용여부를 결정하고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는 방식입니다.

현재 인재육성위원회는 정만원 SK그룹 부회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정 부회장과 기존 CEO들이 자신을 포함한 계열사 CEO의 유임이나 신규 선임을 결정하고 이를 계열사에 추천 형식으로 통보해야합니다.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SK그룹 관계자는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 인재육성위원회에서 이달 중순이나 월말쯤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인사를 발표하면 협의회 산하 6개 위원회 인선도 끝날 것”이라며 “2월부터는 새로운 체제가 본격적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SK그룹은 이 과정에서 최 회장의 영향력 행사를 배제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최 회장이 정말 오너십을 내려놨는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그룹의 지배구조를 바꾸겠다는 '따로 또 같이 3.0'이 아직까지는 상징적인 선언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최 회장이 임명했던 CEO들이 수펙스추구협의회 위원과 각종 위원회에 들어갑니다. 또 혼란을 피하기 위해 CEO 교체 등은 최소화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따로 또 같이 3.0은 최 회장이 경영상의 책임은 지지 않지만 지배력은 여전히 행사하는 구조입니다.
 
SK그룹은 지주회사인 SK(주)가 주력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 E&S, SKC, SK네트웍스, SK건설, SK바이오팜, SK임업, SK해운의 대주주로 있습니다. SK C&C는 SK(주)의 지분을 31.8% 갖고 지배하고 있는데 최 회장은 SK C&C의 지분 38%를 갖고 있습니다.
 
결국 최 회장은 수펙스추구협의회의 결정을 SK 계열사의 이사회를 통해서 승인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셈이지요.

물론 주요 계열사들은 국민연금이나 신한은행, 한국정책금융공사, 미래에셋자산운용 등이 5~30% 가까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사회 참여 등 경영 목적이 아닌 투자목적입니다. 결국 이사회 구성 등 실질적인 경영권 행사는 최 회장의 몫입니다.

이 때문에 SK그룹 안팎에서는 “각 계열사 이사회를 최 회장이 실질적으로 여전히 지배하면서 경영상 책임은 전문경영인에게 넘기고 오너로서의 권리는 유지하는 체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책임은 ‘따로’ 지고, 오너의 지배는 ‘같이’ 받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재계에서 ‘새로운 형태의 오너십’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발표시기가 미묘하다. 좀더 두고봐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SK그룹은 이 같은 의견에 대해 “최 회장이 오너로서 모든 권한을 내놓고 이사회도 사외이사 주도로 전문경영을 강화했다”며 “최 회장 부임이후 끊임없이 추구해온 그룹 의사결정 체제 변화의 일환”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SK그룹은 그동안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 등 ‘시련’을 겪으며 이사회 중심 경영, 투명경영, 지주회사 출범 등 지배구조를 변화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기대와 우려가 혼재해 있습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이지수 변호사는 “시기적으로 봤을 때 그게(따로 또 같이 3.0)이 과연 순수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전문경영인이 총수의 눈치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는 두고봐야 한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