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회계결산기 마감을 앞두고 시중은행들이 금융당국의 부실채권(고정이하여신·NPL) 목표비율을 맞추기 위해 부실채권을 쏟아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올 4분기에 시장에 매물로 나올 NPL 규모가 약 3조원으로 올 3분기까지 시중은행들이 매각한 3조9000억원의 77%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엔 경기 전망이 어두워 부실채권 매각 규모가 10조원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2일 금융당국과 은행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지난 9월 906억원(채권액 원금 기준)의 부실채권을 정리한 데 이어 이달 중 25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추가로 매각할 계획이다. 신한은행은 현재 27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 매각을 진행 중이고 국민은행도 1400억원 어치를 이달 중 처분할 예정이다.

중소기업은행##은 최근 50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매각했다.

은행권이 설립한 배드뱅크(부실채권 전문 투자업체)인 연합자산관리회사(유암코)의 이성규 사장은 “연말이 다가오면서 은행들이 부실채권 목표비율을 맞추기 위해 물건을 많이 내놓고 있다”며 “4분기 전체 매각시장 규모는 3조원 정도로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별로 부실채권 목표비율을 정해주고 연말까지 달성하라고 지도하고 있다. 목표비율은 은행에 따라 1.12~1.6%로 평균 1.3% 수준이다. 9월말 기준 국내은행의 평균 부실채권 비율(고정 이하 여신을 총 여신으로 나눈 비율)은 1.56%로 목표비율을 넘어서고 있는 상태다.


지금까지 부실채권은 건설·조선업종이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엔 철강업종이나 수출기업들의 부실채권이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장은 "원화가치가 오르면 수출 관련 기업들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내년쯤부터 수출 기업의 부실채권이 늘어날 수 있다"며 "부동산 경기 전망이 여전히 어둡기 때문에 부실채권 가격도 전반적으로 내려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은행권 부실채권 대부분은 주택·상가·공장 등 부동산을 담보로 한 것들이어서 부동산 경기 전망이 안 좋으면 가격이 내려간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100원짜리 물건을 60원에 사서 1년 후에 70원에 팔아왔는데, 투자금 회수 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길어지면 50원에 사야 수익률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실채권 시장은 전통적으로 매도자 우위 시장이었지만 최근 물량이 늘고 부동산 경기 전망이 악화되자 매수자 우위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은 "여러 은행이 부실채권 물량을 쏟아내니 매수자가 우위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며 "부실채권 목표비율을 맞추려면 서둘러 팔아야 하는데 무한정 싸게 팔 수도 없어서 고민"이라고 말했다.

내년에는 시장 상황이 악화해 부실채권 매각 규모가 10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이성규 사장은 "중소 조선업체는 수익성 있는 수주 물량이 거의 없어 내년에 법정관리가 늘어나고 관련 부실채권이 쏟아질 전망"이라며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담보인정비율(LTV·주택가격대비 대출 비율)이 높은 '요주의' 물량이 부실채권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환율 강세가 이어지면 수출기업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내년엔 부실채권이 늘어날 일만 있다"며 "내년 부실채권 매각 규모는 10조원 정도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은행들의 시각도 대체로 비슷하다. 또 다른 시중은행 부행장은 "올해 7000억~80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정리했는데 내년에는 경기 상황이 안 좋아 부실채권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