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에 서울대 교수된 男 "경비가 핀잔을…"

조선일보
  • 이길성 기자
    입력 2012.08.31 03:14

    [한국을 먹여 살릴 과학자] 서울대 권성훈 교수
    개인맞춤형 의학에 필수인 초고속진단·분석기술 연구
    컬러 코드 입자 개발… 단 한 번의 혈액검사로 수만개의 검사 끝낼수 있어

    올 7월 서울대는 노벨상을 목표로 한 '창의 선도 연구자' 8명을 선정했다. 간섭받지 않고 쓸 수 있는 연구비를 한해 최대 4억원까지 주고 강의 부담도 덜어주는 등 파격적으로 지원해준다. 탄소 나노 튜브 연구의 대가 임지순 교수(물리·천문학부), 돼지 장기 이식으로 당뇨병 정복에 도전하는 박성회 교수(의학), 국가 과학자 김빛내리(생명과학부) 교수, 세계 100대 화학자에 뽑힌 현택환(화학) 교수 등 스타 과학자들이 선정됐다.

    8명 중 7명이 노벨상 수상이 가능한 물리·화학과 의·약학 교수들이었지만 한 명은 공대 교수였다. 선정자 중 최연소인 권성훈(38) 교수(전기정보공학부)다. 서른두 살이던 2006년 서울대에 부임한 그는 새벽까지 연구하고 귀가하는 일이 잦았다. 당시 그를 대학원생으로 오해한 수위 아저씨가 "일찍 좀 다니라"며 핀잔을 주기도 여러 번. 그랬던 그가 불과 6년 만에 자신의 '은사급' 대가들과 함께 서울대의 간판 연구자가 된 것이다.

    권 교수의 연구 주제는 개인 맞춤형 의학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초고속 진단과 신약 분석 기술. 개개인의 유전 정보와 질병 특성을 모조리 분석하면 각자에게 꼭 맞는 맞춤약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각 병원과 제약사가 일일이 분석 작업을 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신약 후보 물질 하나를 가려내는 데도 3~4개월씩 걸리는 지금의 기술로는 감당할 수가 없다.

    권 교수는 복잡한 모든 분석 과정을 단 하루에 끝내주는 '마법의 가루'를 만들어 난제를 해결했다. 이 입자는 플라스틱을 머리카락 폭보다 작은 육각형 형태로 만들어 그 중심에 8가지 색깔로 이뤄진 고유한 무늬를 새긴 것이다. 편의점 선반에 쌓인 상품이 고유의 바코드를 가지고 있듯 권 교수가 만든 입자들도 색색의 고유 코드를 갖는다. 권 교수는 이 입자를 '컬러 코드 입자'라고 이름 지었다.

    서울대 권성훈 교수가 테이블 위의 마그네틱 잉크와 양손에 든 컬러 코드 입자를 보여주고 있다. 권 교수는 “자그마한 컬러 코드 입자 한 병의 활용 가치는 적어도 승용차 한 대, 많게는 아파트 한 채와 맞먹는다”고 말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컬러 코드의 원료는 자석을 갖다대면 카멜레온처럼 색깔이 변하는 마그네틱 잉크. 나노(1나노는 10억분 1m) 크기의 금속 입자로 이뤄진 마그네틱 잉크는 무한대의 색채와 코드를 만들어낸다. 컬러 코드 입자에 서로 다른 단백질과 항체, DNA를 붙여놓으면 단 한 번의 혈액 검사로 수백~수만개의 항원·항체 반응, DNA 검사를 끝낼 수 있다. 컬러 코드만 읽으면 어떤 성분들이 서로 반응을 일으켰는지 단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컬러 코드 입자를 자석으로 회전시켜 혈액반응 속도를 10배나 높일 수도 있다. 이런 탁월한 특성 덕분에 분필 토막만한 병에 든 컬러 코드 입자들은 수천만원~수억원이 드는 검사비용을 아낄 수 있다.

    권 교수는 2008년부터 이 기술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네이처 머티리얼' 같은 저명한 국제 저널의 표지를 장식한 논문도 9편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꿈꾸고 서울대 전기공학부에 입학한 권 교수는 3학년 때 40일간 입원할 만큼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때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전자·전기 기술이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후일 대학원에서 의료 장비를 만드는 의용(醫用)공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미국 UC버클리 박사 과정에선 바이오 미세 기계 기술을,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에선 나노 기술을 배워 융합형 연구를 할 수 있는 내공을 쌓았다.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된 비결을 묻자 그는 "박사 과정 때 일요일, 추수감사절처럼 미국 학생들이 다 쉬는 휴일에도 공부하는 등 남들이 5년반에 걸쳐 할 일을 3년반에 몰아서 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고교 때는 수학문제를 풀 때 스스로 답을 알아내기 전엔 절대 해답풀이를 안 봤다고 한다. 고3 수능 전날까지도 풀리지 않은 문제 3~4개만 어쩔 수 없이 풀이를 찾아볼 정도로 지독했다. 그는 "독자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이 연구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40대 이하 유망한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젊은과학자상(2012년), 1만개의 정부 연구 과제 중 상위 5개에 주어지는 최우수연구성과상, 차세대선도과학자(이상 2011년)를 수상했다. 그가 개발 중인 기술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PwC에 따르면 개인 맞춤형 진단 시장 규모는 420억달러(약 62조원)로 추산된다.

    ☞마그네틱 잉크(magnetic ink)

    자석을 갖다대면 시시각각 색깔이 바뀌는 물질. 자기장의 변화에 따라 결정구조가 달라지는 나노 입자를 사용해 만든다. 일반 염료로는 흉내 내기 힘든 영롱한 빛깔을 내기 때문에 홀로그램, 지폐 위조 방지에도 사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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