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둔 시점에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자 여당인 새누리당이 1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 10조원 정도면 경제성장률을 1%포인트 정도 높일 수 있는 금액이다.
여당이 대규모 추경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가계·기업·정부 등 3대 경제주체가 저마다 긴축에 매달려 경기 침체가 심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19일 "지금은 민생 경제가 너무 어렵다.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경기 전체를 부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식경제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7월 대형마트 판매액이 1년 전보다 8.2% 줄어, 4월부터 4개월 연속 전년 대비 감소했다. 이런 경우는 2009년 6~9월 이후 처음이다. 또 기업 설비투자는 올해 들어 세 번이나 전월 대비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했다.
보통 불경기일 때는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는데, 현재 정부는 균형 재정을 강조하며 긴축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와 기업, 정부의 3대 경제 주체가 긴축했던 적은 여태껏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추경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정부는 우선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는 점을 든다. 추경 편성, 국회 제출 및 통과, 지출 등에 1~2개월가량 시간이 필요해 연내에 정책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무리하게 추경을 하는 것보다 내년 예산을 늘리는 게 정공법"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추경을 반대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절차상 어려움이 아니라 그 효과가 의문시된다는 점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가계와 기업의 심리가 얼어붙어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아무리 지출을 늘려봤자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7일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글로벌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선 전통적 정책 수단(추경을 의미)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경을 꺼리는 또 다른 이유는 대외 신인도를 떨어트릴 수 있다는 점이다. 무디스 등 해외 신용평가사들이 잇달아 우리 신용등급 전망을 상향 조정한 데는 정부의 균형 재정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국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균형 재정이란 말을 꺼내지 않았으면 모르되, 이왕 꺼낸 뒤 이를 주워담는 것은 무척 어렵다"고 말했다. 또 유럽 재정위기 등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실탄을 아껴둔다는 의미도 있다.
일각에선 정부가 추경에 미온적인 이유를 '정치적 요인'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추경 효과가 내년에 나타날 것이 뻔한데, 굳이 현 정부 고위 인사들이 차기 정부를 도와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여당의 요구를 수용해 추경 편성을 지시할 경우 추경 절차가 신속히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의 공식적인 반대 의사와 달리 실무자선에선 추경 예산을 어디에 쓸 것인지 이미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