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시장조사기관 ’레콘 애널리틱스(Recon Analytics)’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 26.9개월에 한 번씩 휴대전화를 바꾸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 46.3개월, 이탈리아 51.5개월과 비교하면 약 2배 빨리 새 휴대전화를 구입하는 셈이다. 한국인들은 1인당 국민 소득이 일본·이탈리아보다 훨씬 낮지만 휴대전화를 자주 바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15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조사결과는 한국의 휴대전화 교체주기가 유독 짧은 이유가 이동통신 3사와 휴대전화 업체들의 출고가·공급가 부풀리기 때문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공정위에 따르면 SK텔레콤·KT·LG유플러스는 2008년부터 3년간 총 44개 휴대전화에 대해 향후 지급할 보조금을 감안, 공급가에 비해 출고가를 훨씬 높게 책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출고가 90만원인 스마트폰의 경우, SK텔레콤 같은 이통사가 삼성전자 등 제조사로부터 실제로 구입하는 가격은 60만원대 후반에 불과하다. 이통사는 소비자에게 이 제품을 판매할 때 90만원짜리를 60만원 정도에 판매하면서 나머지 차액은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것처럼 위장했다.
90만원인줄 알았던 휴대전화를 60만원대 가격에 제안을 받은 소비자는 아직 쓸만한 휴대전화를 두고 새 휴대전화를 구입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제조사 역시 출고가를 부풀릴수록 고급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쌓을 수 있기 때문에 손해 볼 게 없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는 휴대전화 보조금제도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악용한 착시 마케팅에 해당한다"며 "통신사·제조사가 이러한 착시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은 제조사 내부 문서와 진술을 통해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 날 공정위가 공개한 한 제조사의 내부 문건에는 ‘사업자는 공급가격 대비 고가로 명목 출고가를 책정하고, 실제 소비자의 고가 단말기를 저가로 구매하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을 마케팅 툴(도구)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공정위 조사에 응한 한 휴대전화 제조사 담당자도 “(소비자들은) 보조금을 준다고 하면 당연히 이통사 통신요금과 같은 수익으로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생각한다”며 눈속임을 이용한 마케팅을 횡행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한편, SK텔레콤의 경우 삼성전자로 하여금 특정 제품에 대해 SK텔레콤을 통하지 않고서는 팔지 못하게 강제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는 사전에 SK텔레콤에 등록된 휴대전화만 판매할 수 있는 현행 ‘IMEI 화이트리스트제도’를 악용한 것이다. SK텔레콤은 자사 유통망을 통하지 않고 양판점 등을 통해 판매하는 물량이 20%를 넘을 경우 해당 휴대전화의 개통을 거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휴대전화 유통망 사이의 경쟁을 저해, 휴대전화 가격이 높게 유지되는 부작용을 불러 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