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A씨는 카드론, 현금서비스, 저축은행 등 여러 금융회사에서 1억5000만원 정도의 대출을 받고 나서 채무관리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대출별로 각각 결제일이 달라 깜박하면 연체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매일 가시밭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 A씨는 여러 곳의 대출을 하나로 합칠 수 있는 채무통합대출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B회사에 연락했다. A씨는 모든 채무를 갚아줄테니 그 다음에 여러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상환하면 된다는 B회사의 설명에 솔깃해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러나 B회사가 요구한 수수료는 무려 2000만원이었다. A씨는 공무원 신분과 채무가 없어져 깨끗한 신용정보를 바탕으로 4곳의 은행에서 5000만원씩 총 2억원의 대출을 받은 후 울며겨자먹기식으로 B회사에 대출원금과 수수료로 총 1억7000만원을 지불했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A씨의 사례 처럼 다중채무자의 빚을 오히려 늘리고 은행대출의 부실을 초래하는 불법 채무통합대출이 최근 등장해 서민들을 울리고 있다.
채무통합대출(대환대출·금융기관에서 대출을 얻어 다른 금융기관의 대출금을 갚는 것)은 여러 금융회사에서 각기 다른 이자율로 빌린 대출을 한 곳의 대출로 모아주는 상품으로 분산된 채무를 하나로 묶으면 대출 관리가 쉬워져 인기를 끌고 있다. 주로 저축은행과 캐피탈사가 제공하는 것으로 특히 서민금융상품인 햇살론의 대환대출을 이용하면 연 20% 이상의 고금리를 연 10%대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 틈을 타서 대출 자격이 없는 대부중개업자가 과도한 수수료를 챙기는 불법 채무통합대출이 고개를 들고 있다. A씨의 사례에서 보면 1억5000만원을 대출받은 후 한달 뒤에 1억7000만원 상환한 것을 금리로 계산하면 연 150% 이상으로 대부업 최대금리(연 39%)를 훌쩍 넘어서는 불법이다.
재무상담을 통해 저신용자의 재기를 도와주는 (주)희망을 만드는 사람들 김희철 대표는 “불법 채무통합론을 받은 사람 중에서는 공무원 등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1,2금융권의 채무를 갚은 후 약 1~2개월이 지나면 신용조회 상으로도 채무가 없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직장이 탄탄하고 채무가 없으면 은행권에서 쉽게 거액의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불법 채무통합론은 대출상환일을 약 1년 더 미루는 것일 뿐 과도한 수수료 등으로 인해 다중채무자의 빚을 결과적으로 더 늘린다는 것이다.
은행도 손해다. 은행은 채무자가 다른 1, 2금융권 채무가 없다는 정보를 확인하고 나서 돈을 빌려준다. 그러나 1년 뒤 대출을 갱신할 시점에 다시 채무자 정보를 확인해보면 대출 당시 다른 은행들에 동시다발적으로 거액을 빌려서 이미 대출한도를 초과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부실 대출인 셈이다. 은행은 대출 당시에는 대출자의 동의를 얻어 다른 금융권 대출정보를 조회할 수 있지만 이후에는 임의로 조회할 수 없기 때문에 1년 후 갱신 시점에서야 부실 대출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대부업체의 대출정보가 실시간 공유되지 않는 점을 악용한 사례이기도 하다. 은행, 저축은행, 캐피탈 등 1, 2금융권의 대출정보는 은행연합회를 통해 실시간 공개돼 은행 등이 대출심사를 하면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업체의 대출정보는 신용평가사가 가지고 있으며 해당 정보를 보기 위해 신용평가사에 요구하면 우편을 통해서 2~3일 이후에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은행은 대출 시점에 해당 고객이 대부업체에 얼마나 많은 채무가 있는지를 바로 확인할 수 없어 1,2금융권 대출만 정리하면 대부업체의 대출이 남아있다 할지라도 해당 고객의 채무관계가 깨끗하다고 오인할 여지가 있다.
한편 최근 금융감독원은 대부업 대출정보(CB)를 관리하는 나이스신용평가정보에 이달 말까지 대부업 이용자 127만명의 CB를 온라인 방식으로 공개하라는 개선권고안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