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책

[1京원을 굴리는 사람들] IMF 비극 후 더 강해졌다, 외환금고 앞 최후의 90人

  • 김신영 기자

  • 입력 : 2012.11.06 03:08

    [4] 한국은행 외자운용원
    잠들지 않는 부서 - 한국 외환 보유액 353兆원
    안전한 고수익 목표로 투자… 전세계 대상 24시간 거래
    차라리 내 연봉을… - 한국 경제의 마지막 보루
    "실수는 국가 손해" 스트레스에 "손실, 내 연봉서 까먹었으면…"

    [1京원을 굴리는 사람들] IMF 비극 후 더 강해졌다, 외환금고 앞 최후의 90人
    "미국 선거 결과가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이 궁금합니다."(한국은행 외자운용원 직원)

    "친(親)기업 성향의 롬니가 되면 미국 증시에서 에너지와 건강보험 섹터의 주가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면 오바마가 이기면 부자 증세 정책으로 증시는 위축되고 채권시장이 그 반사 이익을 일시적으로 누릴 겁니다."(글로벌 투자은행 전문가)

    "연준 의장 바뀔 일도 있을까요?"

    "롬니가 되면 그럴 수 있습니다. 래리 서머스(하버드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재닛 옐른(연준 부의장), 그레고리 맨큐(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가능성이 있죠."

    미국 대선을 4일 앞둔 2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별관 3층. 외자운용원 회의실에선 직원 13명이 스피커에서 나오는 미국 정치 전문가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미국 대선의 결과가 세계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전화 회의였다. 상대방은 뉴욕에 있는 글로벌 투자은행 A사의 정치 담당 이사이자 워싱턴 정계(政界)에서 로비스트로 잔뼈가 굵은 B씨.

    한은 외자운용원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3234억6000만달러(10월 말 기준)를 굴리는 사령부 격인 곳으로 그동안 언론사 취재진의 접근이 제한돼 온 곳이다.

    2개 층을 쓰는 사무실 풍경은 민간 증권사 운용 부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투자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하는 모니터가 곳곳에 놓여 있고, 직원들은 투자 정보와 전략을 적은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바빠 보였다. 화상 회의실에선 서울, 홍콩, 싱가포르를 연결하는 화상 통화를 통해 한 외국계 투자은행이 회사채 시장의 투자 전망을 설명하는, 또 다른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한국은행 외자운용원 직원들이 5일 한은 별관 3층에 있는 화상 회의실에서 싱가포르에 있는 한 글로벌 투자은행 전문가와 미 대선 이후의 채권과 주식 투자 전략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3234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관리하는 외자운용원은 한은에서 유일하게 24시간 돌아가는 부서다. /허영한 기자
    한국은행 외자운용원 직원들이 5일 한은 별관 3층에 있는 화상 회의실에서 싱가포르에 있는 한 글로벌 투자은행 전문가와 미 대선 이후의 채권과 주식 투자 전략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3234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관리하는 외자운용원은 한은에서 유일하게 24시간 돌아가는 부서다. /허영한 기자
    영국 런던의 금융시장이 열리기 직전인 오후 3시가 되자 투자운용부 직원들이 팀별 회의를 시작했다. 정부채, 회사채, 자산유동화채 등 상품별로 팀이 나뉘어 있다. 회의에서 정해진 방향에 따라 야근자들이 글로벌 투자은행에 직접 전화를 걸어 가격을 물어보고 국채, 회사채 등을 사고판다. 오후 4시에 유럽 시장이 시작하고, 오후 10시엔 미국 시장이 열린다. 매일 밤 수십 건의 거래가 체결된다. 한은에서 유일하게 24시간 돌아가는 부서가 바로 투자운용부다.

    외자운용원 직원은 모두 90명. 외부에서 스카우트한 경력직도 17명에 달해 순혈주의 전통이 강한 한은에선 '별종 조직'이라고 할 만하다. 과거 증권사에서 일했던 한 직원은 "외환보유액은 한국 경제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는 돈이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훨씬 크다. 차라리 내 연봉을 까먹는 것이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정 운용전략팀장은 "외환보유액 운용이 전보다 훨씬 복잡해지고 거래 속도도 빨라졌다. 금융위기 전 약 30년 동안 미국 10년 만기 국채만 사놓으면 웬만큼 수익이 났지만, 금융위기 이후엔 선진국들이 초저금리 정책을 펴 국채만 사놓으면 외환보유액의 운용 수익이 계속 줄어들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전하면서도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투자 상품을 계속 새로 발굴하지 않으면 보유액이 줄어들 위험까지 있다는 뜻이다.

    한은은 올해 들어 금(金) 보유량을 54t에서 70t(약 30억달러어치)으로 크게 늘렸는데, 이 금은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금 창고에 보관돼 있다. 서봉국 운용기획팀장은 "금은 대여해 이자 수익을 낼 수도 있고 담보로 차입을 하기도 쉬운 상품"이라며 "영국의 금 거래 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크기 때문에 영란은행에 맡겼다"고 말했다.

    추흥식 외자운용원장은 "한국은 외환보유액이 바닥났을 때의 비극을 직접 체험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라며 "외환위기같이 뼈아픈 일들을 겪으면서 외환보유액의 유동성과 안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언론 최초 공개 외자운용원]

    "투자 방향 노출될라" 철통 보안… 총재 방에도 없는 지문인식기까지

    2일 언론사에 내부가 처음으로 공개된 외자운용원은 한국은행에서도 가장 보안이 철저한 곳으로 통한다.

    총재 사무실에도 없는 지문 인식기까지 설치돼 있다. 서봉국 운용기획팀장은 "투자 방향이 노출될 경우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보유액의 37%는 세계 각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에, 20%는 정부가 보증하는 채권에, 17%는 MBS(주택저당증권) 같은 자산유동화채권에 투자돼 있다.

    외환보유액의 2001년 이후 연평균 수익률은 '주요 국채 수익률(미 국채 4.03%)과 바클레이스 국제채권지수 수익률(6.63%)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수익률은 공개하지 않는다. 운용 담당자들이 수익률에 대한 부담 때문에 단기적인 성과에 치중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 기사보내기
    • facebook
    • twitter
    • google
    • e-mail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