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요즘 청년들은 피곤하다. 입시에 성공해 대학을 졸업하고도 앞날이 깜깜하다. 성실히 대학 교육 과정을 마쳤지만, 높은 취업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스팩을 쌓아야 한다. 간신히 취업의 문을 통과해도 산 넘어 산이다. 부모의 도움 없이는 결혼 비용조차 대기 어렵다. 직장에서 성실히 일해도 월급만으로 내 집 장만도 쉽지 않다.

이러한 피로는 한창 생산 현장에 있는 근로자와 퇴직을 앞둔 중장년층에도 마찬가지다. 자녀 교육과 노후 계획은 경제 활동 인구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하지만 뉴스에서 나오는 일부 재벌가의 삶은 다른 나라 이야기다. 재벌 총수 자녀는 젊은 나이에 고속 승진해 승승장구하고, 상속과 부의 대물림을 통한 불로소득은 이들의 재산을 점점 불리고 있다. 국민 소득 2만달러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지만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대선 정국에 등장한 ‘경제 민주화’란 말이 많은 사람을 사로잡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 단어에는 요즘 많은 사람이 느끼는 피로감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가 함축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11일 열린 한국경제연구원의 토론회는 실망스러웠다.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경제민주화 제대로 알기’ 토론회에서 발표자들은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학문적 기반이 없는 단어이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현실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려면 대선 주자들이) 경제민주화의 의미와 본질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며 이날 토론회를 개최한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많은 국민이 경제적 피로를 호소하는 상황에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이 과연 경제민주화의 학문적 의미와 본질인지 의문스럽다. 이 토론회의 발표자들은 '경제민주화'란 말에서 느끼는 것이 전혀 없는 부류인듯 보였다.

일각에선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유관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이 이런 토론회를 활용해 선거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아니냐고 지적한다.

선거란 주기적으로 사회의 문제점을 풀고 갈등을 해소해 주권자인 국민들이 더 잘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가 이번 선거전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자동차, 통신, 정유 등 주요 산업계의 독과점 구조와 이로 인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종사자의 소득격차, 급증하는 청년 실업과 치솟는 사교육비 등 이 시대의 경제문제가 너무나 심각하다는 것을 다수의 국민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경제민주화의 학문적 기반이나 사상적 기원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알 필요도 없다. 지금 필요한 연구는 경제민주화란 단어의 학문적 기원보다는 다수의 국민이 이번 선거에서 왜 경제민주화를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삼게 됐는지 냉정하게 따져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