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수출 급감, 수출단가 하락, 보호무역주의 고개’
유로존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우리나라 경제의 동력인 수출 엔진이 급속히 식고 있다. 수출을 둘러싼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수출이 급감하고 있고 수출 단가는 2년6개월만에 처음으로 하락했다. 게다가 각국이 너나할 것 없이 자국 경제를 지키기 위해 보호주의 장벽을 강화할 움직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이 3중고에 시달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수출이 활력을 찾지 못하면 올 3분기 경제성장률이 ‘제로(0)’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 중국 수출 급감 ‘직격탄’
유럽 재정위기가 길어지며 견고해 보였던 중국의 수출마저 맥을 못 추고 있다. 최근 중국 해관총서(관세청)는 지난달(7월) 중국의 수출 증가율이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1%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설 연휴와 같은 계절적 요인이 끼어 있던 달을 제외하면 2009년 11월 이후 최저치다. 유럽 위기로 글로벌 수요가 급감한 영향이 세계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수출 지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문제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수출이 긴밀히 얽혀 있다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은 우리나라 수출의 4분의 1 가량(24.2%)을 차지하는 최대 수출국이다. 특히 가공수출 비중이 50%에 육박해 중국의 수출 둔화는 우리나라의 수출 둔화로 직결된다. IMF(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중국의 투자증가율이 1%포인트 낮아지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0.6%포인트 하락한다.
이태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대중국 수출 증가율은 상대적으로 소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지만 비중이 워낙 높기 때문에 우리 수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세계 경제 부진과 맞물려서 중국으로의 직접 수출뿐 아니라 우회 수출도 줄어들고 있다"며 "주력 수출 지역이 전부 경기 부진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 수요 부진에 수출단가 ‘뚝’
전세계적으로 수요가 쪼그라들며 수출 가격은 떨어지고 있다. 수출을 해도 이전만큼 값을 못받고 판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이 13일 발표한 ‘2012년 2분기 중 무역지수 및 교역지수’에 따르면 수출단가지수는 전년동기 대비 4.9% 하락한 106.4를 기록, 2009년 4분기(-1.4%) 이후 처음으로 내림세를 보였다. 이 지수는 지난해 2분기 9.7% 올랐지만 올 1분기에는 0.7% 상승하는데 그쳤고, 2분기엔 결국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한 가운데 수요 부진까지 겹치며 주요 수출품목인 반도체·석유제품·철강제품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한 영향이다.
수출단가가 떨어지면서 수출대금으로 수입할 수 있는 상품의 양을 나타내는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올 2분기까지 7분기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2005년을 기준(=100)으로 하는 이 지수는 올 2분기에 75.2를 기록했는데, 이는 2005년 한 단위 수출대금으로 100개를 살 수 있었던 것을 75.2개만 수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본부장은 "올 상반기를 보면 수출 물량은 근소하게 늘었지만 가격이 떨어졌다"며 "수출 단가가 계속 하락 추세여서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 기승 부리는 '보호 무역주의'···수출다변화 전략 '비상'
유로존 재정위기로 인해 세계 경제의 장기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보호 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릴 듯한 조짐을 부리는 것도 수출 환경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G8(주요 8개국)과 G20(주요 20개국) 회의에서 주요국 정상들이 보호 무역주의 배격을 외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세계 각국들이 자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장벽을 잇따라 높이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각)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한국산 차량 수입이 급증하고 있어 이에 대해 조사해 달라는 프랑스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 대표적이다.
보호무역주의 강화 흐름은 우리나라의 수출 다변화 시장 중 하나인 신흥국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러시아, 아르헨티나, 인도 등에서 최근 보호무역 장벽이 크게 늘었다. 러시아가 현재 집행 중인 보호주의 정책은 총 57건으로 지난해보다 50건이나 늘었고 우리나라의 주요 교역국인 아르헨티나(23건→30건)와 인도(6건→18건)도 무역장벽을 쌓고 있다.
이같은 신흥국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동시다발적인 FTA(자유무역협정)를 통한 수출시장 다변화를 추진하는 우리 정부의 수출 확대 정책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 '3분기 제로(0%) 성장' 전망까지 나와
수출 전망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선 ‘3분기 성장률 제로(0)’ 전망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허진욱 삼성증권 책임연구위원은 "내수 부진에 수출 감소를 감안하면 올 3분기 전기 대비 경제성장률은 0.1~0.2%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며 "내수 부양이 없으면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수출은 지난달 전년동기대비 8.8% 감소해 2009년 10월 이후 감소폭이 가장 컸다. 내수도 체감경기 악화에 따라 '더 나아질 게 없다'는 게 시장 분위기다.
유 본부장은 "소비는 계속 안 좋고 투자는 1분기에 반짝했다가 위축돼 있는 데다 수출까지 감소세로 반전된 상황"이라며 "3분기 이후 다소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봤는데 그런 기대가 완전히 어긋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