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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의 물질은 없다" 스승의 고백에 물리학계 발칵

  • 이길성 기자

  • 입력 : 2012.10.09 03:17

    흐르는 고체 '超고체' 존재 놓고 스승과 제자 3인 공방
    한때는 노벨상도 거론됐지만 실험 장비 고안했던 리피 교수 "초고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동 연구했던 스승 챈 교수 최근 "있는 줄 알았는데 없다"
    제자 김은성 KAIST교수 "분명히 존재… 곧 반박 실험"

    노벨상감으로 일컬어지는 새로운 물리 현상의 발견 여부를 놓고 한·미 물리학자 3명 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논쟁을 촉발한 이슈는 고체·기체·액체도 아닌 초고체(超固體·supersolid)라는 제4의 물질. 더구나 논쟁 당사자들은 스승과 제자, 그 제자의 제자라는 인연으로 얽혀 있어 논쟁의 향방에 세계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논쟁의 주역 중 한 명은 김은성 KAIST 교수(물리학부)다.

    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스 6일자는 '초고체, 그 발견자에 의해 격추당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모제스 챈(Chan) 교수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챈 교수는 지난 2004년 당시 자신의 제자이자 박사과정이던 김은성 교수와 공동으로 "고체헬륨을 절대영도(영하 273도)에 가깝게 냉각시켰더니 어떤 저항도 점성도 없는 유체, 즉 초유체(超流體·superfluid)처럼 움직인다"는 실험 결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초유체 현상은 극저온의 액체와 기체에서 관찰되는 현상으로, 이를 발견한 과학자 4명이 노벨상을 받았을 만큼 획기적인 현상이었다. 그런데 이 현상이 고체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은 물리학계로서 큰 충격이었다. 두 사람은 새로 발견된 물질이 고체이면서 초유체처럼 흐른다고 해서 초고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 주역이었던 챈 교수가 8년 만에 "당시 실험과 해석에 오류가 있었다"며 초고체의 존재를 부정하는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챈 교수와 김은성 교수가 진행했던 실험은 작은 원통에 고체헬륨을 넣고 양방향으로 회전시켜 그 속도를 재는 것이었다. 시계방향으로 돌던 원통을 갑자기 반대방향으로 돌리면 그 안의 고체헬륨이 가하는 마찰력 때문에 회전 속도가 늦춰지기 마련. 온도를 영하 273도 가까이 낮추자 원통은 훨씬 빠른 속도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관찰됐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려면 원통 안 고체헬륨의 질량이 줄어들어야 하지만 고체헬륨이 어디로 빠져나갈 틈은 없었다. 두 사람은 고체헬륨 일부가 점성과 마찰이 없어지는 초유체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당시 사이언스는 이 결과를 대대적으로 발표했고 뉴욕타임스도 이를 주요 기사로 다룰 정도였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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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 물리관념에 도전하는 두 사람의 발견에 대해 다른 학자들은 지속적으로 의문과 반론을 제기했다. 가장 강력한 반론은 원통의 운동을 방해하는 고체헬륨의 탄성이 극저온에서는 사라지기 때문에 회전이 빨라진 것일 뿐, 고체헬륨이 초유체로 변한 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이런 반론을 편 이는 코넬대 존 리피 교수였다. 공교롭게도 그는 챈 교수의 스승이자 2004년 실험에 사용된 장치를 최초로 고안한 사람이었다. 2010년 그가 국제저널 '피지컬리뷰 레터스'에 반박 논문을 내자 초고체에 대한 회의론이 더욱 고개를 들었다.

    학맥상 '조부(祖父)'인 리피 교수가 "초고체는 없다"고 주장하자, 김은성 교수는 바로 반박에 나섰다. 2004년과는 다른 실험을 통해 초고체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데이터를 사이언스에 발표한 것이다. 제자인 김 교수가 초고체 방어에 나서자 챈 교수는 김 교수를 가리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며 칭찬할 정도였다. 김 교수는 이 공로로 국제 물리·응용물리학협회 선정 '젊은 과학자상', 교육과학기술부 선정 과학기술자상을 잇따라 수상했고 '올해의 KAIST인'에도 선정됐다.

    일단락된 듯했던 초고체 논쟁은 그러나 발견 당사자인 챈 교수의 고백으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사이언스에 따르면, 챈 교수는 "내가 잘못 인도한 탓에 다른 과학자들이 10여년을 황야에서 헤맸다"며 "그걸 인정하는 것이 스스로 내 관에 못을 박는 것이라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로서는 초고체 연구의 동반자이자 학문의 아버지를 잃어버린 처지가 됐다. 하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초고체 존재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챈 교수의 이번 실험에 몇 가지 오류가 있다"며 "2개월 이내에 반박하는 실험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4년 첫 실험 이후 이를 뒷받침하는 많은 실험이 이뤄졌고 이들 대부분은 초고체 말고는 다른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며 "챈 교수가 스스로 부정했다고 해서 초고체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초유체(超流體·superfluid)
    ☞초고체(超固體·supersolid)

    절대영도(영하 273.15도)에 가까운 극저온에서는 기체나 액체는 점성과 마찰력이 사라진다. 이 상태가 초유체다. 손에 쥔 모래가 스르르 빠져나가듯 초유체도 가만히 놔두면 벽을 타고 위로 흐르거나 사방으로 흩어진다. 초유체는 점성이 없어 용기에 담아 아무리 움직여도 영향을 안 받는다. 딱딱한 고체가 이렇게 변한 것이 초고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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