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익에 역행하는 고속철도 민간개방

조선일보
  • 최연혜 前 한국철도대학 총장
    입력 2012.01.30 22:19

    최연혜 前 한국철도대학 총장

    최근 국토해양부는 고속철도 민간개방 정책을 발표했다. 그 이유가 경쟁체제 도입에 있다는데, 이는 철도 및 교통산업의 특성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철도·도로·항공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동시에 국가교통 시스템의 최적화를 위해 상호 보완성에 더 가치를 두는 게 세계적 추세다. 예컨대 서울의 서울메트로, 도시철도공사, 철도공사와 광역버스 등이 출혈경쟁한다면 국민 편의와 국가경제는 파탄에 이를 것이다. 국가 기간 교통망인 고속철도에 민간 참여라는 극단적 방법까지 동원해 경쟁을 도입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이 정책이 지난 2004년에 결정된 것이라는 말도 수긍하기 어렵다. 2004년 고속철도 개통을 앞두고 건설교통부는 고속철도 운영을 일반철도와 분리해 철도시설공단에 맡기려고 했다. 그러나 치열한 논쟁 끝에 통합운영이 옳다고 결론 났다. 당시에도 대표적인 '규모의 경제' 산업인 철도를 토막 내서 효율성을 높인다는 논리가 잘못됐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안전에 대한 우려도 컸다. 복잡한 기계와 설비, 여러 사람의 손발이 완벽하게 맞아야 안전이 담보되는 철도의 특성상 운영기관 다원화는 사고위험을 키우기 때문이다. 특히 민간개방 때는 경쟁관계인 공사와 민간기업 간에 원활한 정보 및 의사소통을 기대하기 어렵고, 수익에 민감한 민간기업이 안전 투자에 적극적일 리 없다. 그리고 2004년 결정된 것이라면서 8년간 준비는 고사하고 일언반구 없다가 정권 막바지에 갑자기 추진하는 것도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흔히 지적되는 공사의 '높은 인건비' '부실경영'도 고속철도 민간개방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철도공사는 정부의 엄격한 관리 아래 있고, 굳이 민간개방 없이도 정부가 공사의 경영효율화를 압박할 수 있다. 철도공사의 부실경영 문제도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철도공사 적자는 부실경영보다는 잘못 설계된 재무구조에 더 큰 원인이 있다. 2005년 출범한 철도공사는 부풀려진 수요예측에 의해 KTX 차량과 고속철도역 건설비 등 5조8000억원을 부채로 떠안았고, 매년 5000억~6000억원의 시설사용료를 내야 한다. 그러니 실수입과 설계수치에 매년 1조원 이상 차이가 나서 빚을 내 이자를 갚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철도공사의 유일한 수익사업인 고속철도 운영권을, 그것도 소득수준이 높은 서울 강남권 수요를 흡수하면서 장차 서울역 몇 배의 성장잠재력을 갖춘 수서역을 특정 민간기업에 주는 것은 특혜다. 더구나 수십조원 혈세로 건설된 역사와 선로 등 모든 설비를 임차해 쓰면서 민간운영사가 수익만 챙겨가는 구조가 되고 만다. 이는 투자 리스크를 지는 진짜 민영화보다 더한 특혜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철도산업에 대한 정부의 인식 부족이다. 우리나라에서 철도는 남북관계를 풀어갈 중요 매개체이자 북방정책 수단이다. 향후 남북한 철도와 대륙철도 연결을 고려하면 철도공사 역량이 최소한 중국·러시아·북한의 당국자와 대화가 가능한 수준은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영세한 규모와 누적된 적자로 초라하기 짝이 없는 철도공사를 더욱 위축시키는 것은 국익에도 역행한다. 수서~평택 고속철도 개통을 계기로 정부는 철도공사의 몸집을 키워 강도 높은 경영효율화를 추진하는 한편 역세권 개발 등 수익사업 활성화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철도를 살리고, 국민 부담도 줄이는 최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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