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섭씨 30℃를 훌쩍 넘는 한여름,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가면 한결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볕을 나뭇잎이 막아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식물이 주변의 열을 빼앗아가는 영향도 크다. 중·고교 과학 시간에 배웠던 '흡열반응'이 나무 그늘 아래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셈이다. 선풍기조차 귀했던 시절, 앞마당에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뿌리면 마루 위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도 이 같은 원리다.
이처럼 물이 증발할 때 열을 뽑아가는 현상을 이용하면 '전기 먹는 하마'인 에어컨에 의지하지 않고도 실내온도를 크게 낮출 수 있다. 경기도 일산의 대형전시관인 '킨텍스'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여름철 지붕 위로 물을 뿌려 실내온도를 낮춰주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기술에 대한 특허를 보유한 ㈜월드비텍의 김근기 사장은 "지붕에 뿌려지는 물은 중수(버려지는 물을 한 번만 정수한 물)를 사용하기 때문에 수도요금 걱정도 없다"고 말했다. 월드비텍은 국내 230여곳, 해외에는 베트남 섬유공장을 포함해 총 20여개 공장에 이 설비를 공급했다.
실제 냉방에 들어가는 비용 차이는 얼마나 날까. 이 회사가 한 자동차 부품 생산공장에 이 설비를 설치한 후 여름철 냉방비용을 계산하자 물값을 포함해 공장 1만평 기준으로 한 달에 약 260만원이 들어갔다. 지붕 1제곱미터(㎡) 당 하루에 뿌려지는 물의 양은 약 10리터(L) 정도였다. 이 설비를 설치하기 전에 이 공장의 냉방비용은 월 1억3000만원에 육박했다. 공장 지붕에 물을 뿌려주는 설비 하나로 냉방비용을 50분의 1로 줄인 것이다. 대형 생산공장의 경우 벽면·창문의 단열 효과가 낮아 에어컨에서 나온 냉기가 금세 더워지기 일쑤다. 에어컨에만 의지해 냉방했을 때 1억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간 이유다. 김근기 사장은 "일반 콘크리트 건물에도 지붕에 물을 뿌려주면 40~55℃ 정도인 표면온도가 32~33℃까지 내려간다"며 "밤새 콘크리트가 열기를 뿜어내지 않기 때문에 야간 냉방요금도 아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