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눈 질끈… 실험동물의 고통 읽는 법 찾았다

조선일보
  • 이영완 기자
    입력 2012.09.11 03:14

    [英·캐나다 연구진 척도 개발]
    실험용 쥐와 토끼에서 5가지 아픈 표정 특징 찾아
    사람처럼 코와 볼 부풀리고 수염을 얼굴 앞뒤 쪽으로 당겨
    윤리적 동물 실험에 도움될 듯

    동물도 사람처럼 표정으로 고통을 나타낼 수 있을까. 실험실에서 늘 동물과 만나는 생명과학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일이다. 동물의 표정을 읽을 수 있으면 지금 하는 실험이 얼마나 힘든지 금방 알아내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와 영국 과학자들은 실험실의 터줏대감인 생쥐와 토끼가 고통을 느낄 때 짓는 표정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과학자와 실험동물의 마음을 이어줄 작은 창이 열린 것이다.

    고통에 눈 찡그리는 토끼

    영국 뉴캐슬대의 매튜 리치(Leach) 교수팀은 지난 7일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실험용 토끼가 고통에 반응하는 표정을 읽는 척도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실험용 토끼를 구별하기 위해 귀에 식별기호를 문신으로 새겼다. 스웨덴 정부는 문신이 토끼에게 고통을 준다는 논란이 일자 리치 교수에게 사실 확인을 의뢰했다.

    뉴질랜드 과학자가 실험용 토끼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최근 실험 동물이 느끼는 고통의 정도를 동물의 표정으로 알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Understanding Animal Research 제공

    과학자들은 보통 실험동물의 고통을 사후행동으로 판단한다. 실험 뒤에 체중이나 음식·물 섭취량이 줄거나, 몸을 뒤집고 빙빙 도는 등의 특이한 행동을 관찰하는 식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주관적 평가이지,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정량적으로 측정할 방법은 없었다.

    연구진은 토끼에게서 다섯 가지 특징적인 고통 표정을 찾았다. 세 가지는 사람과 비슷하게 눈을 질끈 감고, 코와 볼을 부풀리는 표정이었다. 토끼에게서만 나타나는 두 가지 표정은 귀를 뒤로 모으고, 좌우로 뻗어 있던 수염을 얼굴 앞뒤 쪽으로 당기는 것이었다. 이를 기준으로 고통의 정도를 고통이 없는 '0'에서 고통이 심한 '2'까지 수치로 나타냈다.

    문신을 할 때 가능한 최고의 고통스러운 표정 점수는 문신이 이뤄지는 귀를 제외한 4가지 표정당 2씩 총 8이다. 분석 결과 마취제 없이 문신을 할 때 토끼의 고통 표정 점수는 평균 4였다. 문신을 하기 전이나 부분 마취를 하고 문신을 했을 때 고통점수는 2보다 약간 모자랐다.

    리치 교수는 "고통 점수 2점의 차이는 아주 중요한 결과"라고 말했다. 귀가 길어 편하다고 아무 생각 없이 하던 문신이 토끼에겐 엄청난 고통이었음이 사실로 나타난 것이다. 리치 교수는 "실험동물의 고통을 줄일 유일한 방법은 고통을 알아채고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해하는 것"이라며 "표정으로 고통을 측정하는 방법은 기존 행동 판단법보다 많은 경우 더 빠르고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실험용 생쥐에서 고통 표정 먼저 찾아

    실험동물의 고통 표정 연구는 캐나다 맥길대의 제프리 모길(Mogil) 교수 연구진이 지난 2010년 국제저널 '네이처 메서드(Nature Methods)'에 실험용 생쥐의 고통 표정을 찾아냈다고 발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모길 교수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에서 인간의 고통을 연구한 심리학자인 케니스 크레이그(Craig) 교수와 함께 생쥐에게 고통을 유발하는 화학물질을 주사하고 30분간 표정을 촬영해 분석했다. 연구진은 생쥐에게서 다섯 가지 특징적인 고통 표정을 찾고 그 정도를 0~2로 표시했다.

    당시 크레이그 교수는 "인간을 빼고 동물에서 고통을 나타내는 표정을 확인한 첫 연구"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또 유전자 변형으로 편두통에 걸린 생쥐가 수치 '2'의 고통 표정을 나타내는 것을 보고 두통약을 처방했다. 생쥐의 표정은 이후 정상인 '0' 상태로 돌아왔다. 실험동물의 고통과 치료결과를 모두 표정으로 확인한 것.

    이번 뉴케슬대 연구진은 생쥐의 고통 표정이 토끼에서도 똑같이 나타남을 입증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실험용 원숭이와 양·말·돼지 같은 가축으로 연구를 확대할 계획이다.

    실험동물의 윤리적 관리에 도움 줄 듯

    30~40년 전만 해도 윤리적 동물실험은 책에나 있는 말이었다. 실험시간을 줄이기 위해 마취제 없이 여러 마리의 동물을 한꺼번에 실험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자 미국과 유럽에서는 극단적 동물보호주의자들이 실험실을 습격해 연구자를 공격하고 실험동물을 우리에서 풀어주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후 미국에서는 동물실험을 하는 연구자라면 반드시 민간단체인 국제실험동물 관리평가 인증협회(AAALAC)의 인터넷 강좌를 듣고 시험을 치르도록 했다. 연구자는 80점 이상의 시험 합격증을 받고 나서야 동물실험 계획서를 학교나 연구소에 낼 수 있다. 동물실험 전문기관인 =90" name=focus_link>안전성평가연구소의 차신우 박사는 "국내에서는 2008년부터 동물보호법이 시행되면서 기관동물윤리위원회가 AAALAC 기준에 맞춰 하는 교육을 6시간 이수해야 동물실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표정으로 고통을 측정할 수 있다면 실험동물을 윤리적으로 다루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핫뉴스 BEST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