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기업은 PER은 10.7배, PBR은 1.4배로 사상 최저 수준까지 충분히 하락했다. 저평가돼 있기 때문에 (주식을 사기에) 매력적이다.” (A 증권사 보고서)
요즘 PER(주가수익비율), PBR(주가순자산비율)을 근거로 해당 주식이 얼마나 싼 지 평가하는 애널리스트 보고서들이 쏟아지고 있다. 코스피 지수가 다시 1700선대로 밀려난 후 PER, PBR 수치도 뚝뚝 떨어졌기 때문. 애널리스트 리포트 논리 구조는 대체로 비슷하다. 해당 기업이 ‘대체로 건실한데다 역대 주가 흐름을 볼 때 PER과 PBR이 이 정도까지 떨어진 적이 없으니 확실히 싸다’는 식이다.
주가 가치 평가에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지는 PER과 PBR를 얼마나 믿어야 할까. 또 주식 투자에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 “순이익이 급감할 때 PER을 지표로 삼지 마라”
PER은 해당 기업 한 주 가격이 수익의 몇 배 되는지를 본다. 예를 들어 PER이 10.7배라면 주가가 주당 순이익(순이익을 전체 주식 수로 나눈 값)의 10.7배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기준이 되는 순이익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까. 3개월 전에는 PER이 10이어서 싸다고 평가받을 수 있었지만, 순이익이 떨어지면 PER은 높아지고 더 이상 싼 종목이 아니게 된다. 김승현 동양증권 애널리스트는 “요즘처럼 기업 이익 전망치가 심하게 바뀔 때는 PER을 적정 주가 평가 지표로 삼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주요 기업의 이익 전망치는 계속 하향 조정되고 있다. 2분기 순이익 전망치는 한 달 전에 비해서는 8%, 두 달 전에 비해서는 13%나 내려앉았다. 최근 한 달 동안 증시 전체 하향 폭은 -7.9%에 달한다. 정유 업종의 이익 전망치가 66.3%나 줄었고, 증권 업종(-45.3%), 디스플레이 업종(-30.7%), 통신업종(- 23.3%)도 큰 폭으로 하향 조정됐다.
◆ 2000년 이후 단 3번이었다는 ‘PBR 1배’는?
코스피 지수가 또다시 1800선이 무너졌을 때 유가증권시장이 드디어 PBR 1배만큼 저렴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PBR은 주당 순자산(장부가격)으로 주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주가가 한 주당 순자산의 몇 배인가를 보는 지표인데, PBR이 1배이라는 것은 한 주당 가격이 한 주당 순 자산과 똑같다는 의미다. PBR 1배 미만으로 떨어지면, 현재 주가가 회사를 청산했을 때 가격에도 못 미치는 정도로 싸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나라 증시의 경우 2000년 이후 의미있게 코스피 지수가 PBR 1배로 떨어진 것은 딱 3번 있었다. 2003년 2월부터 8월까지, 2004년 5월부터 8월까지, 2008년 10월부터 2009년 3월까지로 2003년과 2009년에는 PBR이 0.7까지 떨어졌고 2008년에는 0.9까지 하락했다.
PBR 1배라면 무조건 주가 매수 가치가 있는 것일까. 만약 PBR의 기준이 되는 자산이 고(高)평가돼 있다면, PBR 1배도 저렴하지 않은 수준일 수 있다. 실제로 증권사들이 내놓는 PBR 1배 추정치도 낮아지고 있다. 대우증권은 한 달 전에 예상PBR을 1819로 봤는데, 지금은 1700 후반대로 낮춰 잡았다. 2011년 확정 실적을 기준으로 한 PBR 1배 수준은 코스피 1622이다.
김승현 연구원은 “그래도 장부가는 크게 변동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주가 변동이 심한 요즘에는 PER보다 PBR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주성 신영증권 연구원도 “기업 자산이 대부분 부동산과 공장과 같은 시설인데 이런 자산이 하루 아침에 30~40%씩 빠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PBR로 적정 주가를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수급이 뒤받쳐주지 않으면 PBR 1배라도 별 의미가 없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떨어졌지만, 위험 자산인 주식은 사지 않고 오히려 채권에만 몰리고 있다. 지난 12일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하고 나서도 단기적 단기 투자용도인 머니마켓펀드(MMF)에만 자금이 몰렸다. 김정환 대우증권 연구원은 “다른 금융 자산과 부동산 자산이 저평가되면 주식이 저평가되더라도 대부분 투자자가 투자 심리를 회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론 총체적 난국이 펼쳐지는 이른바 ‘시스템 위기’가 오면, PBR 1배를 기준으로 한 평가마저도 참조하기 어렵다. 현재 전 세계 경기는 그리스의 유로존 퇴출 논란이 다시 불거지는 등 좋은 상황은 아니다.
김학균 대우증권 연구원은 “시스템 위기가 찾아오면 PBR이 0.5배(IMF 당시)까지도 추락할 수 있기 때문에 PBR 1배가 바닥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면서 “다만, 지나고 나면 PBR 1배 때 주식을 사두면 시세차익이 컸기 때문에 장기 투자자들에게는 PBR 1배라는 숫자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가지 더 남은 질문. 주가가 1700~1800선으로 꽤 높아 보이는 데도 기술적으로 PBR 1배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승현 연구원은 “1998년 외환 위기 사태와 2008년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한국 경제가 실제로 많이 성장했고, 최근 회계 기준이 바뀌면서 한국 기업의 장부가 자산 가치의 재평가(상향조정)가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