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코리아는 지난 8일 밤 캐딜락 ATS를 출시하면서 각계 주요 인사를 초청했습니다. 캐딜락은 미국 자동차 중 최고급 브랜드로 미국 경제를 상징하는 제품이죠.

이 날 행사에는 성 김 주한 미국대사와 에드문두 후지타 주한 브라질대사, 비쉬누 프라카쉬 주한 인도대사 등 외교 사절과 에이미 잭슨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대표가 참석했습니다. 국내에선 정치인 1명(최원식 민주통합당 의원)을 비롯해 금융계와 자동차 업계 인사들이 참석했습니다.

자동차 업체들은 상징적인 차를 출시할 때면 이렇게 내·외 귀빈을 대거 초청합니다. 자동차가 소비자의 관심을 많이 받는 제품인데다,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기 때문입니다.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국적에 관계없이 신차 출시를 축하해주는 문화도 있습니다. 국내 기업인 현대·기아차도 에쿠스나 K9 같은 최고급 차를 발표할 때면 국내·외 지도층 인사들을 불러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GM코리아는 8일 캐딜락 ATS를 출시하며 VIP 초청 행사를 열었다.

하지만 이 날 캐딜락의 행사에서 찾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위 공무원들입니다. 지난해 열린 K9 출시 행사에 지식경제부 장관과 동반성장위원장 등 고위 공무원이 대거 참석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정부 측 인사는 실·국장급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물론 미국 차 출시 행사에 우리 공무원이 참석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걱정이 들었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틈만 나면 “한국에서 더 많은 미국 차가 보여야 한다”는 발언을 합니다. 물론 미국 유권자와 자동차 업계가 좋아할 만한 정치적인 발언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매우 불안한 느낌이 드는 말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미국 차가 더 보이지 않으면 어떤 조처를 할 것이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들리기도 하니까요.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사상 최대치인 126만여대의 차를 판매했습니다. 반면 국내에서 판매된 미국차(미국에서 생산해 수입된 차)는 지난해 1만대도 안 되는 9724대에 불과했습니다. 차이가 많이 납니다.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는데도, 한국에는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이 있어서 미국 차가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게 미국 자동차업계의 시각입니다. 사실 미국 차 업체들의 견제는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미국에서 연비가 과장됐다는 판정을 받으며 보상안을 내놨습니다. 그 이면에는 미국에서 많이 팔리는 현대·기아차에 대한 미국의 경계 심리가 작용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미국 언론들의 태도도 포드 등 다른 미국 회사들의 연비가 과장됐다는 결과가 나왔을 때보다 가혹했습니다.

캐딜락 ATS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 정부 관련부처의 장관이나 책임있는 공무원 한두사람은 주한미국대사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대표 등이 참석하는 이번 캐딜락 출시 행사에 나와 덕담 한마디 건넸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국내 자동차 회사들이 해외에서 공장을 짓거나 신차를 출시할 때 해당국의 고위 관료들이 함께 축하해 주는 것처럼 말이죠. “신차 출시를 축하합니다. 한국 시장에서 다양한 차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캐딜락 행사에 참석해 이런 메시지를 줬다면 그들에게 우리 정부의 공정 무역 의지를 알릴 수 있지 않았을까요?

수입차 업체들은 우리 정부가 국산차 위주의 정책을 수행한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입차 업체들은 각종 첨단 기능이 들어간 차를 들여오는데 관련 법규가 없어 애를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국산차가 그 기능을 개발하면 없던 법도 생기곤 합니다. 지난해에도 K9이 출시되기 직전 헤드업 디스플레이(HUD·주행 정보를 차 앞유리에 표시해주는 기능) 관련 법규가 생겼습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수입차 업체들이 요구한 법규입니다. 수입차 업체들이 실소를 금치 못했던 것은 보지 않은 분들도 상상하실 수 있겠죠.

국산차 행사에는 앞다퉈 참석하고 수입차 행사에는 나 몰라라 하는 우리 고위 공무원들. 다음에는 좀 더 센스있는 행동을 기대해 봅니다. 앞장서서 미국 차 홍보하시라고 드리는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한·미 통상 현안을 이해한다면, 그리고 자동차 수출이 우리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지 아신다면 정책을 홍보하고 오해를 불식시킬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시라는 말씀입니다. 누군가는 그러더군요. 정권 말기라 그렇다고.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국익에 관련된 일은 계속 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