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 빅3, 남들은 손 떼는 핵에너지 개발에 베팅

조선일보
  • 이길성 기자
    입력 2012.09.04 03:17

    빌 게이츠·리처드 브랜슨 - 폐기물 없애고 새 연료도 얻는 고속증식로 기술 개발 추진
    제프 베조스 - "지상에 인공 태양 만들 것" 핵융합 사업에 거액 투자
    전문가들 지적 - "고속증식로, 안전성 확보 관건… 핵융합도 경제성 떨어져"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최근 한국과 원전 핵폐기물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차세대 원자로를 함께 개발하기로 약속했다〈본지 2012년 8월 20일자 A1면〉. 그가 2010년 세운 '테라파워(TerraPower)'사는 '진행파 원자로(TWR·Traveling-Wave Reactor)'라는 차세대 원자력 기술을 개발 중인데, 여기에 한국도 참여키로 한 것.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3명의 억만장자가 동시에 핵에너지 분야에 뛰어들었다. 빌 게이츠에 이어 '창조 경영자'로 유명한 영국 버진그룹(Virgin Group) 총수 리처드 브랜슨도 지난 7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일체형 고속증식로(Integral Fast Breeder)야말로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라며 미 정부 차원의 연구를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 아마존을 만든 제프 베조스는 "지상에 인공 태양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각오로 핵융합 사업에 직접 투자했다.

    (왼쪽부터)빌 게이츠, 리처드 브랜슨, 제프 베조스.
    세 억만장자의 재산을 합치면 836억달러(약 95조원)에 이른다. 이들의 행보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각국 정부가 원자력에 대한 투자를 잇달아 축소·동결하는 것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상식을 깨는 창의성과 역발상으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쌓은 이들이 베팅하는 핵에너지 기술은 과연 어떤 것들일까?

    게이츠·브랜슨 "고속증식로가 대안"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원자로인 경수로(輕水爐)는 지나친 핵분열을 막기 위해 물(냉각재)로 중성자의 반응속도를 줄인다. 이런 저속 중성자는 우라늄235만 핵분열시킨다. 우라늄235 성분이 차지하는 비율은 천연 상태 우라늄의 0.7%, 핵연료로 쓰이는 농축우라늄의 4%밖에 안 된다. 현재 사용하는 원자로는 이를 제외한 나머지 96%를 차지하는 우라늄238을 그냥 버리는 것이다. 바로 사용후핵연료다.

    브랜슨은 폐기물을 없애고 새로운 연료도 만드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기술로 고속증식로(高速增殖爐)를 선택했다. 경수로와 달리 속도가 줄지 않은 고속 중성자를 쏘면 우라늄238을 핵분열 물질인 플루토늄으로 바꿀 수 있다. 원리는 이렇다. 원자로의 중심(노심)에 농축우라늄을 놓고 그 둘레에 사용후핵연료(우라늄238)를 빙 둘러놓는다. 핵분열을 시작하면 노심에서 나온 고속 중성자가 주위의 우라늄238을 플루토늄으로 바꾼다. 이 플루토늄은 다시 핵분열을 하는 연료가 된다.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 없이 단번에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어서 '일체형'이고, 고속의 중성자를 사용해 플루토늄을 늘릴 수 있어 '고속증식로'이다. 중성자를 고속으로 유지하기 위해 물보다 감속효과가 적은 액체 금속을 냉각재로 사용한다.

    빌 게이츠의 TWR은 이론상 60년간 연료 교체가 필요없는 고속증식로다. 사용후핵연료(우라늄238)를 긴 막대형태로 만들고 그 한쪽 끝에 농축우라늄(우라늄235)을 붙인다. 농축우라늄에 중성자를 쏴 핵분열을 일으킨다. 이 부분이 촛불을 일으키는 성냥 역할을 하는 셈. 바로 이웃한 우라늄238이 플루토늄으로 바뀌고 핵분열을 하면 그 옆의 우라늄238이 다시 플루토늄으로 바뀐다. 이런 연쇄반응이 1년에 1㎝ 속도로 천천히 진행돼 60년이나 원자로를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제프 베조스는 핵융합에 거액 투자

    두 기술은 핵이 분열할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한다. 반면 제프 베조스는 핵융합을 택했다. 초고온 상태에서 수소 원자핵들이 융합해 그보다 무거운 헬륨 원자핵으로 바뀔 때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를 발전에 사용하는 것이다. 태양이 에너지를 내는 원리와 같다고 해서 핵융합로는 '인공 태양'이라고 불린다.

    핵융합의 연료가 되는 중수소(중성자 2개)와 삼중수소(중성자 3개) 혼합연료 1g은 시간당 10만㎾(킬로와트·1㎾는 1000와트)의 전기를 낸다. 300g의 삼중수소와 200g의 중수소로 고리 원자력 발전소 같은 50만㎾급 발전소 4기를 하루 동안 돌릴 수 있다. 중수소는 바다에 지천으로 있고, 삼중수소도 매장량이 많은 리튬으로 만들 수 있다. 베조스는 지난해 캐나다의 '제너럴 퓨전(General Fusion)'이라는 회사에 1950만달러(약 220억원)를 투자했다. 이 회사는 앞으로 10년 내에 핵융합을 상용화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원석 박사는 "고속증식로와 TWR에서 냉각재로 사용되는 액체 나트륨은 물과 만나면 격렬한 폭발을 일으킨다"며 "안전성을 확보하는 기술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박 박사는 또 "TWR처럼 수십 년간 원자로를 정지시키지 않고 가동하려면 수십 년 중성자를 쬐어도 버틸 수 있는 배관 재료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핵융합도 현재로선 바다에서 중수소를 싸게 뽑아낼 기술이 충분치 않다. 지금은 일반 수소를 전기분해해 만드는데, 가격이 1g에 10달러나 된다. 과학자들이 "일반 수소가 생수라면, 중수소는 고급 양주"라고 말할 만큼 현재로선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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