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韓美) 과학자들이 작은 플라스틱 칩 위에 인공 허파<사진>를 만들어 신약 효과를 알아보는 실험에 성공했다. 초소형 인공 장기(臟器)로 실험용 생쥐 같은 고가(高價)의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간이나 신장·허파를 칩 위에 구현한 연구는 여러 차례 있었으나, 실제로 질병을 일으키고 신약의 치료 효과를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하버드대 와이스생물공학연구소 잉버(Ingber) 교수와 서울대 의대 허동은 교수(당시 와이스연구소 연구원)는 지난 2010년 컴퓨터 칩 제조 기술을 이용해 이른바 '칩 위의 허파(lung on a chip)'를 제조했다. 메모리카드만 한 크기의 칩은 투명한 플라스틱 기판에 홈이 나있고 위에는 공기가 지나는 허파 세포가, 아래에는 혈액이 흐르는 모세혈관 세포가 코팅된 형태다. 두 세포 사이는 물질 이동이 가능한 분리막이 있다.
연구진은 이번에 인공 허파에 약물 실험을 했다. 암환자의 혈관에 암치료제 '인터루킨-2'를 주입하면 폐부종이란 치명적인 부작용이 자주 일어난다. 혈관에서 허파로 체액이 스며들어 호흡을 막기 때문이다. 인공 허파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여기에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개발 중인 폐부종 치료제를 주입하자 더는 체액이 허파세포 쪽으로 스며들지 않았다. 신약이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허 교수가 제1저자인 연구논문은 사이언스 자매지 '사이언스 중개의학' 최신호에 실렸다. 사이언스도 9일자 뉴스코너에 이 연구를 소개하며 "동물 실험을 거친 신약 중 10%만이 사람에게 효과를 보인다"며 "인공 장기를 잘 활용하면 실험 효과가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