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이 방탄복 관련 특수섬유인 아라미드의 생산·판매 금지 소송에서 다국적 화학업체인 듀폰에 패소했다.

미국 버지니아 지방법원은 30일(현지시각) 코오롱이 듀폰의 ‘케블라’ 섬유 기술을 무단 도용해 아라미드 섬유인 헤라크론을 만들었다며, 코오롱에 대해 향후 20년간 아라미드의 생산과 판매, 영업행위를 금지한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내려진 1조원대의 배상 판결에 이어 아라미드의 판매 금지 명령까지 나오게 되면서 코오롱은 재무와 성장성 모두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지난해 1조원대 배상 명령 이어 또 패소… 코오롱 “집행정지 신청할 것”

아라미드 섬유를 둘러싼 코오롱과 듀폰의 소송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듀폰은 코오롱이 자사의 방탄용 특수섬유 제조기술을 도용했다며 버지니아 지방법원에 특허권 침해에 대한 배상·아라미드의 생산과 판매 금지·관련 변호사 비용 청구 등 3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버지니아 법원은 특허권 침해 부분을 인정해 지난해 11월 코오롱에 9억1900만달러(약 1조1500억원)를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이어 전날에는 아라미드의 생산·판매 금지조치까지 내린 것이다.

코오롱 측은 아라미드 생산·판매 금지 명령에 대해 즉각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코오롱 관계자는 “버지니아 법원의 판결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이번 판매 금지 조치는 특수섬유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 부당한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코오롱의 판매금지 명령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질 지는 미지수다. 만약 미국 법원이 코오롱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할 경우 코오롱은 향후 1~2달 안에 아라미드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

◆ 코오롱, 변호사 비용 판결 나오는대로 항소 계획

듀폰이 코오롱에 대해 제기한 3건의 소송 중 이제 남은 하나는 변호사 비용 청구에 대한 건이다.

소송의 대상이 된 변호사 관련 비용은 약 50억원대 안팎으로 1조원대의 특허권 침해 배상금액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그러나 앞서 진행된 2건의 소송에서 모두 코오롱이 패소해 변호사 비용 건 역시 듀폰이 이길 가능성이 높다. 코오롱은 변호사 비용에 대한 판결이 나오는대로 미국 내 상위법원에 즉각 항소할 계획이다.

코오롱 측은 지방법원에서의 판결이 불공정하게 이뤄졌다며, 항소심에서는 지방법원의 판결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했다. 코오롱 관계자는 “버지니아 지방법원의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충분한 법률적 근거를 갖고 있다”며 “설령 미국 법원이 듀폰의 주장을 인정한다 해도 1조원이 넘는 배상금액과 아라미드 판매금지는 터무니없이 가혹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 코오롱, 배상금 조달은 어떻게… 성장 타격도 불가피

전문가들은 최종 항소심까지 1조원대의 배상금 규모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증권의 김동건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항소를 거칠수록 배상금 규모는 다소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배상금 규모가 줄어도 코오롱의 재무상태를 감안하면 배상금 지급 명령 자체가 기각되지 않는 한 타격이 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30일 현재 코오롱의 시가총액은 약 2635억원이다. 듀폰 측에 지급해야 할 배상금이 회사 전체 규모의 5배에 이르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결국 차입금 조달이나 자산 매각 등을 통해 배상금을 마련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코오롱 측은 배상금 마련 방법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아라미드의 생산·판매 금지 명령으로 성장성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코오롱의 전체 매출에서 아라미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2% 안팎에 불과하지만, 코오롱은 아라미드를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보고 장기간 많은 금액을 투자해 왔다. 게다가 코오롱은 최근 경기불황과 전방산업 부진 등의 영향으로 주력 사업이었던 패션과 필름 부문 모두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소송이 길어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변호사 비용도 코오롱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